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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티에 Dec 27. 2021

엄마가 늙었다

왜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에 모든 걸 토해내는가 



마음이 요동친다. 

힘들다. 이럴 때면 어떤 것도 소용없고 조용히 마음속 출렁이는 것들은 하나씩 나열해 본다.

엄마에게 전화로 소리치며 울었다. 

딸자식 시댁에 조금이라도 책 잡히랴 온갖 걱정 다 짊어지고 사는 엄마가 나를 아프게 한다.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엄마에게 세상 효도 다 할 것처럼 철이 들 만한, 나는 산후 1년이 조금 넘은 딸이다. 그런 이때, 나는 왜 그랬을까.


속이 상하다. 

딸자식 위해 전전긍긍 대는 엄마를 보면 안타깝고 속이 상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토록 모질게 엄마에게 쏘아 부치는 것일까.

그게 싫어서일 게다. 엄마가 딸인 나를 안타까워하듯 나도 엄마가 가엽다. 아깝다. 닳아버릴까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분을 이기지 못해 또 엄마에게 화를 냈다.


아이를 낳고, 딸을 낳고 알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 내내 걱정되고 짠하고 또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불안함이 있다.

그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런 딸은 또 지금의 나처럼 그런 엄마가 고마우면서도 짠하면서도 화가 날 거다.

내 엄마도 나의 할머니에게 그랬듯이......


나의 외할머니는 항상 엄마에게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엄마는 늘 화를 냈다. 

미안하다고 하는 당신의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엄마가 나는 이상했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왜 엄마는 화가 난 걸까. 그리고 할머니는 엄마에게 무엇이 미안했던 걸까.

하등 미안할 일도 아닌 것에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할머니가 나는 좀 가여웠다.


그런 할머니를 싫어했던 엄마는 지금 그때의 할머니 모습이다.

나는 그때의 엄마가  엄마가 괜히 화를 낸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는 그때의 엄마를 너무 닮아있다.


나는 늘 후회를 하고 산다.

특히 엄마에게는.

엄마가 늘 그랬던 것처럼.


왜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인가.

사랑도, 그리움도, 화도, 원망도, 애틋함도, 슬픔도......

나의 불안정한 호르몬이 요동치는 날이면 나는 그토록 서럽게 운다. 나의 엄마는 그걸 아주 싫어하신다. 

하지만 눈물이 많은 건 비단 호르몬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나의 엄마'만이 희생자 같고, 책임(을 져주는) 자 같고, 끝없는 나의 보호자 같기 때문에 나는 항상 엄마 앞에선 무너진다.

마흔을 넘은 딸은 아직도 엄마의 가슴 미어짐은 모른 척하고 싶은가 보다.


왜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를 떠올리며 늘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것인가.

엄마의 손등의 주름이 눈가의 주름보다 더 아픈 건, 내가 엄마의 손길 하나하나 거쳐 자랐기 때문일 거다.

엄마 손등의 주름은 어느새 세월이라는 시간의 바람을 타고 검고 굵게 변했고 이제 그 손등은 어디 내놔도 할머니의 손이 돼 버렸다. 

한없이 포근하고 은은하게 풍기던 화장품 냄새의 젊은 엄마는 가고 이제는 할머니가 앉아있다.

나는 엄마가 왜 아직 젊은 엄마로 남아있지 않은지, 왜 이렇게 빨리 늙어버렸는지, 무엇이 이렇게 세월을 가게 했는지, 야속하고 또 야속해 엄마에게 화가 난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와 엄마가 사무치게 그립다.


이제 엄마는 내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화를 내는 내게 뭐라 하지도 않는다.

그게 또 나를 화나게 한다. 

엄마가 늙고 있는 거다.

어쩌면 좋은가......  




배경: 김해진 作 <엄마와 나>

배경作 <엄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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