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12월이 되자
2024년 12월 3일.
어휴, 이제 자야지 하고 돌아누운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핸드폰 액정이 반짝 불을 밝히며 소리 없는 알림을 띄운다. 불빛을 애써 무시하려고 해 보지만 왠지 봐야 할 것만 같은 직감이 들어 액정을 확인한다. "윤석열 대통령 계엄 선포" 현실감은 없다. 모의훈련 뭐 이런 건가 싶다. 기자 친구들의 전언을 들으니 실제인 듯하다. 카톡방은 점차 뜨거워진다. 처음엔 어이없는 탄식이 주를 이뤘지만, 속속들이 공포, 분노, 무력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짧은 단어들 속에서 스며 올라온다.
그래도 어쨌든 잠을 청하고 다음 날을 맞이했다. 매일 아침 루틴이던 경제 팟캐스트는 뒤로 하고, 뉴스를 계속 뒤적거린다. 아침부터 예민함과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한다. 출근하니 다들 단발적 분노를 표출한 뒤 허탈한 웃음으로 마무리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직장인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게 맞나 싶다.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는 끔찍한 날이었는데. 어제의 일에 대해서는 몇 마디조차 나누지 않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 동기들 중에는 계엄이 뭔지도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계엄이 야기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찬탈은 알지 못한 채, 코인과 주식 걱정이 제일 먼저인 모습을 보니 조금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후 몇 날 며칠을 나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시달렸다. 너무 안일했던 것은 아닐까,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나와는 먼 일이라고 치부하고 이야기조차 꺼렸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낯부끄러운 감정으로 불과 몇 십 년 전 일어났던 대한민국의 다른 계엄과,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밤새 미친 사람처럼 콘텐츠를 찾아 헤맸다.
한껏 예민해진 몸을 이끌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등학생들의 대화가 들린다.
"내가 살아 있을 때 계엄은 못 보고 죽을 줄."
알 수 없는 어딘가 뒤틀린 감정이 올라온다. 계엄과 이것에 얽힌 욕망과 위선의 집체들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스토리다. 하지만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우리는 평화로운 평범한 날들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왔다. 초등학생 아이가 계엄을 마치 하나의 드라마 에피소드처럼 이야기할 정도로.
역사의 진보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지만 후퇴는 순식간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평범하기가 제일 힘들다는 말은 조금만 각도를 돌려보면, 평범해지기 위해서는 일상 속의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력과 투쟁이 은은하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뜻 아닐까?
우리는 평범한 밤을 되찾을 것이다. "역사"는 진보하지만은 않지만, "우리의 역사"는 결국 조금씩 진보해 왔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세대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빼앗겼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서 그 역사가 반복될 뻔 했다. 우리는 불편한 잔해들을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이 응시해야 한다. 쇼츠나 코인은 잠시 멀리하고,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일컫자면 자유, 민주, 생명, 역사, 타인, 연대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12월이 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