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아빠의 풀코스 마라톤 도전기 02
10월 말까지 42.195km를 달릴 수 있는 체력을 만들 수 있을까?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 탓에 호기롭게 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하긴 했지만 아직 하프 마라톤도 뛰어본 적이 없는 내가 완주할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매우 낮다.
당장 어제만 해도 나는 7km가량을 달리며 '아, 이 상태면 절대 완주 못하겠는데.'하고 느꼈다.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사려니숲길을 찾아 달렸는데 울창한 삼나무 덕에 햇빛은 피했지만 어마어마한 습기에 5km도 채 달리기 전에 온몸이 푹 젖고 그대로 지쳐버렸던 것이다.
여름이 된 이후 확실히 달리는 게 힘들어졌다.
작년 12월에 러닝을 시작한 이후 4월까지는 꾸준히 주행거리가 늘었는데, 러닝 앱의 월별 주행기록을 보면 1월에 46.8km, 2월에 66.8km, 3월에 107.7km, 그리고 4월에 123.7km를 달렸다. 달린 횟수도 1월의 8회부터 4월의 17회까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린 거리와 횟수가 쭉쭉 늘었다. 그러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거리와 횟수가 급격히 줄었고, 달리기 자체의 즐거움을 오래 유지하며 달리는 것이 어려워졌다.
육아아빠인 나는 주로 아내와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는 새벽에 조용히 집을 나서 달렸는데, 봄까지는 6시 반쯤 해가 뜨니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쾌적하게 달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5시면 벌써 사방이 밝아오고 6시만 되어도 새벽 특유의 상쾌함이며 차분함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뜨거운 제주의 해가 도로를 달구고 공기를 덥힌다. 그러니 천천히 오래 달리는 LSD 훈련을 하기가 참 어려운 계절이다, 여름은. (해가 빨리 뜨는 탓인지 4살, 1살 아이들의 기상 시간도 덩달아 빨라져서 한 시간 이상 오래 달릴 기회도 적어졌다.)
그런 시점에 10월 말에 있을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한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보니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10km 짧은 마라톤만 딱 두 번 뛰어본 초보 러너에게 42.195km라는 거리는 아직 가늠도 잘 되지 않는 미지의 숫자지만 도전한다면 올해가 가장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아빠로 살며 잃어버렸던 '나만의 프로젝트'라는 설렘도 있고 무엇보다 달리는 것에 대한 열정이 가장 생생한 지금이야 말로 이 도전을 가장 전심으로 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마라톤을 신청한 이후 Runner's world의 풀코스 대비 16주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 달리기를 하고 있다. 풀코스를 준비하는 초보 러너를 위해 16주 간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목표로 하는 시간대에 따라 세부 내용이 다르다. 나는 5시간 안에 완주를 목표로 하는 Sub5 프로그램을 따르고 있고 지금 3주 차 훈련을 하고 있다. 보통 한 주에 4번의 훈련을 하고 16주 훈련의 마지막 날인 Race day에 풀코스를 달리는 것을 목표로 점차 훈련 강도가 강해진다.
프로그램에 맞춰 훈련을 하다 보니 내 체력의 한계를 여실히 느낀다. 점차 실력을 키워야 하니 훈련마다 설정된 목표가 있는데 예를 들어 6.4km를 44분 안에 달리거나 (6분 50초 페이스) 16km를 처음 8km는 58분에, 다음 8km는 55분에 달리는 등 말 그대로 '훈련'의 성격을 띤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16주 안에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지금은 완주보다도 이 16주 간의 훈련 프로그램을 과연 얼마나 이행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
어제 달린 사려니숲길 러닝은 3주 차의 8km (57분 이내) 훈련이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7km 정도만 달렸고 그나마도 중간에 몇 차례 걷기도 했다. 숲길이라 언덕도 많고 비포장 주로의 영향도 있지만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이전 같았으면 쉽게 달렸을 거리를 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온몸이 젖어버렸다.
그러면서 든 생각... '아, 내가 지금 즐겁게 달렸나?'
목표를 정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달리기에 임하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이행하고 있지만 정작 달리기가 나에게 준 그 즐거움, 달리는 행위 자체에서 얻었던 활기와 기쁨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의 중산간 도로에서 느꼈던 상쾌한 공기와 막 떠오르는 해의 강하지 않은 햇살, "탁- 탁- 탁- 탁-"하는 발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들, 그리고 또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고 있다는 고양감과 웃음... 그런 것들을 '목표'라는 명분 앞에서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제주 조천읍 운동장의 트랙에 가서 달리기를 할 예정이다. 트랙을 달리는 건 처음이고 이렇게 늦은 밤에 달리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새로움이 주는 설렘을 무기 삼아 오늘은 '즐거운' 달리기를 하는 게 온전한 목표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하루하루 과정을 즐기지 않으면 참 힘든 것 같다. '이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지', '아이들이 아직 어린 이 시기를 충실하게 보내야지' 같은 마음속의 목표점들이 너무나 멀기 때문에 (또 어렵기 때문에) 금세 지치고, 하루하루의 소중함과 그 자체의 즐거움을 놓치는 때가 많은 것 같다.
달리는 즐거움 자체를 유지하자.
그리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자체의 즐거움을 유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