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엄마, 오랜만이야

Day15-16 ; 고창에서 익산, 그리고 홍성

by 현정

선운산 유스호스텔에서의 편안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1시간에 1대씩 있었고 우리는 8시 20분 버스를 타기로 했다. 눈을 뜬 시각은 8시. 부랴부랴 양치질과 고양이 세수를 하고, 8시 15분 숙소를 빠져나왔다. 정류장까지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스호스텔 별관을 빠져나와 체크아웃을 위해 본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8시 18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질주가 시작되었다. 무거운 가방과 불안정한 발목 탓에 뒤뚱뒤뚱 달려가는 나에게 친구는 먼저 가서 버스를 잡고 있겠다고 말하고는 달려 나갔다. 생각보다 정류장은 멀었다. 멀리서 버스가 돌아 나가는 게 보였다. 버스가 내뿜은 연기가 떠나간 자리에 허무하게 서있는 친구가 보였다.


그때였다. 버스가 멈춰 섰다. 나는 다시 달렸고 우리는 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기사님이 친구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버스에 앉아계시던 할머님들께서 저기 아가씨들이 뛰어온다며 버스를 세워주셨다. 일어난 지 30분도 안 된 때였다. 정신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1박 2일의 아쉬운 여행을 마치기 전에 고창 터미널 근처에 있다는 고창읍성을 둘러볼 계획이었다. 매표소에 무거운 배낭을 맡기고 읍성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읍성 내부는 커다란 정원 같았다. 걷는 곳마다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우리를 반겼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교과서에서만 보던 완벽한 성벽이 나타났다. 투박한 돌로 탄탄하게 쌓아 올린 성, 그 위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발아래 펼쳐진 고창을 내려다보며 아직 못 가본 곳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고창에 또 오자는 약속과 함께 짧지만 길었던 고창 여행이 끝났다.




아침부터 서둘러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건 나의 다음 여행지가 충남 홍성이었기 때문이다. 고창에서 익산까지 버스로 이동한 뒤, 익산에서 기차를 타고 홍성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고창에서 익산 가는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밖에 없었고, 나는 12시 반 버스를 타야 했다.


어제 갔던 터미널 근처 국밥집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진짜 국밥을 주문했고 아침부터 공복 유산소 운동을 지나치게 많이 한 탓에 우리는 국밥 한 그릇씩을 뚝딱 해치웠다. 12시 20분, 친구는 서울행 버스와 함께 먼저 고창을 떠났고, 12시 25분, 나는 익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홍성은 엄마의 고향이다. 그리고 여전히 큰 이모와 둘째 이모가 살고 있는 나의 외갓집이기도 하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마지막 여행지는 홍성으로 정해뒀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러고 싶었다. 여행이 일주일 가량 남은 시점에 예상보다 조금 일찍 홍성에 가게 된 것은, 오늘부터 홍성 둘째 이모네서 김장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서였다.


홍성에 사는 이모들과는 좀 어색한 반면 서울에 사는 막내 이모와는 유달리 친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거니와 같은 동네에서 쭉 살아왔기 때문에 친구처럼 지낸다. 그런 막내 이모가 김장 때문에 홍성에 온다고 하니 그때 맞춰서 홍성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아무래도 조금은 편할 것 같았다.




어린 시절에는 방학만 되면 홍성에 놀러 오곤 했었다. 홍성 중에서도 사람이 거의 없는 깊숙한 마을에 위치한 둘째 이모네 집이 우리의 베이스캠프였다. 그래서인지 둘째 이모네 집에 남겨져있는 추억이 정말 많다. 안타깝게도 그 추억 역시 초등학생 때 이후로 거의 끊겼지만.


마지막으로 홍성에 왔던 때는 대략 7,8년 전쯤이다. 남동생이 군대에 가기 전 엄마와 셋이 이곳에 왔었다. 풍경을 찍는 척 나는 엄마와 동생의 옆모습을 휴대폰에 담았다. 그게 내 사진첩에 남아있는 유일한 엄마의 사진이었다.




홍성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늘 서울에서 내려왔었기에 홍성으로 올라가는 방향의 기차는 처음 탄 것이었지만,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내 옆 자리에 엄마가 함께 타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무거운 배낭 안에 엄마가 삶아준 달걀과 사이다가 들어있을 것 같기도 했다.


기차는 익산을 떠나 홍성을 향해 간다. 엄마를 만나러 간다. 아니, 엄마와 함께 간다.


엄마, 잘 있었지? 오랜만이야.

keyword
이전 25화#216. 나 외로웠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