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캠핑은 축복이다. 캠퍼들에게 봄과 가을은 설레임이 가득한 계절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봄 만큼, 단풍과 낙엽이 가득한 가을은 캠핑에 안성맞춤이다.
필자는 올해 처음으로 솔캠(solo camping)을 시작했다. 중고등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스케줄을 맞추는 것도, 캠핑을 가자고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남편은 퇴근 후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캠핑 난민이 되지 않기 위해 지난 17년간 이것저것 장비를 구비했었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캠핑 장비도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솔캠에 적합한 미니멀한 장비로 리뉴얼 해야하는 시점이 되었다. 4인용 텐트를 2인용 텐트로 바꾸고, 타프 대신 바닷가에서 사용하는 파라솔로 대치를 하니 셋팅에 대한 부담이 덜했다. 간편식으로 최소한의 음식들만 준비해서 설거지량도 줄인다.
단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캠핑 감성이다. 솔캠이지만 가랜드와 전구로 감성 한 스푼 얹어 나만의 보금자리를 완성했다. 노동 후 이마와 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기 위해 캠핑 의자에 앉아 잔디밭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캔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시원하고 맛있다. 이 맛에 캠핑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떨어지는 나뭇잎과 햇살 아래 책을 펼쳤다. 눈이 피로해질 때 쯤에는 고개만 살짝 들면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잔디밭과 단풍, 바스락 거리는 낙엽들은 내 시선이 머물러 주기만을 바라며 계속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었다.
하나 둘 장작불을 피울 때, 필자도 저녁을 준비했다. 이날을 위해 나만의 미니 화로를 구입했다. 여기에 고기를 올리자 길고양이 손님이 예쁘게 앞발을 모으고 나와 고기를 주시했다.
“미안하지만, 이건 소고기란다. 내 첫 솔캠의 자축이지. 다른 집에서 얻어먹으렴.”
고양이의 간절한 눈빛과 공손한 자세를 무시하며 혼자만의 만찬을 즐겼다. 나를 위한 수고로움은 충만한 만족감으로 보답했다. 내 속도와 취향에 맞춰 구워 먹는 고기 맛은 일품이었다.
밤이 되자 지인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괜찮아? 무섭지는 않고?”
해질 무렵, 노트북을 챙겨 아지트인 텐트로 들어가서 이어폰을 끼고, “은중과 상연” 드라마를 시청하니, 외롭움도 무섭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이런 충만한 외로움이 더없이 감사했고, 적막함마저 황홀한 기쁨이었다. 뜨끈뜨끈한 전기장판에 침낭을 돌돌말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바닥은 따뜻하고, 코끝이 시린 텐트는 어릴 때 살던 그 주택처럼 포근했다.
“탁탁탁탁”
부지런한 캠퍼들의 망치질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전날 준비해 온 볶음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커피와 함께 책을 읽었다. 성경책 다음으로 책꽂이에 많이 꽂혀 있는 ‘코스모스’바로 그 책이다. 북클럽 모임을 위해 의무감에 집에서 읽을 때는 숙제하듯 읽어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캠핑장에서 읽는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 할아버지가 내게 우주에 관한 옛이야기를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듯 재미있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캠핑을 온 아이들은 아침부터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다니고, 퀵보드를 탔다. 캠핑 장비를 정리하는 엄마 아빠는 그들만의 노동으로 바쁘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쌓아갔다.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놀이터에서 물이 담긴 종이컵에 붉은색 열매를 따서 넣으며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너무 예쁘다. 사진 찍어도 되니?”
“그럼요.”
의기 양양한 아이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이거 뭐야?”
“주스에요.”
“맛있겠다.”
옛날의 나처럼, 그 아이도 한껏 쪼그려 앉아, 자연을 벗 삼아 소꿉 놀이를 하고 있었다. 혼자하는 놀이였지만, 외로워보이지 않았다. 그저 즐겁고 신나 보일 뿐이었다. 캠핑장은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놀이터다. 그 놀이터에는 정해진 규칙도 그 어떤 제한도 없다. 어른들도 그 놀이터에서는 자신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내려 놓고, 아이처럼 낙엽을 모아 뿌리며 논다. 50대 중반의 두 부부가 동그랗게 둘러 서서 하늘 높이 제기를 차기며 까르륵 웃는 그 모습도 놀이터의 아이처럼 순수하고 신나 보였다.
캠핑장은 매일 신비로운 마을로 재탄생한다. 하루하루 많은 텐트가 새롭게 지어지고, 사라지며, 그날 그날의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사이트마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고, 취향이 담겨 있다. 산책을 핑계로 다양한 텐트를 구경하며 그들의 이야기와 취향을 상상하는 것도 신나는 놀이 중 하나이다. 혹자는 말한다.
“캠핑 그거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필자는 캠핑의 힘듦을 신성한 노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집을 내 손으로 짓고, 정리하는 그것은 노동 그 이상이 뿌듯함을 선물한다. 자연의 품 속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 위한 아주 작은 입장료인 셈이다. 입장 후 대자연의 콘센트에 오감을 꽂아 적극적으로 충전을 한다. 캠퍼들은 자연에서의 충전을 위해 기꺼이 노동을 지불하는 것이다. 신성한 노동의 입장료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카라반”이라는 조금 비싼 입장권를 구입하면 된다.
필자는 오늘도 이곳 캠핑장에서 하루치의 행복을 선물로 받아,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이 가을이 끝나기 전에 자연의 놀이터로 지친 그대들을 초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