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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Oct 17. 2019

가을의 프라하에서는 자두를 먹어보아요

국민 캐릭터 크르텍이 쏘아 올린 작은 공

tvN의 여행 예능 <짠내투어>의 프라하 편에 하벨 시장이 나왔다. 채소와 과일을 주로 판매하지만 주말엔 마리오네트 등의 기념품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출연진들은 여기서 자두 7개를 사 먹었다. 푸른색의 탐스러운 자두는 가을이 제철이니 좋은 선택이었다. 다만 마트에서 구매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사 먹을 수 있으니 참고하자. 


<짠내투어> 프라하 편 속 하벨 시장


우리나라와 다른 색과 모양의 자두에 관심이 간 건 <짠내투어>를 봤을 때도, 동네 마트에서 쌓여 있는 자두들을 지나쳤을 때도 아니다. 한 두더지 때문이다. 그냥 두더지 아니고, 체코에서 범국민적 사랑을 받는 두더지 말이다. 



체코의 국민 캐릭터, 아기 두더지 '크르텍'을 소개합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해맑은 친구가 바로 크르텍


'크르텍(Krtek)'은 체코어로 '두더지'라는 뜻이다. 캐릭터 이름이 보통 명사라니. 뽀로로가 '펭귄', 둘리가 '공룡'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행 전 <패트와 매트>가 체코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알고 프라하 곳곳에서 '얼렁뚱땅 2인조'의 흔적을 찾을 생각에 매우 설렜다. 웬걸, <패트와 매트>는 딱 두 번 봤다. 한 번은 대형 장난감 가게 '햄리스(Hamleys)'에서 퀄리티가 슬픈 인형의 모습으로, 또 한 번은 차 타고 가다가 창문 밖으로 본 보험 상품 광고 간판(...)으로.



대신 눈에 들어오는 건 코는 빨갛고 몸은 까만 (알고 보니) 두더지였다. 두더지인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아기란다.(네?)



기념품 가게의 쇼윈도에서 마주친 크르텍의 첫인상은 귀엽긴커녕 좀 무서웠다. 현지인들이 정말 사랑하는 캐릭터가 맞는지 의구심이 생겨 프라하에서 20년 간 가이드 생활을 하신 분에게 물어봤다.


"여기 사람들이 정말 크르텍을 좋아하나요...?"

"아유, 그럼요. 우리 애들도 어렸을 때 만화로 보여줬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은 스토리인데, 기회 되면 한 번 찾아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 그날 저녁 숙소에서 유튜브에 크르텍을 검색했다. 10분 길이의 에피소드들이 꽤 많았다. 10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들이 줄줄이 있었다. 


영상 속 크르텍은 봉제 인형이나 에코백 프린팅 버전보다 백 배 정도 귀여웠다. 숲 속 동물, 혹은 곤충 친구들과 뭐든지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랑스럽고 발랄한 성격이었다. 많은 에피소드가 다람쥐나 종달새 같은 친구들과 힘을 모아 고민을 해결하거나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훈훈한 이야기였다. 


처음엔 궁금해서, 그다음엔 재밌어서, 그리고 어느새 정이 들어서 프라하에 있는 동안 틈틈이 유튜브에 크르텍을 검색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며칠 후 바츨라프 광장 근처에 있는 책방에 갔다. 그림책 코너에 영어로 번역한 크르텍 그림책이 시리즈로 모여 있었다. 쭉 훑어보다 <가을의 아기 두더지(Little Mole in fall)>을 뽑았다. 


<가을의 아기 두더지> 표지


내용은 이렇다. 가을 어느 날, 크르텍의 집(두더지니까 굴에 산다)에 자두들이 굴러 들어온다. 너무 많은 양의 자두에 크르텍은 친구 종달새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 참, 가을이라는 걸 잊고 있었네! 이 많은 자두들로 무엇을 한담?"


그들이 무엇을 하냐면, 잼을 만든다. 그걸 쿠키에 올려 친구들을 초대해 나눠 먹는다. 아무도 배탈이 나지 않을 만큼만 먹을 수 있음에 행복해한다(마음의 정화...!).


크르텍을 따라 자두를 먹어보기로 했다. 나도 가을의 프라하를 여행 중이니까. 다음날 마트에 가서 파란 자두를 샀다. 우리나라 자두보다 과즙이 적고 신맛이 부족하지만 사각사각한 식감과 은은한 단맛이 인상적이었다. 



내친김에 자두 쿠키도 사 먹었다. 빵 버전도 있길래 두 가지 다 먹어 보았는데 예상하던 맛 그래도였다. 후레쉬파이의 쿠키와 빵 버전. 



맛과 상관없이 이 모든 과정이 참 즐거웠다. 크르텍을 알게 되고, 그림책을 보고 자두를 사서 먹고, 쿠키와 빵을 사러 숙소에서 조금 먼 빵집까지 다녀오는 며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후 다른 과일에도 관심이 생겨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 먹었다. 사과나 배는 확실히 우리나라가 알도 크고 맛있다. 바나나와 포도는 똑같다. 가지나 피망 같은 야채류는 프라하가 훨씬 크기가 크지만 맛은 비슷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귤이나 사과를 먹는 빈도만큼이나 프라하 사람들은 라즈베리와 블루베리를 자주 먹는다. 


여행의 큰 즐거움을 차지하는 건 새로움을 발견함으로써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이 더 커질 때는 내가 원래 속한 곳의 그것과 비교해보는 것이다. 


레트나 공원에서 블타바 강변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서울 시내버스에서 보던 한강의 야경 떠올리기. 우연히 들어간 로컬 카페의 커피가 맛있다고 감탄하며 성북구 단골 카페의 아메리카노 그리워하기. 숙성 전의 와인인 '브루착'에서 익숙한 막걸리의 향 느끼기.



타지의 새로움에서 언뜻 고향의 익숙함을 느낄 때 내 여행은 더욱 풍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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