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밭, 초록빛 시금치가 잔뜩 깔려 있다. 바람은 차갑고, 하늘은 투명하다. 손끝에 닿는 흙의 감촉은 오랜 세월 묵묵히 흘러온 누군가의 손길을 닮았다. 이 작은 잎 하나하나에는 수많은 시간이 담겨 있다.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자란 시금치이지만, 올해는 온기가 과했는지 잎이 그 기세를 잃었다. 계절과 날씨의 변덕이 작물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보니, 이 일을 이어온 사람들의 손길이 얼마나 고단한지 새삼 느껴진다.
이른 시간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주름진 손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어깨, 그리고 말없이 땅을 바라보는 그 눈빛. 그 속엔 묵묵히 걸어온 시간과 정성이 고요히 깃들어 있다. 값어치를 떠나 이 땅에서 자란 모든 생명에는 그들의 땀과 노력이 깊게 배어 있다.
푸른 잎 사이로 손을 뻗어 시금치를 따기 시작한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햇살이 등을 데우고, 바람은 흙냄새를 가득 실어 나른다. 작은 시금치 한 포기를 캐는 이 짧은 순간에도 흙의 온도와 생명력이 손끝에 와닿는다. 작은 잎새에 깃든 긴 이야기가 밥상 위에 오르고, 또 누군가의 하루를 채울 때, 이 모든 과정이 단순히 수고로움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은 시금치가 조금 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