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에 핀 가을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팔레스타인 시인입니다.
몇 년 전, 한국작가모임이 초대한 모임에 와서 경주와 제주 등지를 돌며 문학행사를 했는데, 제주 4.3 항쟁 희생자 추모 공연을 보게 됩니다. 무당이 광목을 갈라 길을 내고 영혼을 영생의 땅으로 인도하는 퍼포먼스를 보고 오시리스 제례와 유사한 고대 종교의식이 어떻게 여기에 남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 팔레스타인의 아픈 역사와 제주의 아픔을 공감합니다. "저는 자카리아가 아니고 한국인 김작(Kim Zak)이랍니다. 제주도 출신이지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카리아의 시집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에는 그의 시와 산문 몇 편이 들어 있습니다. 시도 좋지만 산문도 아름답습니다. 읽다 보니 알고 있는 시 ‘거래’가 나옵니다.
거래
우리 정원의 죽은 살구나무
서 있도록 받쳐주고
둥치를 감고 오를 담쟁이덩굴을 심었더니
곧 나무는 이파리로 뒤덮였네.
이제
우리 살구나무는 푸르러,
심지어 12월에도.
이것이 거래:
죽음이 뿌리와 열매를 갖고
우리는 위조된 푸른 잎을 가졌지.
그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죽은 살구나무에 기어 올라간 담쟁이 잎이 '위조된 잎'을 보여주는 걸로 읽었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지요.
그의 산문을 읽고 다시 읽어보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정착민으로도 읽을 수도 있겠네요.
어딘가를 걷다가 '위조된 잎'을 봅니다.
죽은 소나무에 기어올라가 붉은 잎으로 물들어 화려한 가을을 피운 담쟁이를 봅니다. 어디엔가 기대어 자신의 생을 이어가는 담쟁이가 가상합니다.
재바른 담쟁이가 다음 계절에는 초록으로 나무를 살려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