아빠가 작고한 후, 엄마는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특별한 재주도 학벌도 없는 엄마가 혼자 벌어서 자녀 셋을 먹이고 교육하기에는 살림이 늘 빠듯했지만, 엄마는 종종 혼자만의 만찬을 즐겼다.
어느 날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고춧가루를 팍팍 넣고 보글보글 끓인 정체불명의 음식이었다. 내가 호기심에 다가가자 엄마는 선심 쓰듯 하나 먹어보라며 나에게 내밀었다. 오그라진 손가락 3개가 마녀 손 같아서 나는 기겁을 하고 소리치며 도망갔다. 궁금함을 못 참고 다시 와서 살펴보니 그것은 말라비틀어진 팔목에 가느다란 손가락 세 개가 화상 입은 듯 오그라져 있었고, 덜 자란 듯한 엄지손가락 하나가 툭 튀어져 나와 있었다. 세 개의 손가락 안쪽에는 작은 손바닥이 빵처럼 부풀어 있었다. 피부에 줄무늬가 많았고, 손톱은 잘려 있었다. 그것은 내 손보다 작은 어린 마녀의 손인 듯했다. 엄마는 상을 펴지도 않고, 부엌에 선 채로 입에 빨간 양념을 잔뜩 묻힌 채 비닐장갑을 끼고 그것을 뜯어먹었다. 난 그런 엄마가 무서웠다. 어떤 날은 빨간색, 어떤 날은 갈색, 기분에 따라 양념 색깔이 바뀌었다. 그 냄새가 닭볶음탕처럼 달콤해서 나는 옆에서 눈을 질끈 감고 앉아 군침만 삼켰다.
“엄마, 이게 뭐야?”
“닭발이야. 꼬꼬댁 닭의 발”'
엄마는 나를 의식하며 더 맛있게 닭발의 관절을 하나씩 부러뜨리며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고, 뼈를 발라서 버렸다. 빈 접시에는 뼈가 수두룩하게 쌓여갔다. 엄마는 닭발의 오동통한 발바닥이 제일 맛있다며 어린아이처럼 입에 양념을 한껏 묻히고 먹었다. 닭발의 발바닥을 먹을 때면 발가락 세 개가 엄마 입에 붙어 있었다. 고추장 양념까지 입 주변에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마치 마녀가 엄마의 입을 잡아 뜯어 피가 입 주변에 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생쥐를 산 채로 먹는 영화의 한 장면을 집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미취학인 내가 보기에 그 모습은 정말 기괴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세상 그 무엇보다 맛있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나에게 권했고, 그런 엄마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닭발은 오롯이 엄마만의 음식이었다. 나는 제발, 발바닥을 먹기 전에 발가락을 먼저 먹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닭발은 엄마만의 가성비 좋은 스트레스 해소 음식이었던 것 같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비로 구입한 생선은 아이들에게 먹이고, 엄마는 닭발로 영양을 보충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탐내지 않는 나만의 음식이었으므로. 엄마는 주기적으로 스텐 솥에 한가득 만들어서 혼자 실컷 질릴 때까지 먹곤 했다. 그 솥은 닭발 무덤 같았다.
엄마가 닭발을 좋아하는 것을 잊고 살았다. 세상에는 닭발보다 보기에도 예쁘고, 먹기에도 좋은 영양 만점의 식재료가 많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할 만큼 나도 성장했기 때문에 굳이 징그러운 닭발을 떠올리지 않은 것 같다. 나에게 닭발은 무섭고, 혐오스러운 음식 중의 하나였다. 닭발을 먹는 엄마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엄마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풍치로 치아가 빠져 틀니 조차 할 수 없어 유동식 식사를 할 때 닭발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식재료, 가난하기에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던 그 닭발이, 왜 지금 먹고 싶을까?
눈앞이 캄캄하도록 막막한 그 시절, 엄마는 영양가 있으면서도 싸고 맛있는 닭발을 먹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그 음식을 먹고 살아갈 용기를 얻고 싶었던 것일까? 닭발은 엄마의 소울푸드였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집에서 요양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의 ‘닭발 레시피’ 영상을 촬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엄마는 촬영을 거부했다. 장루 수술과 2번이 항암치료로 50kg에서 35kg으로 체중이 감소한 엄마는 자신의 변한 모습을 마주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서툴지만 정성 어린 손녀의 화장과 머플러로 센스쟁이 할머니로 변신한 후, 식탁 의자에 앉은 채 재빨리 촬영을 진행했다. 기력이 없는 엄마를 위한 작은 배려였다. 촬영이 시작되자 엄마는 여느 유투버처럼 자연스레 말했다.
“간장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싱거운 게 낫겠죠? 네~”
“그리고 설탕 한 바퀴, 고춧가루 조금, 고추장 한 스푼이요”
양념 비율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며 매우 능수능란했다. 75세에 발견된 재능이었다. 건강할 때는 매콤 짭짤하게 양념해서 먹었지만, 이번에는
“허옇게 먹는 게 낫겠어요”
하며 고춧가루를 절제했다. 같이 먹을 손녀를 걱정한 것도 있지만, 항암 부작용으로 매운 것을 못 먹기 때문이기도 했다. 닭발은 늘 엄마 혼자 먹는 음식이었는데, 이번에는 함께 먹을 손녀가 있다. 그래서 더욱 신이 나서 음식을 만드는데 집중한 나머지 카메라도, 멘트도 잊어버렸다.
“카메라 좀 봐주세요”
했더니 그제야 뒤적거리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보며 소녀처럼 싱긋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환자 같지 않았다. 엄마가 떠난 후 남은 이들을 위해 동영상을 촬영하고자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엄마도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비닐장갑 낀 손으로 양념을 버무리다가 닭발이 하나 탈출했다. 내가 무서워했던 그 닭발의 형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런 나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무심하게 닭발을 그릇에 담아 넣었으며 말했다.
“맛나게 생겼네요”
엄마의 말에서 기대감과 생기가 느껴졌다. 소울 푸드의 자극적인 맛에 엄마도 오랜만에 입맛이 도는 것 같았다.
“가스레인지에 한번 끓였다가 식혀서 먹으면 더 쫄깃쫄깃하고 맛있어요”
엄마는 손녀에게 닭발 뼈 바르는 방법을 전수하며 35년 전 그때처럼 입에 잔뜩 양념을 묻힌 채 맛있게 먹었다. 그때는 부엌에서 혼자 허겁지겁 먹었지만, 지금은 손녀와 함께 식탁에 앉아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 할머니의 닭발을 먹은 후 큰 아이가 닭발을 좋아해서, 이제는 나도 무뼈 닭발은 먹는다. 엄마가 매콤하면서 쫄깃한 이 식감을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닭발 레시피를 끝으로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했고, 그다음 해 벚꽃이 흐드러질 때 하늘의 별이 되었다. 엄마의 첫 기일에는 무뼈 닭발 요리를 만들어서 제사상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