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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설렘? 설레임!

다문화 가정의 코다라는 이중 핸디캡

by 윤슬

"바다는 어디 가면 볼 수 있어요?"

"제주도는 섬이라서 어디를 가든지 바다를 볼 수 있지."

"제주도는 무슨 버스 타고 가요? 파도가 철썩철썩한다는 게, 어떤 거예요? “

초등학교 3학년 소민이(가명)는 코다이다. 청각장애 부모에게서 태어난 건청인을 ‘코다(Children of Deaf Adult)’라고 부른다. 바다를 가본 적 없는 소민이는 '바다, 파도, 철썩철썩'을 그림 카드로 배웠다.

나는 17년 차 언어재활사다. 6년 전 까무잡잡하고 통통한 5살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왔다. 소민이 엄마는 몽골인 청각장애인이었고, 아이가 다문화 가정의 코다라는 이중 핸디캡으로 언어 발달이 지연되어 언어치료실을 찾은 것이다.


아이는 수어도, 비언어적 의사소통 능력도 습득하지 못했고, 울고 떼쓰는 것으로 부모와 5년 동안 의사소통을 했었다. ‘주세요’ 제스처도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표준화된 언어 평가 도구의 사용이 불가하여 놀이 평가를 진행했다. 치료실의 여러 장난감을 보자 경계심을 풀고 장난감에 관심을 보였다. 2층 집 뽀로로 하우스. 소민이는 마치 자폐스펙트럼 장애아처럼 눈 맞춤을 하지 않고, 익숙한 듯 혼자 역할 놀이를 했다. 가끔씩 옹알이처럼 데프 보이스(Deaf voice)를 하는 게 관찰되었다. 데프 보이스는 농인들의 음성, 말소리를 뜻한다. 허스키하고 둔탁한 데프 보이스, 그것이 내가 들은 소민이의 첫 음성이었다.


복지관에서 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되어 사회복지사의 세밀한 복지 서비스를 받았고, 꾸준히 치료를 하며 조금씩 성장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단문 발화가 가능했고, 풀 배터리 검사에서 ‘정상’ 범주로 진단을 받았다. 풀 배터리 검사는 지능 검사를 비롯한 전반적인 심리 검사를 말한다.

1학년 담임이 복지관 사례 관리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소민이가 빈번하게 다른 아이의 신체를 터치해서 자칫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시켜 달라는 요청이었다. 부모와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복지관으로 연락을 한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담임의 지적 사항에 복지관 사례 관리 담당자는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언어치료사인 내가 개입하기로 결정이 됐다.


소민이는 농 부모의 주의를 끌기 위해 ‘엄마~’, ‘아빠~’ 부르기 대신 신체 터치를 자연스레 습득했고,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 학교에서는 금지 사항이 되어버리자, 소민이는 당황했다.

"엄마, 아빠는 어떻게 불러요?"

"집에서는 엄마, 아빠 터치해도 되고, 학교에서는 터치 대신 부르기를 하면 되는 거야"

"부르기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정상 발달 아이가 10개월~12개월에 첫 낱말을 습득한 후 사용하는 부르기 기능을 소민이는 8세에 훈련을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이름 부르기, 성과 함께 부르기, 다정하게 부르기, 큰소리로 부르기, 경고의 느낌으로 부르기, 장단, 고저 등을 연습했다. 소민이는 어색해하면서도 열심히 따라 했다. 담임의 전화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소민이가 학교에서 부르기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소민이는 감정을 언어적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라벨링이 되지 않아, 감정 상태어를 습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안 좋거나 화가 날 때면 입을 꾹 다물거나 울어버렸다. 이런 행동에 대해 부모는 속수무책이었다. 아이가 왜 우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민이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입실했다. 의자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묵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빈 종이와 연필을 내밀었다. 초등 입학 후 한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방법이다. 화가 난 이유를 써보라고 하자, ‘초콜릿우유’를 썼다. 이 4음절을 쓰기까지 용기가 필요했고, 그 용기의 대가는 5분이었다. 30분 치료 시간에 5분을 할애하는 것은 매우 소중했다. 그러나 감정 상태어 훈련을 위해서는 기꺼이 투자할 만한 기다림이었다. ‘초콜릿우유’를 필두로 스무고개 게임 같은 질문을 시작했다. 화가 났을 때는 언어 표현을 하지 않으므로, 폐쇄형으로 질문하고 비언어적 수단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했다.


"초콜릿우유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안 사주셨니?"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화났어’ 글자 제시와 함께 모방 발화를 유도하며 감정을 표현하도록 촉진했다.

"엄마가 왜 초콜릿우유를 안 사주셨을까"

"......"

논리적 추론을 요구하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엄마는 소아과 의사에게 비만이라는 소리를 듣고, 초콜릿우유를 간헐적으로 사주었던 것이었다. 소민이가 용기 내어 나름 논리적으로 내게 말했다.

"초콜릿우유는 우유잖아요. 좋은 거잖아요. 근데 엄마가 안 사줘요"

엄마와 수어로 간단한 의사소통만 하는 소민이는 배경지식이 매우 부족했다. 초콜릿우유는 인공색소와 향이 첨가되었을 뿐이고, 우유 원액은 적게 들어가 있는 음료수일 뿐이라고 설명해 주었더니 눈이 동그래져서 되물었다.

"진짜예요?"


억울해서 화가 났었던 것이다. 그 후 화가 날 때는 ‘화났어’, ‘기분 안 좋아’ 등의 언어로 표현하기로 약속했다. 아울러 간단한 감정 상태어 수어도 알려주었다.

미취학 때 만난 바우처 치료사가 소민이의 안부를 물어왔다. 소민이도 바우처 치료사를 좋아했기에 외부 활동 이벤트를 기획했다. 바우처 치료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잠을 못 잔 이유에 대해 묻자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며 수줍게 웃었다. 어제 잠을 못 잔 이유는 ‘설렘’ 때문이라고 설명하자, 처음 듣는 단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휴대폰으로 아이스크림 ‘설레임’ 이미지를 찾아서 보여주자, ‘아~설레임’ 했다.

약속 장소에서 바우처 치료사를 마주하자 소민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또다시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색해요’라고 하는 거라고 말한 후 모방 발화를 유도했다. ‘어색하다’ 형용사를 확실하게 체득했다.

소민이가 맛있게 먹은 와플

우리 셋은 인생 네컷 사진을 찍고, 치킨을 먹고, 카페에서 와플을 먹었다.

"나도 카페에서 이런 거 먹어보고 싶었어요."

"엄마한테 카페 가자고 이야기해도 돼."

소민이는 그냥 씨익 웃고 다시 열심히 와플을 먹었다.


오늘의 이벤트가 새로운 경험이 되고, 새로운 언어가 될 것이다. 내가 소민이에게 줄 수 있는 아주 작은 선물이다. 소민이는 소풍 가기 전날 밤에 이 이벤트가 생각날까, 아이스크림 ‘설레임’이 떠오를까?

모든 코다가 소민이 같지는 않다. 주변에 도움 받을 건청인이 없는 소민이는 다문화 농부부의 자녀라는 이중의 핸디캡이 있어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 새삼스레 동일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 인지 알 수 있었다. '소민이와 그 부모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 안타까웠다.

2평의 작은 치료실에서 나는 소민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소민이는 나에게 세상을 향한 궁금증을 쏟아내었었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듯 질문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꽉꽉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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