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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이 몰려온다면 쉼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심리학자의 감정조절법: 이달의 심리학 中

by 마음공방



『이달의 심리학』신고은, 현암사에 수록된 글입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책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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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소 전혀 아무런 노력 없이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감정을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노력에 쏟아부을 에너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필요 이상의 분노, 짜증, 화를 내게 된다. 우리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의 시즌이 찾아오면 무얼 하는 게 좋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쉴 때 놀고 싶어 한다. 쉼과 노는 것을 동일선상에서 본다. 그러나 노는 건 쉬는 게 아니다. 여행 끝나고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자. 기차에서, 비행기에서, 차에서 우리는 어떤가? 아무리 좋은 곳을 보고 와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아무리 즐거운 레저를 즐겼어도 곯아떨어진다. 쉬었다면 에너지가 넘쳐야 하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쉴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공부를 멈추고, 일을 멈추고, 그 시간에 웃음 나는무언가를 채운다. 쉬는 시간이 되면 곧바로 유튜브에 접속하고, SNS를 구경하고, 게임을 한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는 산책을 나가고, 교외로 떠나고, 영화관이나 캠핑장을 향하기도 한다. 그리고 말한다. 잘 놀았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우리의 몸은 스마트폰과 같다. 배터리가 닳는다. 그런데 충전한답시고 재밌게 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게임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를 한다면? 배터리는 더욱 빠르게 닳을 것이다. 즐거움은 우리를 충전하지 못한다. 자극을 줄 뿐이다.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하는 도구인 사회 재적응 평가척도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스트레스 원인을 나열하고 있다. 이때 아이러니한 것은 스트레스 원인 중 휴가, 크리스마스, 결혼, 이사와 같은 행복한 일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건을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쁜 일이 곧 스트레스는 아니다. 스트레스는 ‘변화’다. 인생에 변화가 찾아올 때,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달라질 때, 그래서 변화에 적응해야 할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에너지를 쓴다.


진짜 충전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변화가 없는 삶에 머물러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극을 받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멈출 때 진정한 쉼이 찾아온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휴식의 사전적 정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쉰다는 뜻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멈추고’에 있다. 동영상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듯 뇌를 잠시 정지 상태로 머물게 해야 한다. 우리 몸에는 신기하게도 자가 충전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서 충전기를 꽂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충전된다.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불을 끄고 소파에 앉아 멍 때리거나. 단, 방전될 일을 해선 안 된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충전이 된다.


물론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본래 자극이 없이 견디지 못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적이 있다. 십 분 정도의 강의 영상을 몇 개 올렸다. 사람들의 큰 관심을 기대한 나는 곧 충격에 쓰러질 뻔했다. 가장 먼저 달린 댓글이 이랬기 때문이다. X발, 말 X나 많네. 그날로 나는 유튜버의 꿈을 접었다.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빠르고 세고 자극적인 무언가를 추구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어떤 내용이 궁금하면 본론만 당장 말하길 바란다. 구구절절 서론이 긴 정보는 분노를 유발한다.


바야흐로 도파민 중독의 시대다.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은 쾌락을 경험할 때 분비된다. 도파민이 팡팡 터지면 기분 좋게 흥분된다. 뇌는 이런 때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쾌락에 젖기 위해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한다. 맵고 짠 음식을 주문하고, 자극적인 메뉴를 먹는 사람의 영상을 하염없이 본다.


성인용 미디어를 찾아보거나 성행위를 끊지 못한다. 높은 곳에서 집어 던지는 와인 병 깨지는 장면을 보고, 반복되는 음악과 적절히 맞는 춤추는 영상에 몸을 두둠칫 같이 흔든다. 이런 자극과 마주할 때 도파민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뇌는 쉬지않고 각성되고, 각성되고, 각성된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차분하고 고요하게 사유하는 삶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 뇌는 그런 삶을 참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외친다. 아니, 그거 말고 더 빠르고 자극적인 것을 달라고!


처음으로 온전한 쉼을 경험한 건 우연이었다. 첫 장거리 운전 후 도착한 강연장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내향형 강사가 세시간 동안 에너지를 쏟고 나니 기운이 쭉 빠졌다. 운전대를 잡고 돌아오려는데, 내 머릿속에 이런 소리가 들렸다. 야, 엥꼬났다. 어릴 적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멈추려 할 때 아빠가 했던 말, 그 말이 왜 떠올랐을까?


주유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차 말고 내 몸에. 나는 멈추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기름을 넣는 대신 출발을 강행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걸그룹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흥이 나서 운전할 때마다 찾는 노래였다. 입에서 탄식이 튀어나왔다. 아우, 시끄러워.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좋아하던 자극마저 피로했다. 음악을 끄고 고요함 속에 그저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살것 같았다.


사람이 정말 지치면 시키지 않아도 온전한 쉼 모드로 들어간다. 보기도, 듣기도, 움직이기도 싫어진다. 아무 힘이 없어 침대에 누웠다가 기절하고는 깜짝 놀라 일어난다. 그때 느낀다. 몸이 가벼워졌음을. 그러나 이렇게 기절하듯 쉼에 빠지는 것은 위험 신호다. 지나친 피로 상태라는 경고다. 번아웃에 빠지면 중요한 변화가 인생에 찾아올 때 대처할 에너지가 부족해 무너진다. 정말 지치기 전에 주기적인 충전, 바로 온전한 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 만할 때는 쉬질 않는다. 충전 대신 자극을 찾는다. 뇌는 손에 명한다. 빨리 도파민을 분비할 무언가를 찾아! 손은 TV 리모컨을 향하고, 넷플릭스에 접속하는 마우스를 향하고, 유튜브에 접속하는 스마트폰을 향한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잠시 멈추는 것을 해내지 못한다. 그땐 최소한의 자극에 집중해 ‘덜’ 그러나 ‘제법’ 온전한 쉼에 들어가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작은 감각에 집중해 뇌를 속이는 것이다. 생각을 최대한 줄이고 멍 때릴 수 있는, 변화가 없는 자극에 집중하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은 어떨까?


비 내리거나 모닥불 탁탁 터지는 영상 보기

하루 10분 아무것도 하지 않기

샤워기 아래서 하염없이 물 맞기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기

타오르는 촛불 한참 바라보기

자기 전 전자기기 금지하기

반복되는 단순 작업하기(예, 뜨개질)


자기만의 온전한 쉼은 일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그소 퍼즐일 수도 있고, 설거지일 수도 있고, 수건 접기일 수도 있다. 흰 종이에 하염없이 패턴을 그릴 수도 있다. 일단 작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뇌는 잠시 쉰다.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노는 것은 그 이후에 하면 된다. 100% 충전이 완료된 후에.


서서히 짙어지는 초록, 적당히 느긋한 태양 아래, 쉼이 우리를 부른다. 지금은 멈출 때, 충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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