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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 씨 물고 온 제비

연애, 주객전도 된 결혼식 비디오

by 윤슬

약속 장소는 건대입구역이었다. 나는 긴 생머리에, 올리브그린 와이드 정장 바지와 아이보리색 블라우스를 입고 보석이 세 개 박힌 스웨이드 재질의 카키색 정장 구두를 신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반대편에서 올라왔다. 그는 칼 각이 잡힌 검은색 기지 바지에 반팔 줄무늬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셔츠의 위 단추 두 개를 풀어헤치고, 무스를 잔뜩 발라 올백 한 머리에 갈색 유광 뿔테안경을 쓴 짜리 몽땅한 그를 흘긋 쳐다보며 생각했다.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약속 시간이 되어 전화를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나를 향해 내려오는 짜리 몽땅한 그의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스물일곱 살의 나는 168cm에 52kg으로 제법 날씬하고 몸매 괜찮은 대학원생이었고, 소개팅남은 172cm에 직장인으로, 촌스런 훗가시가 잔뜩 들어간 동네 건달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정장 구두를 신은 덕분에 그와 나는 눈높이가 같았다. 나는 키가 작지 않고, 어깨가 넓은 편이라서 나보다 덩치가 작거나, 왜소한 사람은 싫었다. 내가 상대적으로 우람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소개팅남은 왜소한 체구는 아니었지만, 내가 힐을 신을 수 없는 키에 동네 건달 같은 촌스런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지만, 나는 차 한 잔만 마시고 도망갈 계획을 세우고 카페로 갔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쉴 새 없이 나를 웃게 했다. 예상과 달리 그와 밥까지 먹고 1차 만남을 종료했다.


다음날 소개팅 주선자인 대학원 동기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소개팅남은 주선자 친구의 남편 회사 선배다. 내 친구도 직접 그 선배를 본 적은 없었고, 남편을 통해 말로만 설명을 들었던 것이다. 사람이 진중하고 괜찮아 보여서 나를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안의 황태자라며 나를 부추겼다. 나는 친구를 믿고 딱 세 번만 만나기로 했다. 외모와 옷차림에 대해 이야기하니 친구는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했다.

“네가 스타일링해주면 돼! 그건 문제가 아니야!”

친구의 말을 믿고 두 번 더 만나 보기로 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대화가 더 자연스러워졌고, 세 번째 만남에서는 그의 외모와 스타일이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는 주선자의 남편을 따라 학교 앞에 나란히 차 두 대를 대고 대학원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나를 픽업하는 깜짝 서프라이즈를 했다. 친구네 부부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아서 종종 친구 남편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갔었는데, 소개팅 후로는 각자의 차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친구네 부부와 치킨집과 동네 술집을 돌아다니며 더블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동네 데이트를 하던 어느 날, 내가 보도블록 위에 올라가 비틀비틀 걷고 있었고, 그는 보도블록 아래에 있었다.

“손”

하며 그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만난 지 두 달가량 되었을 때였고, 그에게 호감은 있지만, 사귀는 단계가 아니었기에 나는 보도블록을 내려오며 새침하게 말했다.

“흥! 내가 개야? 손! 하면 손을 주게! 웃겨 정말~”


그의 모교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차를 타고 데이트 장소인 신촌으로 이동 중 그는 같은 장소를 계속 빙빙 돌고, 땀을 흘리며 약속 장소를 못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느느느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멜로디였다. 서로 조심하는 단계인지라 크게 웃지도 못하고 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리고 큭큭큭 작게 웃었다.

한참을 돌아 약속 장소에 도착한 후, 그는 작은 상자를 내밀며 정식으로 교제를 하자고 말했다. 그 상자에는 하트 귀걸이와 목걸이 세트가 있었다. 이 고백 때문에 긴장돼서 운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을 했다. 순수한 그의 모습이 귀여웠다. 우리는 만난 지 삼 개월 만에 연인이 되었다.

그가 백화점에 가자고 했다. 직장인인 그가 내게 옷을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신이 나서 그를 쫄래쫄래 쫓아 백화점으로 갔다. 그는 여기저기 옷을 보다가 흰색 원피스를 골랐다. 우리가 들어간 매장의 브랜드는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강조하는 옷이 많았다. 나는 평범한 블랙을 원했지만, 그는 한사코 화이트를 주장했다. 결정권자는 그였다. 나는 피팅룸으로 가서 옷을 입었다. 니트 재질의 미니원피스로 상의 윗부분은 타이트하면서 가슴부터는 넓어지는 벌룬 핏이었고, H라인 미니스커트 위로 자연스럽게 힙을 살짝 가리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금색의 작은 비즈가 달린 얇은 거즈 재질의 스카프를 목에 둘러 피팅을 마쳤다. 원피스를 입고 나오자, 어깨를 쫙 편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주변에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며 한 마디씩 했다.

“마네킹 같네. 남자 친구는 좋겠어요”

나는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그는 대단히 만족스러워하며 카드를 꺼내 당당하게 결제를 했다. 그 원피스는 내 베스트 드레스 중 하나가 되었고,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는 늘 그 옷을 입고 나갔다.


대학원 3학기인 나는 실습으로 분주했다. 실습을 마치고 나온 내게 대학원 동기가 문자 왔다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박 : 씨 물고 온 제비를 아시나요?

희 : 희망과 꿈을 몰고 온 제비

향 : 그대는 나의 제비”

국문과 출신다운 메시지였다. 삼행시 메시지 후 나는 그의 문자를 기대하는 버릇이 생겼다. 실습실에 함께 있는 대학원 동기들은 나를 ‘박 씨 물고 온 제비’라고 놀렸다.


그가 호텔 식사를 하자며, 나를 신라호텔로 데리고 갔다. 오늘이 그날인가 싶었지만, 모른 체하며 사뿐사뿐 따라갔다. 코스요리가 나오고 식사를 마칠 즈음 웨이터가 케이크와 편지를 들고 들어왔다. 웨이터 앞에서 그는 편지를 쥔 손을 바들바들 떨며 낭독했고, 나는 그의 진중한 목소리와 진심 어린 고백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도 함께 울었다. 그는 소년같이 웃으며 짙은 벨벳 네이비색에 흰색 공단 리본이 달린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물방울의 입체적인 곡선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유명 브랜드의 시그니처 목걸이가 담겨 있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며 평생을 함께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결혼식 때는 더 큰 다이아몬드 사줄게!”라고 귓속말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결혼 날짜를 정하고 상견례를 하는 날, 전남 무안에서 예비 시부모님이 상경했다. 처음 만난 어색한 그날, 양가 어르신들은 ‘김대중 선생님’으로 대동단결하며 화합했다. 첫 만남, 첫 식사 같지 않게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편안하고 즐거운 상견례를 했다. 우리의 결혼생활도 상견례처럼 자연스럽고 유쾌할 것만 같아 기대가 됐다. 우리 부모님의 고향도 전라도였다.

우리는 만난 지 1년 6개월 만에 결혼식을 했다. 나는 대학원에서 언어치료를 전공하고 있었고, 아버지처럼 따르던 교수님께 주례를 부탁했다. 그리고 사회자는 남편의 친한 대학 친구가 하기로 했다. 사회를 맡을 친구는 큰 출판사의 편집국장이었다. 착하고 똑똑하고 친근한 좋은 분이었지만, 말더듬이였다. 나는 걱정이 되어 남편에서 사회자를 바꾸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완고했다.

“내 제일 친한 친구야. 잘할 거야. 걔 말 잘해! 걱정하지 마!”

결혼식 당일, 사회자는 긴장한 듯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하하하객 여러분(침묵), 모두 ㅊㅊㅊㅊㅊ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들 긴장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부 측에 앉은 내 대학원 동기들은 귓속말을 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어떻게 해, 음절 반복이야, 막힘도 왔어. 음소 반복 속도가 빨라.”

사회자는 짧은 문장을 위태롭게 소화하며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고의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주례사의 약력.


“특수교육 ㅊㅊㅊㅊㅊ최(침묵), 최-고의 대학, 다다다다다다단국(침묵)......”

마이크를 통해 사회자의 말더듬 반복과 긴 막힘 속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사회자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주례자를 향하던 시선이 사회자 쪽으로 쏠렸다. 모두가 숨죽인 그때 아기의 칭얼거리는 소리만이 도드라졌었다. 목뒤로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긴 면사포로 가려졌지만, 후들후들 떨리는 내 손은 감출 길이 없었다. 나는 남편 팔을 꽉 잡고, 간절한 눈빛으로 교수님을 쳐다보았다.

‘도와주세요!’

눈을 마주친 교수님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노련하게 자신의 약력을 설명한 후 평상시 하던 강의처럼 노련하게 주례를 마쳤다. 결혼식 후 대학원 동기들과 뒤풀이를 하며 그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대학원 동기들은 전공자들답게 말더듬 반복과 막힘 증상을 분석했고, 막힘이 길어져 급박했던 그 상황에 서로의 귓속말로

“언어치료사 출동!”을 외치며 본인들끼리 대책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온화하신 시아버님이 뒤를 돌아 놀란 토끼눈으로 사회자를 한동안 쏘아보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공식 예식이 끝나고 아버님이 마이크를 잡고 주례자와 하객들에게 인사할 때, 역시 이장님답게 말을 잘하셨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이 이야기들은 결혼식 이야기와 함께 늘 회자되는 유쾌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 에피소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남편은 대학 동기가 독립영화감독이라며 자랑을 했고, 그 친구에게 웨딩 비디오 촬영을 맡기겠다고 했다. 나는 영화감독님을 믿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비디오테이프를 건네받을 때 감독이 말했다.

“더 잘 찍었어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형수님. 많이 부족합니다.”

나는 감독의 겸손이라 생각하고, 괜찮다고 말하며 선물을 주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우리는 사회자의 말더듬 해프닝과 아버님의 멋진 연설을 기대하며 맥주 한 캔을 손에 들고 비디오를 재생했다. 그런데 그 비디오 속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었다. 비디오 속에는 말더듬 해프닝도, 주례사도, 아버님의 연설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예식 초반에 카메오처럼 등장했을 뿐이었다.


그 비디오의 주인공은 감독의 옛 연인이었다. 단발머리의 수수한 그녀를 인터뷰하며 축하 메시지를 촬영하고, 카메라를 통해 그녀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웃음을 클로즈업했고,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카메라를 든 감독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들로 가득했다. 그 둘은 대학 시절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고, 우리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재회를 했다고 했다. 나는 비디오를 보고 분개하며 남편에게 따졌다. 남편은 미안하다며 백번 사과를 했다.


우리의 다툼과 별개로 웨딩 비디오 촬영을 계기로 옛 연인은 화해하고 이듬해에 결혼을 했다. 나는 우리 결혼식의 명장면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우리의 희생으로 새로운 부부가 탄생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에피소드 가득하고 행복 충만한 18년 전 내 결혼식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재밌는 추억거리다. 중년의 부부가 된 지금, 내게 희망과 꿈을 몰고 온 제비는, 바로 짜리 몽땅 훗가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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