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4학년을 가르치면서 지역사를 다룬 교과서를 펼쳤을 때, 나는 꽤 당황했었다.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인데 교과서가 제대로 채워주지도 못하니, 수업이 부실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빛낸 위인”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대부분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안에 나오는 이름들만 말한다. 나 역시 그 목록 밖의 이름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러니 이순신 같은 장군은 자기 고향에서도, 실제로 머물며 살았던 곳에서도, 잠시 수군을 이끌고 활약했던 지역에서도 똑같이 ‘지역 인물’로 배우는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가 사는 행정구역을 세세하게 들어가 인물을 찾으려 하면, 널리 알려진 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그러면 문득 의문이 든다. 정말 이 지역에는 ‘인물’이 이렇게까지 없었을까. 인물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역의 역사를 더듬어 보려 해도 자료가 마땅치 않다. 교과서에 실린 지역 유적지 몇 군데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들이었다. 막상 찾아가 보면 관리도, 정리도, 설명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역사를 너무 쉽게 ‘서울’ 중심으로 이해해 왔다. 교과서에 실리는 내용들이 대부분 그렇기 때문이다. 역사 여행이라고 하면 서울의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궁궐 투어, 그리고 경주와 부여 정도를 다녀오면 끝난 것처럼 여겨진다. 내가 사는 동네의 역사는 교과서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시험은 늘 시대별 나라의 흐름을 중심으로 출제되고, 지금도 이 나라가 서울을 중심으로만 굴러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삶의 현장은 지금, 여기인데, 우리는 모든 역사를 ‘그곳’을 기준으로 이해해 온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사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민주화 이후와 1990년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라고 한다. 중앙·수도권 중심의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사는 공간과 생활 세계의 역사를 함께 보려는 움직임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각 지역사가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연구도 많이 이루어진 듯하다.
그러나 지역은 여전히 역사라는 무대의 변두리로 밀려 있곤 한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 외의 모든 곳을 ‘지방’이라고 부른다고 하지 않던가. 이 ‘지방’을 역사의 주변부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현장’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곧 나의 일상과 역사를 연결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된 지역사 탐방은 매우 유의미했다.
올해 나는 제주, 광주, 밀양, 마산을 걸었다. 낯선 이름들이 얼굴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이제 그 여행에서 마주한 지역의 얼굴과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