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중심이 되는 가치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에게 그 중심은 오랫동안 '성공'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며 승진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안정된 수입, 직책, 그리고 '성실한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내 삶에서 우선시했다. 하지만 쉼 없이 달려가던 일상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멈춰 섰다. 몇 달 전,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게 과연 잘한 걸까?”
병원을 알아보는 동안,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 특히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적었는지,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새삼 깨달았다.
미국에서는 가족과의 시간이 삶의 중심이다. 배우자와 함께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를 나누고, 함께 여행을 떠나며 추억을 쌓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면, 한국에서는 '가족을 위한 희생'이란 곧 나 자신을 갈아 넣어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승진을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고, 배우자가 가정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흔한 풍경이다. 나도 그런 '희생'의 일원이었고, 그것이 가족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병이 내게 던진 질문은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가족을 위한 걸까?”
병을 얻은 만큼, 내 시야도 바뀌었다. 회사에서 내 역할보다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내는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나를 위해 울어주고, 웃어주었다. 내가 상심해 있을 때 아내의 따뜻한 응원과, 따끔한 일침은 내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로였다.
미국에서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선택을 응원한다고 한다. 그 선택이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시각이 우세하다.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조언과 함께 조금만 더 참으면 얻게 될보상이 주된 논리가 된다. 그 논리 속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종종 뒷순위로 밀려난다. 나 역시 그 현실 속에 살았고, 그 흐름에 충실했다.
나는 삶의 무게중심을 조금씩 옮기기로 했다. 미래에 대한 욕심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더 귀하게 여기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요리를 하다 문득 터지는 웃음소리, 주말에 짧게 다녀오는 여행,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 이런 평범한 일상이 쌓여갈수록 내가 가야 할 길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가족이란 단지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나누고 서로를 보듬으며 만들어가는 관계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치료를 받는 동안 느낀 점은 물질적 성공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지금 내 곁에 머무는사람들과의 순간이다. 갑작스러운 시련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덕분에 삶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평범한 한 끼, 그리고 하루 끝자락의 잔잔한 대화까지.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작지만, 확실한 이유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