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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걱정의 습격

by 봄책장봄먼지

#7_(남다른) 걱정의 습격


"갑자기 너무 걱정이 되네!"


그녀가 일부러 봄보미 방까지 친히 찾아와 책상에 앉아 있는 봄보미와 두 눈을 맞춘다. '나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데 (심지어 '종이의 습격' 글에서 말했듯 '국소 부위 음영'이라는 결과를 받았을 때도 바로 '여한죽-죽어도 여한이 없다- 리스트' 작성에 들어섰던 봄보미다. 조직 검사? 그래 하라면 해 보지, 뭐, 라고 애써 담담했던 봄보미다.) 그런데 왜 이 사람, 봄보미를 대신해 '남 걱정'을 할까? 아하,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봄보미 어미이다. 그래, 역시 엄마들은 달라,


...라고 봄보미가 코끝 찡한 마음을 품으려던 찰나.

"엄마, 걱정하지 마ㅅ.."

"아니, (그게 아니고)"

그.

러.

나.

봄보미의 말을 가로막으며 등장한 봄보미 모친의 말은...


"아니, 내일 애들이 갑자기 집에 온다고 하니까 내일 저녁 뭐 해 줘야 하나, 반찬은 또 뭘 어떻게 해야 하고, 집에 가져가라고 뭘 또 싸 줘야 할 텐데, 내일 뭐 해야 해?"

('눼?')


사실 봄보미 모친에게서 '갑자기 너무 걱정'이 되는 것들은 대강 이런 것들이었다.

1. 내일 손자들 해 줄 음식

2. 내일 손자들과 둘째 딸 싸 줄 음식

3. 국은 무엇으로, 메인 요리는 무엇으로, 밑반찬은 무엇으로...


봄보미 모친의 표정은 심각하다. 진실로 심히 '내일 밥'을 걱정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당혹스럽게도 그 걱정을 '지금, 바로, 여기'서 하고 계신다. 책상에 앉아 앉아 조직 검사를 걱정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 중인 봄보미 앞에서 말이다. 그 '거대한 고민'을 봄보미와 살뜰히 나누려고 몸소 봄보미 앞에 행차하신 봄보미 모친. 물론 평소와 같다면 이런 것 저런 것 해 주면 되지 않을까, 라고 봄보미가 모친께 의견을 내어 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다. 봄보미 입이 도통 열리지를 않는다. 봄보미 입술, 왜 이러지? 입은 갑자기 작아지고 목소리는 영 외출할 생각이 없다.


'어머니, 진정, 정녕, 어머니의 걱정은 그게 다입니까?'

봄보미에게는 '너무 길게만 느껴질' 기다림의 시간들이 줄을 서고 있다. 걱정들이 여기저기서 숨을 죽인 채 봄보미의 숨통을 조여 온다. 봄보미 미래가 곤두박질칠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반찬... 걱정이라니요? (어, 어머니..?)


그동안 봄보미는 '나 이러다 정말 어떻게 되는 거 아니야?'와 같은 죄질 나쁜 생각이 단 0.1초라도 봄보미 안에 들어설 듯싶으면, 봄보미는 재빠르게 '퉤퉤퉤' 털어내고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가증스러운 표정을 연습하곤 했다.

'엄마, 나 괜찮아요!'

'아빠, 나 진짜 괜찮다니까?'

애써 만들어 낸 봄보미 특유의 인공 미소. 그것을 장착하고 가족들이 있는 거실을 돌아다니거나, 예능을 틀어 놓고 배꼽아 빠져라(, 내가 뒤쫓아 가마...) 이런 심정으로 일부러 박장대소를 하던 중이었다. 자신의 불안, 그 한 귀퉁이가 찢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릴세라, 불안의 부스러기가 행여나 가족들의 발바닥에라도 묻을세라...


"모양이 예쁘지를 않네요."

의사는 봄보미 혹의 외모를 평가했다. 빛깔도 모양도 좋지 않다고,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젠 하다 하다 혹들도 외모지상주의인가 보다.) 의사의 그 문장 끝에는 측은함이 조금쯤 배어 있는 듯싶어 봄보미는, 어쩌면 자신보다 이 의사가 자신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래, 하물며 초음파를 해 준 의사도 이렇게 봄보미 걱정을 해 주는, 아니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 주는데, 그런데 우리 집 식구들은 아무도 걱정을 안 해 주네? (저 아플지도 모르는데요? 저기요. 듣고 계신가요, 가족 여러분?) 봄보미는 조금 의아하다. 봄보미가 걱정을 안 한다고 봄보미 가족들도 다 같이 룰루루, 이런 것인가? 봄보미 본인이 걱정은 무슨 걱정이냐고 해대는 통에 벌써 다들 한 시름 두 시름을 놓은 건가, 봄보미 말만 믿고?

그래도 그렇지, 봄보미 걱정은 쏙 빼놓고 내일 뭐 먹을지를 더 걱정한다니. 아니, 왜 다들 봄보미 걱정은 안 해? (자기가 하지 말라 해 놓고, '봄보미' 뒷북 '오지다.') 이제 와서 봄보미, "나도 좀 걱정을 해 달라고!"라고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짜증일까, 억울함일까.


봄보미는 짐짓 뾰로통한 표정이다. '내가 지금 신체 조직 말고 다른 식구 먹을거리까지 걱정을 해야 해?' 자신의 일기장에도, 그리고 다시 만난 친구에게 봄보미는 고자질을 시작한다.

"친구야 나 짜증 났었어."

"그거 짜증 아니야."

"그럼?"

"그거 서운해서 그래."

"서운하다?"

"그렇지. 그 감정의 이름은 '서운하다'지."

한 친구가 봄보미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 준다.

"봄보미야, 그리고 그 말에서 '서'를 빼고 '하'도 빼 봐."

"응? 서운하다, 에서 '서'를 빼고 '하'를 빼고?"

"그래, 그렇게."

"그럼 남은 글자들은... 운.... 다?"


봄보미는 '서운하다'에서 날아가 버린 '서'와 '하'를 무심히 바라본다.

"네 마음, 지금 운다."

"내가? 내 감정이? 무슨, 말도 안 돼."

"아닐걸? 네 몸의 조직들이 다 떨고 있어. 너만 모른 척하고 있지. 그러니까 '서운하다'라고 말하고, '나, 운다', '나, 울 것 같다'라고도 말해 봐."

착한 척, 밝은 척, 낙천 DNA 빼면 시체인 척하지 말라는 친구의 충고인가 보다. 그래도 여전히 봄보미는 아리송하다. 서운하지도 않고 운다는 일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이 친구는 봄보미에게 좀 더 솔직해져 보라고 조언한다.


'걱정이 안 되는데 뭐를 서운해하라는 거지? 그리고 이게 울 일까진 아니잖아?'

봄보미는 오늘도 자기 마음 빈 곳을, '단 음식'이나 '음악 감상' 혹은 '예능 보고 웃기' 등의 대체물들로 채워 나간다, '나 하나도 걱정 안 하는데?'라고 우기면서. 게다가 슬픔을 나누면 슬픔이 배가 되고, 걱정을 나누면 걱정이 두 배가 되는 건데, 뭐 하러 남들한테 서운하다 말해?


그런데 며칠 후 가족 채팅방에 알림이 울린다. 봄보미 동생님이시다.

"성당 사람들이랑 성지 갔었는데, 거기서 당신(봄보미) 이름으로 미사 예물 넣었어. 신부님이 당신 세례명 말하는 부분, 녹음 파일로 보내 줄까?"

희희낙락 웃음꽃을 피우던 가족들이 실은 봄보미를 위해 성당 미사에 기도를 부탁하는 미사 예물을 넣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여한죽 리스트'나 작성하고 있던 봄보미였는데, 실은 가족들이 그녀를 대신해 최선을 다해 걱정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해 주세요."

이제 봄보미는 가족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당당히 부탁한다.

"봄보미 너 자신을 걱정해 주세요."


별안간 봄보미는 '셀프'로 걱정의 습격을 받는다. 이 러한 종류의 습격은 종종 장기전이다. 그러나 걱정의 습격도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끝이 난다. 이제 그 끝을 조심히 지켜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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