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촘촘해서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할 듯 투명하고 고운 뺨을 내보인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새근새근 내뱉는 숨, 작게 부풀었다 가라앉는 배. 형형색색의 장난감으로 가득 찬 책장들이 조그마한 아이를 둘러싸고, 따뜻한 햇살이 블라인드 사이로 날아드는 순간은 이 장면을 내게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려는 것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정말 예뻐 죽겠네. 더없이 평화로운 시간, 실크처럼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이 아이를 무척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사회복무지로 발령받은 병설유치원 특수반인 사랑반에서 근무한 지 1년째 되는 해에 처음 만났다.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발달 장애라 했다. 딱딱한 세상 속,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는 작고 예쁜 아이는 쉽게 깨질 듯한 유리알 같았다. 너가 은설이구나. 휠체어에서 조심스럽게 일으키고 아이가 가진 모든 무게를 내게 온전히 맡긴 찰나는 맞잡은 손을 통한 아이와 나, 두 세계의 충돌이었다. 여리지만 힘찬 걸음마. 아이는 힘겹게 문턱을 넘어 사랑반으로, 또 내 삶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이름도 은설이니. 아이는 이름을 그대로 담아낸 듯 맑고 투명했다. 새로 왔던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를 찾으며 지칠 때까지 울거나, 흥미를 갖고 반을 탐구하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해야 하는데 아이는 생각을 알 수 없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편안히 나를 바라봤다. 지적 장애와 지체 장애, 둘 중 하나만 가지고 있던 기존의 친구들과 달리 두 가지 장애를 다 가지고 있던 아이는 도움 없이는 화장실에 갈 수도, 친구와 소통할 수도, 놀이를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 옆에 기대듯 앉아 있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속하는 것이였다. 군인도, 사회인도 아닌 내 신분은 무소속과도 같았다. 그런 내게 의존하는 아이는 공허한 소속감을 채워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아아오. 우아. 애오. 웃거나 울거나, 말을 걸거나 대답을 하거나. 아이는 몇 마디 짧고 간결한 음절만을 말했다. 세상은 복잡한 말로 가득 차 있으니까. 마음은 늘 단어와 문장을 넘어서고, 본능적이되 소박한 표현들은 신기하게도 언어의 경계를 넘어 더욱 또렷했다. 그러니까 아이의 꾸밈없는 음성 앞에서 언어라는 것은 다양한 이름으로 꾸며진 포장지 같았다. 아이의 소리에는 언어가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있었고, 나는 그 공백을 잘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소극적이던 아이는 어느새 내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큰 키는 아이에게 성이 되었고, 강한 힘은 아이를 가볍게 들어 올렸으며, 유난히 따뜻한 체온은 아이의 작은 몸을 데웠다.
점심 시간, 숟가락만 들이밀면 고개를 돌리던 아이는 이후 스무 번은 더 시도해야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마저도 삼키지 않고 내 손에 뱉어낸 아이는 입속을 비운 것이 개운한 듯 빤히 보고 웃었다. 이 과정이 수천 번쯤 반복되고 어느 날, 음식을 주는 족족 삼켜낼 때 내게 요란한 기쁨이 채워졌다. 아이 밥을 참 잘 먹인다는 선생님들의 칭찬보다도 단순히 아이가 음식을 삼킴으로써 살을 채우고 뼈를 늘려갈 것이 기뻤다. 스스로를 가득 채우고 늘려서 이 작고 여린 아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에 포함되어 살아가길 바랐다.
어느 날은 아이가 모종삽으로 퍼올린 모래를 내 머리 위에 흩뿌렸다. 혹시나 아이 눈에 모래가 튀진 않았는지 걱정됐고 어느 날은 처음 입고 나온 니트에 슬라임을 묻혀 옷을 버려놓아도 아깝지가 않았다. 또 어느 날은 안고 있는 와중 어깨가 흠뻑 젖을 만큼 토를 했다. 종종걸음으로 데려다 놓은 양호실에선 동동, 발을 굴렀다. 아마 그런 사랑이었다. 미래의 내 아이에게 줄 사랑을 이 아이에게 다 줘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될 만큼의 그런 사랑.
5월 소집해제, 전역일이자 이별하는 날. 벗어나는 군 복무에 대한 해방감보다 아이를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훨씬 더 컸다. 잠식해가는 그리움. 더해가는 주책. 울지는 않는지. 밥은 잘 먹는지. 걷다 넘어지진 않는지. 또 주책, 그리고 집착이었다. 그래서 전역 후에도 행사 등 유치원에 도와줄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랑반을 찾아갔었다. 아이가 너무 보고싶어서 졸업하는 날까지만 이별을 미루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미성숙한 유예는 마침내 12월 끝자락에 닿았다.
무릎을 꿇고 앉아도 아직 한참은 작은 아이였다. 졸업 가운과 사각모를 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손을 잡고 볼을 꼬집고 끝내는 안기도 한 다음 등을 쓸어내렸다. 은설아... 일방적 인사. 아이는 이별의 순간인지도 모르고 해맑게 웃었다. 슬펐다. 열 번쯤은 보지 않고 나서야 너가 알게 될 우리의 이별이. 아이의 아픔 중 가장 큰 아픔은 너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을 모르는 아픔 같았다. 슬퍼할 시점이 서로 다른 슬픔. 그러니까 슬픈 표정을 지으면 헤어지는 순간임을 알까. 눈물을 흘리면 알아줄까. 아이는 친구가 울면 함께 울거나 눈에 바람을 불어주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처럼 활짝 웃어 보이기로 했다. 아이가 자신의 속도에 맞춰 슬퍼할 수 있도록.
회백색 겨울, 계절과 유난히 잘 어울리던 아이와 이별했다. 눈이 내릴 듯 차가운 공기가 감돌면 자연스레 그 아이를 떠올린다. 기억은 곧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또 새겨짐이 된다. 네 개뿐인 계절 중 하나에 진하게 새겨져 버린 아이의 색을 나는 지금도 지우지 않았다. 스스로 바래지도 않았다. 그래서 겨울이 다가오면 나는 다시 너를 생각하게 된다. 희어 눈부신 겨울과 너무나도 닮았던 너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