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 도쿄여행기 2✈️

by 꿈꾸는 momo

2시간 비행 끝에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임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기절한 듯 자고 있는 J가 부러웠다. 아무거나 잘 먹고, 어디서나 잘 자고, 무얼 하든 활기가 넘치던 이십 대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이따금씩 귀가 먹먹해진 감각으로 비행기의 고도를 느낄 뿐이었다.


나리타 공항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회벽의 공간이 주는 삭막함 속에 모든 것이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일본어가 여행을 실감하게 했다. 완벽한 이방인으로써 예측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을 걷는 기분. 두근거렸다. 외국인으로 분류된 입국대기줄이 길었다. 창자처럼 구불거리는 대기줄에서 한 발을 움직일 때마다 공간을 떠다니는 먼지도 따라 춤을 췄다. 긴 대기줄을 벗어나 여권스캔을 하고 얼굴촬영과 지문을 인식하는 절차를 거치니 드디어 안심이 되었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입국심사가 아직 남아있었다. 사전등록했던 비짓재팬의 코드를 찍던 직원이 내게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본말, 그다음은 영어. 등록했던 여권번호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무슨 말을 했어야 하는데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채팅방에 Y가 보내주었던 앱 링크를 찾아야 해! 그 생각만 강력했다. 폰만 연신 뒤적거리는 분주한 내 손놀림을 보며 직원은 "음, 음..." 뭔가 다시 설명하려고 애썼다. 아무 말도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거 같았다. 서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수속을 마치고 기다리던 Y가 뛰어와서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한참 그러고 있었을 거다. 앱을 열지 않아도 종이로 된 서류를 다시 적으면 되는 거였는데. 어떻게 해결할지 물어만 봐도 됐었는데 말이다. 당황하면 사람이 이렇게 좁아진다.


자유여행이라 가능한 거였다. 동행의 힘을 느꼈다. 어떤 문제든 해결할 방법도 다 있으니 너무 당황하지 말자는 교훈도. 온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며 감각하는 여행이란! 편안하지만은 않은 여행의 과정을 오롯이 체감하며 드디어 그 문을 빠져나왔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간절해진 차에 낯익은 편의점이 우릴 반겼고 충전해 두었던 트래블카드를 개시하는 설렘과 함께 배를 채웠다. 잠시 쉬면서 리무진을 기다렸다. 도쿄에 있는 숙소로 가기 위해선 또 한 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다. 벌써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숙소는 좋았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Y가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일본어로도 동시통역이 가능한 Chat GPT를 믿고 떠났지만, 말보다 빠르진 않다. 숙소에 대강 짐을 풀고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갔다. 빌딩숲 사이로 수많은 인파들이 거리를 다녔으나 도시는 조용했다. 숙소 근처의 골목길에서 미리 검색했던 일본 가정식 생선구이 집을 찾았다. 혼밥이 가능한 식사 테이블 앞에는 1인용 주문 태블릿이 있었고, 손님들이 제법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당 안은 조용했다. 이들의 문화가 그러한가 보다. 반갑게도 주문은 한국어로도 지원되었다. 각자 주문한 생선구이와 밥, 된장국, 작은 찬기에 곁들여진 소량의 단무지가 음식의 전부였다.


겉으로 보기엔 다소 차분하고 개인적인 듯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합리성과 절제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필요한 만큼만 남기는 태도는 타인과의 거리를 두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의 편안함을 지키기 위한 조용한 배려의 방식으로 보였다. 효율적이면서도 단정한 공간, 절제된 움직임 속에서 그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내가 먹은 연어뱃살구이가 뱃속에서 요동쳤다. 나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혼자만의 조바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국 도쿄시내를 구경하며 만난 돈키호테에서 남은 에너지를 다 쓴 나는 일행이 밤거리를 여행하는 걸 배웅하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타이레놀을 먹고 잠을 청했다. 어쨌든 일행에게 내 존재가 여행의 불청객이 되지 않을 각오 하나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