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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도쿄여행기 6✈️

by 꿈꾸는 momo

16000보 넘게 걸었던 하루, 잠이 잘 올 줄 알았는데 출출해서 먹었던 음료가 안 맞았나. 잠을 통 못 잤다. 두통이 또 몰려왔다. 여행도 젊을 때 하는 게 맞다. 드러누울 정도는 아니니 다행인 걸로 치자. 약을 먹고, 목도 스카프로 단단히 동여매고, 따뜻하게 채비를 하고 나섰다. 약 10일 전에는 여름 날씨 같았다는 일본에서 나는 경량패딩을 입었다.


Y가 계획한 미술관 투어가 대거 남아있는데 계획을 급 변경했다. 이렇게 계획이 변경 가능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여행 계획보다 여행자를 생각하는 J와 Y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여행은 결국 타인과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목적지로 가기 전, 숙소 근처를 지나며 며칠간 눈독 들인 오니기리를 먹었다. 현지인 로컬맛집인 듯했다. 출퇴근하며 사가는 현지인들의 줄을 기억하며 각자의 메뉴를 골라 간이의자에 앉았다. 출근길 사람들의 수많은 눈길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맛있게 식사를 했다. 우리의 먹방 덕분에 발걸음을 멈추고 계산대 앞에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했으나, 난 여기서 이방인이니 괜찮다. 우리 동네가 아니라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외투랑 어울리지 않게 스카프를 칭칭 동여매도 개의치 않는 자유로움!


이동의 피로함을 줄이고자 우버 택시를 불렀다. 일본의 택시는 작지만 깔끔하고, 친절했다. 도쿄시내를 벗어나니 아주 조용하고 깔끔한 도시가 나왔다. 메구로구 아오바다이(目黒区 青葉台). 이곳에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건축물이 있었다. 바로 세계 6개국에만 있다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카페. Y가 가보고 싶어 했던 이유만큼 재미있었던 방문지다.


일단 매장의 외관에서부터 일본만의 독특함이 묻어났다.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隈研吾(Kengo Kuma)가 설계에 참여한 4층짜리 건물로, 일본의 전통적인 소재와 장인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낸 디자인이라고 하였다.

1층: 메인 커피 바 및 로스팅 기계가 있는 오픈 공간

2층: 티(Tea) 바 등 차(茶) 문화 요소 반영된 공간

3층: 칵테일 및 커피를 융합한 바 형태의 공간

4층: 이벤트 및 라운지 공간


각층마다 다른 분위기와 공간으로 구성해 놓은 것이 복합적인 문화공간처럼 느껴졌다. 스타벅스 이미지가 나에겐 다소 부정적이었는데, 이 도시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존중해 주다니, 조금 달리 보게 되었다. 이것도 결국은 시장성과 연결되는 것이긴 하겠지만.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구리 캐스크가 건물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커피원두를 임시로 보관하는 저장공간이라는데 4층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로스팅 기계, 구리 캐스크, 파이프 시스템이 모두 공개된 형태로 배치되어 전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천장과 벽을 따라 이어진 수많은 파이프에서 이따금 원두가 이동하는 게 보였다. 커피공장이나 다름없다. 기계음에 다소 시끄러워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일어섰다. 아,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도쿄 블랜딩 원두를 하나 구입했다. 하루 종일 가방에서 커피 향이 가득.


이 한적한 도시가 궁금해 조금 걸었다. 고층빌딩이 없어 한층 편안한 마음. 디자인이 새롭고 다양한 주택건물들이 많았다. 신시가지인가. 감각적인 카페, 갤러리들이 보였다. 거기에서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만났다. 겉보기엔 작은 동네책방 같아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 동의 건물이 보행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서점이었다. 한적하게 책이나 뒤적일까 했는데, 취향저격하는 문구와 팬시, 잡지, 책들이 즐비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코너에서 다리가 아플 정도로 구경했다. 아, 그림책 코너에서 이지은 작가의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언젠가 내 책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책을 내고 말해야지, 참. 쩝.



근처 레스토랑에서 요기를 하고 오다이바(お台場, Odaiba)로 향했다. 이곳은 Y가 10년 전에 언니와 같이 간 여행지라고 했는데, 그녀의 추억을 따라나선 셈이다. 지하철로 40분 정도 이동했나, 바다와 도시를 잇는 다리가 펼쳐졌다. 오다이바는 인공섬이다. 원래는 해안 방어용 요새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도쿄의 대표적인 관광지란다. J와 Y 둘이 해변가를 둘러볼 동안 나는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며 잠깐 쉬었다.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져 건물 쪽으로 걸었다. 자유 여신상 모형 앞에서 외국인들을 좀 만났다 싶었고, 다소 한적한 느낌이었다. 날씨가 흐려서 사람이 없나 생각했던 건 오산.


일행과 합류해 아들이 좋아하는 건담매장을 찾아 들어갔던 쇼핑몰에서 우리는 눈이 동그래졌다. 아, 어릴 때의 추억을 소환하는 만화영화 캐릭터샵이 얼마나 많은지! 역시 캐릭터 천국이구나 싶었다. 모든 가게마다 사람들이 넘쳤다. 엄마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생각났다. 지갑은 열리고, 가방은 무거워지고. 해안선을 걷고 왔던 J와 Y가 수상버스를 예매해 두지 않았다면 밤늦게까지 쇼핑은 계속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천만다행.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어둠이 깔리고 조명이 들어오자, 다이버시티 앞 건담모형과 레인보우 다리의 조명이 화려하게 빛났다. 숙소가 가장 가까운 곳까지 수상버스로 이동하게 된 건 느닷없는 호사였다. 그 말 많던 한강버스가 도쿄의 수상버스를 벤치마킹 했을까? 그저 관광용이 아니라 교통수단의 한 축으로써 기능하는 도쿄의 수상버스를 보며 한강버스의 실효성이 논란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비가 내리는 날, 도심 속 바다 위에서 보는 도쿄의 마지막 밤도 그렇게 깊어갔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그 멀었던 마음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여행이었다. 역사 속에서 베인 상처들을 제대로 치유하고, 이해하고, 그들과 견주기 위해서는 교과서에 머물러 있는 일본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런 깨달음을 시작으로 한 발짝 더 공부하게 될 일. 그것 자체가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성장하는 사람이야 말로 또 다른 사람을 일으킬 수 있는 것! 귀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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