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에서의 마지막 생일
병원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3개월~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의 마지막 생일이었다. 슬프지만, 그냥 그렇게 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첫 번째 계획은 병원에서 가족사진 찍기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섭외해서 엄마를 예쁘게 꾸미고 마지막으로 가족 사진을 찍고 싶었다. 병원 5층의 정원에서 사진을 찍을 계획으로 예약했다. 엄마의 상황을 설명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끝날 수 있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언니가 반대를 했다.
“죽어가는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나는 엄마의 예쁜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인데, 내 욕심이었을까? 언니의 말에 화가 나기도 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예쁘게 화장하고 기분 전환하면 안되는 것인가?
물론, 엄마의 예쁜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내 욕심도 있다. 힘든 엄마를 더 힘들게 하지 말라는 언니의 말에 나는 예약을 취소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진행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엄마는 급격하게 몸무게가 감소했고,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방안을 모색해야했다. 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엄마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특별한 하루를 만드는 것, 그것이 목표였다. 엄마는 꽃을 좋아하지만, 병원에 꽃은 반입이 안된다. 풍선 꽃으로 대체하고, 손주들의 손 편지와 간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간식에는 한 장의 메모지를 넣었다.
“오늘은 민영숙님의 마지막 생일입니다. 엄마가 오늘 하루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분 좋은 말(얼굴이 좋아 보입니다, 컨디션 좋으신 것 같아요, 건강해 보입니다 등)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엄마는 풍선 꽃을 보고 신기해하며 좋아했고, 손주들의 정성 어린 편지에 감동을 했다. 휠체어를 타고 우리는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의사, 간호사, 환경미화원 등 병원 관계자들에게 간식 꾸러미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병실로 돌아와 보니, 엄마의 침대 시트가 새것으로 바꿔있었고, 이불이 정돈되어 있었다.
“침대 시트가 새것으로 바뀌었네. 산뜻하니 기분 좋다.”
병원에서는 시트가 오염이 됐거나, 퇴원을 했을 때 시트를 갈아준다. 그 외에는 시트를 잘 갈아주지 않는다. 호텔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청한 적이 없는데 시트가 바뀌어 있어서 그저 신기해할 뿐이었다. 다용도실에서 환경미화원을 만났을 때 의문이 풀렸다.
“오늘 어머니 생일 축하해요. 제가 간식 꾸러미 받고, 시트 갈았어요. 해줄 수 있는게 이것 뿐이라서요.”
그분이 손을 잡으며 힘내라고 응원의 말을 해주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늘 이상하네. 간호사들이 다 친절해. 좀 전에 혈압 재러 온 간호사가 엄마 얼굴 좋아 보인대. 엄마 괜찮아?”
병원 곳곳의 천사들이 그날 하루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병원 휴게실에서 엄마에게 생일맞이 매니큐어를 발라주었다. 여름이었으므로 시원한 초록색과 흰색 조합을 선택했다. 닭발같이 마른 손 끝에 화사함이 피어올라 생기 있어 보였다. 매니큐어의 시큼한 화학 냄새와 병원의 알콜 냄새가 섞여 내 마음처럼 오묘했다. 엄마 생일 이후로 주기적으로 엄마의 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주었다. 색깔이 바뀔 때마다 엄마의 마음도 밝아졌다.
저녁이 되어서야 엄마에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엄마, 내가 간식 봉투에 편지 써써 부탁했었어.”
“어쩐지, 간호사들이 평상시보다 친절하다 생각했어. 고맙다. 우리 막내.”
엄마의 생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엄마가 웃었으니 내 계획은 성공한 것이었다. 엄마가 작고하고, 3개월 후 주인공 없는 엄마의 생일을 맞이했다. 고인이 된 사람에게는 생일보다 제삿날이 더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의 생일날은 하루 종일 가슴이 아렸다. 내년, 내 후년이 되면 엄마의 생일을 무덤덤하게 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