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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박힌 마지막 희망

by 윤슬

엄마는 32세부터 애 셋을 홀로 키우며, 살기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 때문인지 60대부터 엄마의 잇몸과 치아는 80세 할머니 수준이었다. 임플란트를 할 수 없을 만큼 무너져버린 잇몸 때문에 간신히 남아 있는 치아에 부분 틀니를 위아래로 하고 밥을 먹었다.


73세, 항암치료 후에는 치아가 더 이상 버텨내지를 못했다. 치아가 모두 빠져 버렸고, 윗치아 1개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전체 틀니는 엄마의 거부로 시도하지 못했다. 그 소중한 치아로 엄마는 부드러운 음식을 씹었다. 어느 날, 식사 중 윗니가 부러졌다. 치과에 가서 엄마의 여생이 3~6개월 남았음을 설명했다. 의사는 의료용 본드로 치아를 붙여 조금 더 사용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었다. 또 부러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틀니를 껴서 사용하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틀니를 끼지 않았다. 몸도 아파서 예민한데, 틀니를 자주 끼지 않으니 잇몸이 변형되어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2023년의 12월 마지막날, 엄마를 모시고, 가까운 인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를 위해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오빠도 외박 신청을 했다. 남편과 나는 각각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차 2대로 이동을 했다. 창밖으로 함박눈이 쏟아졌고, 우리는 창문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밖에 나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조차도.


숙소에 도착해서, 엄마 생일에 찍지 못한 가족사진을 찍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대신 중학생 손녀가 할머니 단장을 도왔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한 공간에서 같이 밥을 먹고, 살을 비비며 있는 그 시간이 소중하고 좋았다. 오빠는 엄마가 사준 구스다운과 기모바지, 신발을 신고 왔다. 엄마는 사진이 아닌 두 눈으로 오빠의 옷을 확인하고, 만져보았다.


“따뜻하냐? 엄마가 따뜻한 옷 사주고 싶었다. 추우면 안 되제. 향이가 너 이 옷 사준다고 고생했다.”


식사 후 엄마가 좋아하는 사과를 간식으로 준비했다. 사과를 긁어서 주려고 했는데, 엄마가 큼지막한 사과 하나를 냉큼 집었다.


“그냥 먹을 란다.”


엄마는 이유식 먹는 애기 마냥 잇몸으로 오물거리고, 쪽쪽 빨며 맛있게 사과를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 표정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엄마가 내민 사과에는 마지막 남은 치아가 박혀 있었다. 본드로 붙인 치아는 단단하게 붙어 있었고, 그 덕분에 치아 끝부분까지 부러져 버렸던 것이다. 엄마는 이제 합죽이가 되었다. 나도 너무 당황스러웠고, 걱정되었다. 밥을 못 먹으면 탈수증상이 바로 오기 때문이다. 연말의 눈 오는 인천. 치아 때문에 응급실에 가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때 엄마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화가 나면서도 절망적인 그 표정. 엄마는 먹던 사과를 식탁에 올려놓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리고는 한참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어떤 위로를 해야 하는지 몰라 그저 엄마가 괜찮은지 체크하고, 장루를 점검할 뿐이었다.


그날 저녁, 오빠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준비했다. 엄마는 오빠를 보기 위해 용기 내어 식탁에 앉았고, 맛있게 먹는 오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도 닦아주었다. 그리고 오빠의 손을 붙잡았다. 오빠는 이마에 탈모가 시작된 50세 중년이다. 엄마는 그런 오빠가 안쓰럽고 불쌍한지 오빠 손을 계속 쓰다듬었고, 오빠는 그저 맛있게 우적우적 밥을 먹을 뿐이었다.


오빠가 없었다면, 엄마는 그날 저녁도 거르고 아마 침대에 누워 있었을 것이다. 오빠 덕분에 엄마가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오빠의 존재감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오빠는 양껏 밥을 먹고, 식사 후 조차와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마냥 해맑은 오빠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다음날 아침, 눈 덮인 정원을 남편과 걸었다. 이 무모하고 용감한 여행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빠는 크론병으로 최근 증상이 악화되어 매일 관장을 해야 했다. 시설에서는 생활지도원들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여행에서는 남편이 그 역할을 했다. 내 자식도 아닌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의 엉덩이에 약을 넣는 일.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남편의 두툼한 손을 꼭 잡고 눈 덮인 거리를 걸었다. 그런 남편이 세상 듬직하고,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남편은 오빠를, 나는 엄마와 아이들을 태우고 각자의 목적지로 출발 향했다.

엄마는 이 여행을 끝으로 호스피스 병원으로 갔다. 이제 정말 끝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무섭지만, 무섭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엄마 없는 그 삶이 성큼 성큼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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