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평범했다.
사내 승진시험 공고가 떴고, 회사는 여전히 바빴으며, 전화기는 끊임없이 울렸다. 다가오는 긴 연휴를 기다리며 마음이 살짝 들떴다. 이번엔 아내가 가고 싶어 하던 여행은 미뤄 두고, 스터디카페에서 시험 준비를 하기로 했었다. 바쁘지만 안정적인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 통의 진단서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병원에선 내게 갑상선암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추가 검사와 상담을 받으며 치료 계획을 세웠다. 현실감을 잃은 채, 한 가지 질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아직 30대인데, 그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암이 왜 나를 찾아온 걸까. 나는 내 마음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아내와 어머니에게 암 판정 소식을 전했다.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이내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 때문에 슬퍼하는 가족을 보며 나 역시 목이 메었다. 이 하루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던지, 어제와 오늘이 이어지는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했다. 인터넷에는 넘치는 정보가 있었지만, 무엇 하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내용은 없었다. 나는 자신을 위로하려 애썼지만, 결국 다가오는 연휴는 내게 너무나도 길고 막막한 시간이 되고 말았다.
암 판정 후, 일상은 멈춘 듯 흘러갔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꿈이길 바랐지만, 현실은 매일 아침 다시 나를 찾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잔소리하던 아내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를 볼 때마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그 와중에도 회사 일이 걱정되었다. 연말 업무로 바쁠 텐데, 내가 없는 동안의 공백을 누가 채울지, 기한 내 제출해야 할 자료는 어떻게 할지. 결국 상사에게 소식을 전했다. “목에 결절이 있어 치료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둘러댔지만, 사실은 점점 알려지게 될 내 상황이 두려웠다.
직장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부고장이 메일함에 도착한다. 순간 모두가 슬퍼하지만,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 웃고 떠드는 풍경이 익숙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내 소식을 듣고 위로해 준 동료들의 말 역시, 오늘 점심 메뉴 고민 속에 묻힐 것이 분명했다.
친구 몇 명에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오랜만에 전화를 받은 친구는 깜짝 놀라며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마.” 친구의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치료 방향을 함께 고민해 주고, 지방에 있는 추천 병원을 알아봐 주는 등 실질적인 도움도 아끼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어릴 적처럼 매주 만나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그대로라는 것을. 나를 걱정하고 응원해 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오래전 추억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만들었던 ‘무한도전’이라는 팀.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대학으로 떠나고, 사회의 문턱 앞에서 좌절을 겪었으며, 가정을 꾸리느라 바빠졌다. 함께했던 시간은 오래전에 멀어졌지만, 그 기억들은 여전히 따뜻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시련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아마 이 감정들도 흐릿해지겠지만, 이 시간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 30대를 돌아보니, 일에 치여 살았던 기억과 예상치 못한 시련이 씁쓸하게 남는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언젠가 이 아픔도 희미해질 것이라 믿는다. 40대, 50대, 60대에는 웃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가족도, 친구도, 나도. 모두 그렇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