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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Oct 05. 2015

#05 마라 평원에서 만난 동물들 1

분량이 많아 이번 글은 초식동물들, 다음 글은 육식동물들과 조류로 나누어 올립니다.

올룰롤로 관문에서 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야생동물의 지상 낙원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 내로 들어왔다.

전형적인 마라 평원의 풍경

보호구내는 양쪽 고지대를 사이로 드넓은 초원이 있다. 양쪽 고지대는 지각활동 때문에 생긴 단층이 급경사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렇게 생긴 고지대를 층애(層崖: escarpment)라고 하고 그 사이의 골짜기를 열곡(裂谷: rift valley)이라 한다. 마사이 마라의 열곡은 에티오피아까지 뻣어 있는 아프리카 대열곡의 일부다. 마사이 마라와 아프리카 대열곡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신청되어 있다.

마라 평원에서 바라본 층애

이 층애 위에 숙소인 '덤불 캠프 (bush camp)'가 있다. 층애의 급경사면에서 바라보면 탁 트인 마라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캠프가 있는 층애에서 바라본 마라 평원

올룰롤로 관문을 통과하니 이미 늦은 오후가 되어 덤불 캠프로 향했다. 캠프 관리인이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울타리를 치지 않은 자연친화적 캠프라는 설명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거기서 자는 나 같은 사람도  야생동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물으니 웃으며 밤에는 마사이를 고용해 교대로 텐트 주변에서 경계를 서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일단 안심.


밤이 되자 경계근무자가 텐트 앞에 와 있었다. 그런데 경계를 서는 마사이는 맨손. 만약 사자라도 출현하는 날엔 과연 무슨 수로 나를 보호해 준단 말인가? 그래서 몇 마디 붙여 보니 이 친구는 영어가 짧고 나는 마사이가 쓰는 말(동나일제어; Eastern Nilotic language)을 못하니 서로 웃기만 하다 말았다.


이날 밤새 텐트 주위가 어수선하고 가끔 괴성이 들리곤 해서 잠을 좀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 관리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얼룩말떼가 캠프로 들어와서 소란을 피웠단다.

덤불 캠프에서 내가 묵었던 텐트

다른 곳은 몰라도 마사이 마라에선 노련한 가이드와 잘 정비된 사륜구동 크루저가 필수다. 그래야 드넓은 마라 평원에서 헤매지 않고 여러 동물들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흙탕에 차가 고립되어 사자밥이 될까 하는 걱정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이른 새벽 크루저에 몸을 싣고 드디어 마라 평원으로 나왔다. 눈 앞에 펼쳐진 야생의 마라. 그  후로 삼일 동안 마라 평원에서 수 많은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찍은 사진도 정리할 겸해서 그때 만난 동물들의 사진과 당시의 에피소드를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그날 그날 메모를 해두긴 했는데 막상 사진을 올리려고 하니 이름이 정확치 않은 것이 상당수 있어 참고 자료를 찾아 이름을 파악했다.


임팔라

큰 귀를 쫑긋 세우며 이방인을 쳐다 보는 어린 암컷 임팔라들. 긴 속 눈썹에 까맣고 큰 눈이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 어린 암컷 임팔라들

수컷들은 멋지게 생긴 뿔이 있다. 이 녀석들이 껑충 껑충 뛰는 것을 보면 발에 무슨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 같아 보인다. 엉덩이와 꼬리, 뒷 다리에 선명한 검은 줄무늬가 있어 멀리서도 임팔라를 식별할 수 있었다.

풀을 뜯는 수컷 임팔라

임팔라들은 총각 수컷 무리, 암컷 무리가 따로 무리 생활을 하는데 성숙한 수컷 중 일부는 혼자 떨어져 나와 각자의 영역을 개척한다고 한다. 이렇게 홀로 떨어져 나와 사는 수컷들 만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암컷과 짝짓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수컷들과 때로는 치명적일 수 있는 영역 싸움을 치러야 한다.


마치 프레이저(James G. Frazer)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 나오는 고대 네미(Nemi) 숲의 왕처럼. '황금가지'에 나오는 고대 네미 숲의 왕은 혼자 숲에 떨어져 나와 살아야 할 뿐 아니라 누구든 그를 죽이면 네미 숲의 왕이 될 수 있다.        

비 맞는 암컷 임팔라 무리. 야생동물들은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고 있어야지 별 다른 수 가 없다.


누(gnu)

누떼는 백만이 넘는 숫자에 먹어치우는 풀의 양도 엄청나서 '초원의 잔듸깎기'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마라 평원에서 제일 실컷 볼 수 있는 동물을 꼽자면 누(gnu) 만한 것이 없다. 마라 평원에서 수백 마리의 누가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오는 일은 흔히 있는 일.

드 넓은 평원에 별처럼 깔려 있는 누(gnu)를 종종 볼 수 있다

매년 약 120만에서 140만 마리가 마라 평원을 찾아온다고 추산하고 있다. 지난 글 '#04 체체 파리와 마사이 이야기'에서 얘기한 우역(牛疫: rindefest)이 창궐하던 1880년대 직후엔 약 25만 마리 정도의 누가 생존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역이 지나간 후에는 누의 숫자가 급격히 늘었으나 지간 수십 년간 마라로 들어오는 누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Ogutu et al., 2012).  

평화로워 보이는 마라강

마라 평원에는 샌드, 탈렉, 마라 이렇게 세 지류와 이들이 합쳐진 마라강이 흐르는데 매년 수 많은 동물들이 강을 건너다 악어의 밥이 되고 만다. 멀리서 보면 평화로워 보이는 마라 강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동물의 사체와 뼈가 강변에 그대로 쌓여 있다. 대다수는 누의 것들.

마라 강변을 자세히 보면 동물들의 사체와 유골이 널려있다. 누의 뿔이 많이 보인다.

누는 임팔라처럼 높이 뛰지도 못하고 다리는 가는데다 몸집은 커서 맹수들의 밥이 되기 십상일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엔 수심이 가득.

흰 수염에 갸냘픈 다리의 누


하마

하마는 초식동물이지만 수컷 하마는 4.5톤까지 나간단다. 샐러드만 먹는다고 다이어트가 되는 것은 아닌 듯.


가이드 말로는 마사이 마라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사자도 아니고 코끼리도 아닌 초식동물, 하마라고 한다. 하마는 1미터 50센티 까지 입을 벌릴 수 있다고 하는데 턱의 근육이 워낙 발달해서 무는 힘으로 웬만한 동물의 두개골을 박살 낼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약 20cm에 이르는 예리한 송곳니가 있어 하마에게 물리면 사자라도 살아남기 힘들단다.  


강에서 더위를 시키고 있는 하마 무리를 만났다. 무리 중엔 태어난지 얼마 안된 새끼 하마도 있었다.

등의 상처는 하마들 끼리 싸우다 생긴 것 이라고 한다.
엄마 얼굴 반쪽 만한 새끼 하마

새끼는 하마마저도 귀엽다. 새끼 하마가 놀고 있는 강 상류에 악어 두 마리가 접근 하자 성숙한 하마들이 새끼를 에워싼다.


얼룩말

얼룩말 들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서서 사주경계를 하곤 한다. 한 망아지와 어미는 그렇게 사주경계를 하다가 크루저가 접근하자 호기심 많은 망아지 녀석이 방향을 바꿔 둘 다 우릴 쳐다 보았다.

둘은 그렇게 우리를 한참을 쳐다보다가 엄마가 망아지에게 다시 뒤로 돌아 서라는 듯 망아지를 밀어 붙인다.

엄마한테 혼난 망아지는 잠깐 반항을 시도해 본다.

그러나 결국 하는 수 없이 다시 뒤로 돌아선다.

그렇게 엄마 얼룩말은 아기 얼룩말에게 생존에 꼭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동물들은 직접 긁을 수 없는 부위가 가려울 때 어떻게 해결할까?  사람처럼 누구에게 긁어 달라고 할 수 도 없고 효자손도 없는데 말이다. 다행히 마라 평원에 시원하기로 소문난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에다 대고 얼룩말 하나가 배를 열심히 긁는다. 아무래도 이 바위가 시원하단 소문이 동네에 쫙 퍼진 듯. 한참을 긁고 있는데 다른 한 녀석이 와서 자기도 좀 긁자고 비켜 달란다. 나름 경쟁이 심하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배를 긁고 있는 얼룩말. 일부러 딴 데 쳐다보는 수법마저 쓴다.

기다리던 얼룩말 참다 못해 완력으로 배를 긁던 얼룩말을 밀어내고 앞 가슴을 긁는다. 정말 가려웠나 보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만난 또 다른 얼룩말 가족. 어미 얼룩말의 오른쪽 뒷다리에 천적에게서 입은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보인다. 만약 어미가 잡아 먹혔다면 어린 새끼도 생존할 가망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평화로워 보인다 하더라도 마라 평원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코끼리

마사이 마라 국립보후구 내에서는 크루저가 동물과 유지해야 하는 최소 거리가 규정되어 있어 이를 지키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벌금을 물린다. 특히 코끼리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는데 코끼리가 발로 느끼는 땅의 진동에 유난히 예민한데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육상동물인 코끼리는 그 자체로 상당히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코끼리 무리가 보이면 저속으로 움직이다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거리까지 가면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시동을 끈 채로 코끼리 무리가 지나가는 것을 관찰한다.

마라에서 만난 아프리카 코끼리 가족. 왼쪽에서 두번째의 큰 상아를 보이는 것이 수컷이다.

아기 코끼리 두 마리가 포함된 코끼리 무리를 만났다. 희고 긴 상아가 멋진 수컷이 우리에게 귀를 펄럭였다. 자신을 더 크게 보여 상대를 위협하려는 행동이라고 한다. 가까운 거리가 아녔는데도 아마 새끼들 때문에 예민해진 모양이다. 새끼 두 마리는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둘이 열심히 장난을 치면서 걷는다.


그 다음날 다른 코끼리 무리를 또 만났는데 호기심 많은 아기 코끼리가 우리를 보고 막 달려오더니 멈춰서서 우리에게 귀를 펄럭인다. 나름 위협이라고 했는데 귀여우니 어찌할꼬.

아마도 언젠가 아빠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해 본 모양이다. 엄마로 보이는 코끼리가 천천히 다가오자 아기 코끼리가 무리로 돌아 갔다.

우리에게 접근한 새끼의 어미 코끼리 인듯 하다.


기린

아프리카 코끼리가 육상동물 중 가장 무겁다고 하지만 가장 키가 큰 육상 동물은 물론 기린이다. 그 커다란 동물의 무리가 한 방향을 향해 느릿 느릿 걸어가고 있는 모습은 무슨 종교의식이라도 거행하는 사제들 같다.

사람의 경추(목뼈)는 7개. 기린의 경추 역시 7개다.

기린들은 무리 내 서열 결정을 위한 싸움도 역시 목으로 한다. 살살  한 번씩 목을 서로 치는 '약한 목싸움'과 이보다 격렬한 '강한 목싸움'이 있다고 한다. 살살 치는 것 같은데 심한 경우 사망할 수 도 있다고 한다.  

'약한 목싸움(weak necking)'을 하고 있는 어린 기린들. 사이 좋게(?)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친다.


버펄로

앞 가르마를 멋지게 하고 머리를 말아 올린 이 녀석은 수컷 버펄로.

한참동안 이 수컷 버팔로는 나를 관찰하고 나는 이 버펄로를 관찰했다.

버펄로는 워낙 크고 무거운데다 뿔이 날카로워 사자도 감히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고 한다.

마라 평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버펄로.
건장한 체구의 수컷 버펄로.

버펄로는 암수 모두 뿔이 있는데 수컷의 뿔이 더 크다.

엄마와 새끼 버팔로. 뒤에는 버펄로 떼가 있다. 위험을 감지하면 새끼를 가운데 에워싸 보호한다.


워터벅 (waterbuck)과 일런드(eland)

마라 평원의 영양들 중 몸집이 큰 편에 속하는 워터벅. 멋진 줄무늬 뿔이 있다.

워터벅

워터벅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뿔이 꼬여 있으며 뒤에서 보면 앞 다리에 검은 줄 무늬가 있는 것이 일런드.  

일런드
뒤에서 보면 앞 다리의 줄무늬가 선명하게 보인다.

토피(Topi)

토피는 마라 평원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영양중 하나다. 뒤에서 보면 다리 윗 부분이 청바지를 입은  것처럼 푸르기 때문에 멀리서도 다른 영양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토피

모여서 흙을 파먹고 있는 토피의 무리를 멀리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흙 안에 있는 인(燐: phosphorus)이나 소금과 같은 무기질을 섭취하기 위해서란다. 보기보다 똑똑한 토피.   

토피의 얼굴을 보면 왠지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얼굴엔 항상 흙이 잔뜩 묻어 있는데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눈 주변에 꼬이는 파리와 벌레들을 없애기 위해 진흙에 얼굴을 문지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피의 얼굴 클로즈업


톰슨 가젤 (Thomson's gazelle)

고요한 마라에서 가끔 멀리서 마른 나무 가지를 비비고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곤 한다. 성숙한 숫 영양들이 뿔을 부딪치며 영토싸움을 하는 소리다.  그중 하나가 톰슨 가젤. 수컷은 길고 쭉 뻗은 뿔이 있다. 암수 모두 몸통에 검은 줄무늬가 있어 멀리서도 구별이 쉽다.

암컷 톰슨 가젤 무리.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가젤은 새끼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톰슨 가젤은 임팔라와 비슷한 무리활동을 한다. 장가 들기 포기한 총각 수컷들 무리와, 암컷 무리, 무리 생활을 하지 않고 혼자 생활하며 영역을 지키는 성숙한 수컷이 있다. 역시 혼자 영역 활동을 하는 수컷만 짝짓기를 한다.

쉬고 있는 수컷 톰슨 가젤 무리

코뿔소

코뿔소는 마라 평원의 동물 중 멸종위험이 가장 높은 동물 중 하나다. 과거 밀렵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코뿔소는 사람을 경계해서 그런지 우리에게 거리를 잘 주지 않았다. 삼일 동안 돌아다니면서 본 코뿔소는 딱 두 마리. 그나마  그중 한 마리는 멀리서 뒷 모습만 어렴풋이 봤다. 다행히 한 마리는 멀리서나마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리도 있고 해서 그리 잘 나오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땐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코뿔소의 얼굴과 등에 옥스페커(oxpecker)라는 새가 타고 있다. 코뿔소나 버펄로의 등에 붙은 진드기를 먹고 산다고 한다.

멀리서 망원렌즈로 잡은 코뿔소. 선명하지는 않으나 자세히 보면 머리위에 옥스페커(oxpecker)가 보인다

코뿔소를 보면서 마라 평원엔 참 생김새도 각양각색인 동물이 모여 산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마라는 정말 '생물종 다양성'을 직접 체험하게 해준다.

마라 평원에서 찍은 동물들의 사진과 에피소드에 대한 얘기는 육식동물들과 조류를 다룬 다음 글, "#06 마라 평원에서 만난 동물들 2"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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