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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은 언제나 회복한다

글쓰기의 치유효과

by 마음공방


날씨가 제법 시원한 가을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시기인데요, 심리학으로 위로받는 시간 어떨까요? 이달의 심리학 10월의 글 한 편 공유합니다.


이달의 심리학 포함 신고은 작가의 책은 아래 링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jky&x_csa=%7B%22workType%22%3A%22book%22%2C%22fromUi%22%3A%22kb%22%7D&pkid=1&os=28460190&qvt=0&query=%EC%8B%A0%EA%B3%A0%EC%9D%80%20%EC%9E%91%EA%B0%80%20%EB%8F%84%EC%84%9C






가을이 오면 야외석이 있는 카페로 나간다. 두툼한 카디건을 걸치고도 답답하지 않은 공기를 누린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면 커피와 함께 장식용인지 사장님 취향인지 모를 책 한 권도 골라서 들고 나온다. 가을 냄새가 난다. 책을 펼쳐 두 문장 정도 읽으면 이미 느낌이 온다. 소장할 책인지 지금 대충 읽고 갈 책인지. 이 책은 아무래도 사야겠다. 책을 덮고 온라인 서점에 접속한다. 언제 읽게 될지 모르는 이 책을 주문한다. 그리고 가방 속에서 책을 꺼낸다. 몇 해 전부터 읽겠다고 벼르던 책이다. 드디어 읽게 되는구나.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나에게 책은 오랜 친구였다. 화장실 칸까지 같이 들어간 친구처럼 책도 그랬다. 변기에 앉아 책에 빠졌다가 빨리 나오란 꾸지람을 얼마나 자주 들었던지. 그런 친구와 점점 데면데면해진 건 성인이 되어서부터였다. 글은 학업과 일의 수단이었고 지긋지긋한 존재였다. 논문도 싫고 공문도 싫고 책도 당연히 싫어졌다. 필요하나 피로한 존재가 되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몸에 몹쓸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적을 향해 달려온 인생이 갑자기 멈췄다. 한순간에 할일이 사라졌다. 할일이 너무 없었던 나는 하릴없이 책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찾은 도서관에서 책장 숲에 압도되었다. 세상에 책이 너무나도 많았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의사결정에 실패한다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 상태에 빠졌다. 나를 위로하는 책을 만나고 싶었는데. 선택의 어려움 앞에서 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을 썼다. 소설 코너에 서서 가장 케케묵은 책을 뽑았다. 여러 손길을 거쳐 낡은 책은 분명 좋은 책일 것이다. 그렇게 만난 책에서 나는 나를 닮은 등장인물과 소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다시 책과의 사랑에 빠졌다.


내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날이 있다. 어디서 시작할지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럴 때 소설책을 펼친다. 소설을 읽는 동안 현실을 잊다가 또 현실과 마주한다. 나를 꼭 닮은 인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문구를 만나기 때문이다. 정신이 번쩍든다. 맞아, 이게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 밑줄을 긋고 모퉁이를 접고 문장을 기억한다. 타자의 말로 나를 대신한다. 그러다 보면 나의 언어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오랜 독서는 그럴 준비를 시킨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쓰는 사람이 된다.


‘책 내용이 좀….’ 최근 내가 출간했던 책에 달린 독자 후기였다. 별 다섯 개와 함께 달린 코멘트는 말을 하다 말고 있었다. 좀 어떻다는 거야? 어렵다는 거야, 지루하다는 거야, 예

상과 다르다는 거야, 기대에 못 미친다는 거야, 혹시 별이 다섯 개니까 좋다는 거야? 오랫동안 이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사람은 끝을 보지 않으면 참지 못한다. 하다 멈춘 말에 답답하고, 중요한 장면에 드라마가 끝나면 애가 탄다. 딱 봐도 질것 같은 운동 경기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붙드는 건 생각이 미완일 때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계속 그 안에 머문다. 그런데 생각의 흐름에는 질서가 없어서 쉽게 끝나지 않는다. 결론을 향하다가도 시작으로 돌아오고, 이 생각 저 생각이 새치기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생각이 쏟아지기도 한다. 특히 나쁜 경험 후에는 기억을 반추하느라 생각에 매듭을 짓지 못한다. 말을 하다 만 리뷰 생각에 잠못 이루는 것처럼 아픔에 머무느라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과거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과 다르다. 생각은 무형이지만 글은 유형이다. 무형은 반복될 수 있지만 유형은 유한하여 반복할 수 없다. 그래서 글은 영원히 쓸 수 없다. 참 재미있었다, 하고 끝낸 일기처럼 기어이 끝을 낸다. 이게 바로 글이 상념을 털어버리게 만드는 원리다. 마음을 글로 표현하면 반복된 생각이 정제되고 흐름에 질서가 생기면서 정리된다. 결론을 아는 드라마는 여러 번 보지 않는 것처럼 결론이 나버린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과거를 털어내게 된다.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효과적인 규칙이 있다. 처음엔 무작정 쏟아낸다. 문법이나 논리를 고민하지 말고, 유려하게 표현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일단은 생각을 배설해버린다. 그리고 단계별로 정리를 시작한다. 먼저 육하원칙에 맞춰 상황을 그려본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세세히 쓰고, 그때 느낀 감정을 톺아본다. 단순히 나빴다, 좋았다 정도가 아닌 적확한 감정의 이름을 찾아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사건이 나에게 준, 혹은 앞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정리해본다.


희소병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생각은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픔을 글로 쓰면서, 이 일을 통해 얻은 기회를 정리하게 되었다. 목표했던 길이 막혀 새로운 길이 열렸고, 아프지 않았다면 평범했을 인생이 특별해졌다.


글쓰기 치료의 권위자이자 심리학자인 페니베이커와 그의 동료들은 평범한 대학생 마흔여섯 명에게 글쓰기 과제를 내주었다. 이때 어떤 대학생들에게는 감정을 표현하는 글을 쓰도록 하고 다른 대학생들에게는 감정을 배제하고 글을 쓰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추적해보니, 놀라운 차이가 발견되었다. 감정을 글로 쏟아낸 학생들이 병원에 훨

씬 적게 간 것이다. 무려 43% 차이였다.마음을 털어놓으면 몸이 회복된다. 마음을 맑게 하려면 생각을 비워야 한다.


오염된 물을 흘려보내야 깨끗한 물이 들어오는 것처럼 비관으로 채워진 마음에는 희망이 들어올 틈이 없다. 오염된 물을 흘려 보내는 작업이 바로 속내를 터놓는 일이다. 속내를 터놓는 일이 꼭 글쓰기여야 하는 건 아니다. 잘 맞는 상대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있다. 그러나 말에는 청자가 있고 청자의 반응에 따라 표현의 힘은 세지기도 무력해지기도 한다.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오면 실망하고 비난이 돌아오면 주눅든다. 비밀이 누설될 거란 생각에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쓰기에는 듣는 사람이 없다.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

게다가 매일 글을 쓰면 놀라운 깨달음을 얻는다. 그건 바로, 쓸 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운동선수를 꿈꾸던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사고를 당했

다. 평생 하나의 목표만 보며 살아왔는데, 목적지가 사라졌다. 청년은 그 사건에 계속 집중했다. 그럴수록 비관적으로 변했고, 어떤 약물치료도 상담도 좌절감을 없애지 못했다. 나는 그를 글쓰기 워크숍에서 만났다.


청년은 글이 자신을 살릴 수 있느냐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숙제를 주었다. 매일 감정일기 쓰기. 슬픔이나 우울, 불안이나 공포, 분노의 감정도 괜찮았다. 그날 찾아온 나쁜 감정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워크숍은 6주간 계속되었다. 하지만 청년은 숙제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감정을 회피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청년의 표정은 밝아졌다. 농담도 곧잘 던졌다. 청년은 숙제를 하지 않은 이유를 고백했다. 별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네요. 나쁜 감정을 느낄 일도 없고요. 그의 일상은 무료했고, 다른 말로 안전했다. 사고 이후 인생이 무너진 줄 알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희극이 아니었지만, 그가 괴로워할 만 큼 비극도 아니었다.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을 필요는 없다. 오늘이 맑다면 맑은 날씨를 누리면 된다. 인생을 집어삼킨 과거의 사건도 결국 엔 지나간다. 삶은 예상보다 빠르게 단조로워진다. 과거에 대한 집념만 버리면 무사한 오늘을 살아낼 수 있다. 매일 의무적으로 글을 쓰려 하면 깨닫게 된다. 무탈한 날도 있구나. 할말이 없을 만큼.


글쓰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살린다. 그중에 제일은 모든 일을 글감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제주 여행 중 오름에서 야생말에 물린 적이 있다. 집필이 막혀 글감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면 절로 아름다운 글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말에 물리기나 하다니.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이거 책에 쓰면 재밌겠는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어떤 예술가는 종종 한탄한다. 진짜 행복하면 작품이 안 나와요. 부러 우울감을 찾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다. 쓰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가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에 머무는 이상 주인공의 비극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게 된다. 서사를 채울 에피소드가 된다.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이야기를 좇다 보면 나를 만나고,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된다. 읽는 사람은 쓰는 사람이 된다 쓰는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아름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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