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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낙원으로 간다

카페에서 글쓰기

by 오설자


카페 구석진 곳에 앉아 글을 쓴다. 작가가 글 쓰다가 화장실에 다녀온 것도 알아차린다는데. 생활이 끼어들어 자꾸 맥이 끊기는 집을 벗어나기로 한다. 카운터 너머 공급자의 시선으로 쓴 <카페 일기>나 카페 생활자의 시선으로 쓴 <단골이라 미안합니다>를 읽고 나니, 카페로 더 마음이 기운다.


창밖 라일락이 은은한 향을 보내주는 카페는 친구 앤젤과 자주 만나던 아지트였다. 그곳에서 글을 쓰고 두 권의 책을 다듬었다. 어느 날, 온통 시커멓게 칠해지더니 저녁에만 문을 여는 바 Bar로 바뀌고 말았다. 어쩐지 수용소 같아 고개를 돌려버린다.


4층까지 대학생들이 북적이던 호수 앞 카페에도 드나들었다. 2층 푹신한 자리에 앉아 글을 쓰다가 문득 고개 들면 키 큰 히말라야 소나무 건너로 푸른 하늘이 일렁이는 호수에 누워 있곤 했다. 그 카페도 문을 닫아, 폐가처럼 썰렁한 앞을 지날 때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괜스레 서성이곤 한다.


여러 군데 카페를 전전하다가 실버타운건물에 잘 꾸며진 정원이 보이는 카페를 찾았다. 통유리 너머 소나무와 모감주나무 노란 꽃그늘이 건너오는 푸른 자리를 찜한다. 소나기가 그치면 창밖은 더 짙어진 초록이 펼쳐진다. 그 사이로 근사한 문장들이 솟아날 것만 같다.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살피고 나를 로딩 Loading 하는 시간. 생각이 서서히 차오르는 이 순간을 즐긴다. 주름진 고급 옷을 입은 로맨스그레이 여사가 혼자 와 천천히 차를 마시고 나가면, 늘 그 시간에 휠체어 탄 어르신이 보호사를 대동하여 디저트와 주스를 마신다. 명품으로 온몸을 감은 유학파 젊은이들이 한바탕 외국어로 토킹 하며 차를 마시고 간 후, 또래의 직원이 그들이 남긴 자국을 고개 숙여 닦는 손에 눈길이 머문다.


한 젊은 남자가 유아차를 밀고 들어온다. 턱받이를 입에 물고 오물거리는 사오 개월쯤 된 아기 눈동자가 불빛에 반짝인다. 능숙하게 아기를 안아 등을 토닥이더니 유모차에 눕히고 아기를 가만히 누르며 다독다독 해준다. 손끝에 묻어나는 애정이 내 가슴으로도 건너와 도닥도닥. 그에게도 아기에게도 안온한 시간이 찾아오고, 나도 편안해진다.


한참 동안 온몸에 예열이 되고서야 비로소 노트북을 연다. 그 순간부터 온전히 나의 하루를 살아내는 쓰는 시간이다. “살기 위해서 쓰고, 쓰기 위해서 산다.”라던 조르주 페렉처럼 치열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쓴다. “언젠가 누군가의 세상에 작은 빛을 켜 줄 수 있을” 그의 말을 되새기면서.


이 카페에서 서너 번의 계절을 보낸다. 창 머너 메마른 메타세쿼이아에 새순이 돋고 연두 빛이 더해지면서 정원은 짙어간다. 서너 시간 동안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다듬고. 몇 번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나의 메마른 글에도 새순이 돋고 조금씩 짙어지길 기다린다.


갑자기 경찰차 경광등 소리가 요란하다. 경관이 뒷문을 열고 여윈 남자 어르신을 부축한다. 어르신은 앞문으로 가서 한 움큼 지폐를 자꾸 들이밀며 실랑이를 한다.

“저 식당에 가서 딱 한 잔만 하고 갈게.”

두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 버티며 애걸한다. 잠시 후, 도우미가 내려와 그를 모셔간다. 그 뒤로 구급차에서 의료용 침대가 내려진다. 호흡기를 입에 댄 어르신이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 주삿바늘을 팔에 꽂은 채 의료진의 보조를 받으며 들어온다.

어수선한 순간을 지나 밖으로 나온다.


방금 북새통은 아랑곳없이 건물 앞 커다란 표지석에 고요한 오후 햇살이 내린다.


“Paradise is Where I am”


내가 있는 곳이 낙원이라. 거기 새겨진 볼테르의 말이 왜 지금에야 보이는 걸까.


어느새 나무에 소슬한 바람이 돌아오는 시간. 글 쓰는 동안 길에 고인 햇살을 자박자박 밟는 발자국마다 하루를 살아낸 발바닥만 한 뿌듯함이 번진다.


오늘도 회전문을 열고 ‘낙원’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샹들리에가 빛나는 높은 천장이 나를 맞아 준다. 통유리 너머 나무들이 손짓하는 ‘내 자리’로 간다. 낮은 재즈가 흐르는 곳에 앉아 글을 쓰며 의미 있는 삶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낙원 속의 그 자리. 시원한 라떼를 ‘쪽’ 한 모금 마시면서 따라온 더운 먼지를 털어낸다.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예열하고 노트북을 열어 첫 문장을 쓴다.

“어디나 내가 있는 곳은 낙원이다.”


(에세이산책 2025.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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