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와 들뢰즈
인생의 지름길이란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개인이 지닌 출중한 역량, 그것을 타고났다면 그 또한 지름의 조건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보통의 존재들에게는 그 지름의 조건도 결핍의 문제이다. 질러가기는커녕 더 둘러가고 돌아가는 길, 때때로 잘못 들어서는 길. 어쩌면 이렇게까지 길고 먼 길일까? 스스로의 모자람에, 나보단 쉬워 보이는 남들의 경우에, 화도 나고 질투도 일고….
그런데 또 뭐 어쩌겠는가? ‘빠름’이 내 인생의 속성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면, ‘느림’에 대한 두둔으로 돌아서, 누구보다 빠르고 싶었던 스스로를 다독이는 수밖에….
들뢰즈의 키워드 중에는 다양체 혹은 복합체라는 개념이 있다. 한 사건을 이루는 복합적인 조건 혹은 관계, 그리고 그것이 지닌 여러 경우의 수에 대한 가능성. 들뢰즈는 이를 벡터와 미적분 개념으로 설명한다. 벡터는 실재의 속성이 아니다. 힘과 방향의 잠재성이다. 인생방정식에선 그 벡터가 미지수이기도 하다. 특정한 벡터가 아닌 무수한 벡터로서의 가능성,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여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때문에 자칫 X될 수도 있다는 거. 그러나 그냥 체념에 대한 푸념만 늘어놓고 있으면, 그건 또 X도 아닌 거다.
누구나가 속성(速成)의 방법론을 욕망한다. 애초부터 둘러가는 길을 욕망하는 이들이 많기나 할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돌아가게 된 길에서 겪는 많은 것들이 당신에게 잠재되는 다양체의 벡터다. 남들과 구분되는 유니크한 '차이'로서의 아이덴티티도 그 길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테고…. 어차피 지름길이라는 게 남이 만들어놓은 길이 아니던가.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또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차라리 둘러가고 돌아가고 때로 잘못 들어서는 이 길이, 저 너머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미 당신의 길인지도 모른다. 그 긴 시간이 우리 몸에 새겨놓은 삶의 감각으로 나아가는 자기만의 길과 삶. 하여 결핍이 아닌 생성의 조건이라는….
<논어>, '자로' 편에 적혀 있길, 欲速則不達(욕속즉부달) 서두르면 통달하지 못한다. 어차피 늦어버린 인생, 이젠 더 늦거나 덜 늦거나의 차이 밖에 없다. 늦은 김에 두루 보고 듣고 느끼고 가는 여정이 되시길, 그마저도 없으면 정말 늦은 것밖에 되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