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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Feb 18. 2020

예순다섯 살 할매 홀로 배낭 메고-B.A

1.꿈만 꿀 순 없어서, 오늘이 가장 젊으니깐

       커피잔을 내려 놓고 배낭을 메기로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구아수 폭포, 그리고 페루의 정글 도시 이키토스를 혼자 어슬렁거리겠구나!’라고 설레며 한 달 전 인터넷으로 비행기 표를 구매할 때는 신이 났었다. 지금까지 페루의 여러 도시들을 혼자 여행할 땐 무섭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경을 넘어 또 다른 나라를 혼자 여행한다는 부담감이 날짜가 다가올수록 슬슬 밀려왔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여행하고 돌아 올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기름을 붓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잠조차 잘 오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여행 중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행기를 놓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또 상파울루에서는 친절하게 대해주는 교민을 만나 그를 따라 갔다가 모든 짐을 빼앗기다시피 해 빈 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현지인들에게 가방과 여권, 돈 심지어 옷까지 털렸다. 사람이 많은 광장 한가운데서 남자 둘이 다가와 페인트 같은 스프레이를 옷, 가방 등에 막 뿌려대고 도망을 갔는데 그 뒤로 또 두세 사람이 다가와 닦아주고 도와주는 척하면서 벗은 겉옷과 모든 걸 다 가지고 도망갔다고 한다. 

‘아, 나에게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큰데 어제는 또 더 사나운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젊은 여자 단원이 권총강도를 만났다. 다치지 않아 다행이지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겼다. 누구나 항상 안전에 유의를 하지만 불상사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렇게 안 좋은 소식에 휩싸이다보니 자심감은 사라지고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B.A에서, 벽화와 젊은이들


 여행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나중에 후회 할 것 같았다. 누군가 말했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무엇을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안 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한다.’고......, 마음을 가다듬고‘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수 있으니 중요한 전화번호는 반복해서 외웠다. 그리고 비상연락 전화를 여러 개 종이에 적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한국대사관 주소도 외우고 여권을 2장 복사하고 사진도 2장 챙겼다.    

 이번 여행은 19일 동안 비행기를 여섯 번 타고 이구아수 폭포를 갈 때는 비행기 대신 20여 시간 정도 걸리는 장거리버스를 두 번 타야한다. 예약한 비행기 표를 모두 인쇄했고 언제 인터넷에 들어가 탑승 체크인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뒀다. 그래도 모든 비행기가 한 항공사라서 다행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착한 첫날 호텔도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예약서류도 인쇄를 했다. 

 다음으로는 모을 수 있는 정보들을 다 모아서 적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도를 펴놓고 예약한 호텔 위치를 찾아 표시를 했다. 낯선 곳에 갈 때는 꼭 해가 있을 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해 택시, 리무진, 아니면 일반버스로 호텔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놓았다. 호텔은 첫날 숙박을 해보고 위치, 가격, 시설 등이 괜찮아 더 있을 수 있으면 좋겠고 아니면 바꾸는 것도 생각했다. 호텔은 위치가 제일 중요하다. 낮에 구경하다 피곤하면 잠시 들어가 쉴 수도 있어야 하고 또 교통수단을 이용하기에 수월해야 하고 안전한 지역이어야 한다.  

 페루에서는 내 은행구좌가 있으니까 어느 지역에서든 카드로 현금을 인출해서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사용할 돈은 모두 달러로 인출을 해 가지고 가되 어떻게 보관을 할 것인가가 고민이 됐다. 가방과 옷에 달린, 지퍼가 있는 주머니 등 여기저기에 돈을 분산해서 지니고 다녀야한다. 만약 한 군데 돈을 잃어버리더라도 비상금은 있어야 하니까. 

     노래 부르는 에비타가 보이시나요?


 혼자 여행 할 때는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가고 싶은 곳을 지도에서 찾아 표시를 하고 호텔에서 어떻게 가는 지 또 언제 가는 것이 좋은 지 등을 익히다 보니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입력이 됐다. 그러나 종이 위에서 눈으로 보는 것과 도시에 들어가 직접 여행하는 것은 너무도 다를 것이다.

 큰 도시를, 손바닥만 한 지도로 어떻게 가늠을 하겠는가. 그래도 머릿속으로 동선을 자꾸 시뮬레이션 해보고 거리 이름이라도 외우니 불안감이 조금 가셨다. 또 다른 사람들이 여행하고 올린 블로그의 사진과 글도 찾아보고 가지고 있는 여행책도 보면서 이것저것 공부를 했다. 이번 여행은 실행보다 준비가 반 이상이고 지금까지 여행 중 제일 겁을 먹고 있다.

 이런 내 모습을, 자주 통화 하는 딸에게 말을 하면서 위로와 조언을 얻었다. 적국의 공작원이 임무를 실행하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침투해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고, 너무 비장하다고 딸이 놀렸다. 그렇다. 내게는 그 어떤 임무보다도 이번 여행을 잘 하고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과정이 힘들고 어려움이 좀 있어도 아직은 내 삶에서 여행을 포기하기 싫다. 새로운 일상을 창조하는 일이며 신나는 일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영어와 현지어를 잘 못한다고 또 나이가 많다고 혼자 배낭 메고 여행을 못 할 이유는 없다. 준비만 잘 하면 된다. 아자아자  



 이름 그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좋은 공기)- 2층 버스 맨 앞좌석에서 찍었어요.



**여기 실린 제 글과 사진을 함부로 도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 이석례 (필명 : 실비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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