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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는 왜 배신자 역할에 매력을 느낄까?

Ep. 9 어몽 어스 (2018)

by 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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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96%B4%EB%AA%BD%EC%96%B4%EC%8A%A4-2.jpg 어몽 어스의 커버 이미지. 총 9명의 알록달록한 캐릭터가 보인다.

신뢰와 협력.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이 두 가지 근본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에서 우리는 왜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마땅히 지양해야 할 기만, 방해 공작, 그리고 궁극적으로 배신이라는 행위가, 특정 조건 하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오래된 역설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깊고 복잡한 심리적 기제를 품고 있다.


2018년 출시되어 팬데믹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게임, 어몽 어스는 바로 이 질문을 탐구하기 위한 완벽한 디지털 실험실을 제공한다. 이 게임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장 원초적인 요소들로 환원시킨다. 우주선이라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오직 신뢰, 의심, 고발, 그리고 기만이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크루원이 되지만, 소수는 이들을 몰래 제거하고 방해해야 하는 임포스터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수많은 플레이어는 이 임포스터 역할에 당첨되었을 때 형언할 수 없는 흥분과 즐거움을 느낀다.


이번 글에서는 임포스터라는 역할이 선사하는 복합적인 심리적 쾌감의 정체를 해부하고자 한다. 어몽 어스가 마피아 형식의 사회적 추론 게임임을 생각하면 마피아 게임에 이를 대입하더라도 형통하는 풀이일 것이다. 이 매력은 단순히 나쁜 짓을 하는 일탈의 즐거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네 가지 강력한 심리적 동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연기의 본능, 권력에의 의지, 자기 정당화의 욕구, 그리고 통제된 혼돈이 주는 스릴이 한데 어우러진, 지극히 인간적인 경험의 총체인 것이다. 지금부터 어몽 어스의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 그 기만과 배신이 주는 달콤한 유혹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


1. 무대 위의 배신자
어빙 고프먼의 자아 연출의 사회학
이번 글을 작성하는데 가장 큰 영감을 준, <어빙 고프먼의 사회이론>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그의 저서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한 편의 연극에 비유했다. 우리 모두는 일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특정 역할을 부여받은 배우이며, 타인이라는 관객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관리하며 살아간다. 고프먼은 이 연극적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을 무대 앞과 무대 뒤로 구분했다. 무대 앞은 우리의 연기가 펼쳐지는 공적인 공간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각본과 규범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곳이다. 반면 무대 뒤는 연기를 잠시 멈추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다음 연기를 준비하는 사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을 오가며 우리가 관객에게 특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의 외양, 태도, 언어를 통제하는 모든 과정을 인상 관리라고 정의했다. 어몽 어스의 임포스터는 바로 이 고프먼의 연극이론을 가장 극적으로 체험하는 완벽한 배우다.


어몽 어스에서 임포스터의 게임플레이는 그 자체로 한 편의 고도로 긴장된 즉흥 연극이다.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임포스터는 성실한 크루원이라는 배역을 부여받고 거대한 무대 앞에 던져진다. 식당, 복도, 임무 수행 장소 등 다른 플레이어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그의 연기가 평가받는 무대가 된다. 여기서 임포스터는 주어진 사회적 각본, 즉 크루원처럼 행동하기를 완벽하게 수행해야만 한다. 다른 크루원들 사이를 오가며 태스크를 수행하는 척하는 행위는 이 연극의 가장 기본적인 대사에 해당한다. 특히 스캔 제출하기나 소행성 파괴하기처럼 시각적으로 임무 수행 여부가 드러나는 확시 미션(확실히 시민임이 보이는 미션) 근처를 맴돌며 마치 자신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한 결정적인 장면 연출이다. 이 무대 위에서 임포스터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의 배역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색한 동선, 불필요한 지체, 의미 없는 배회는 모두 관객(다른 크루원)의 의심을 사는 연기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숨 막히는 연극에서 임포스터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안식처는 바로 무대 뒤다. 어몽 어스에서 이 무대 뒤의 역할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하는 장치는 바로 벤트 시스템이다. 벤트는 임포스터만이 이용할 수 있는 비밀 통로로, 플레이어의 시야에서 완벽하게 사라져 우주선 내부를 은밀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 임포스터가 벤트 덮개를 열고 그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그는 크루원이라는 가면을 벗어 던지고 살인자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간다. 이 어둡고 고독한 공간은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완벽한 무대 뒤다. 이곳에서 임포스터는 다음 암살 계획을 세우고, 알리바이를 조작하며, 무대 앞으로 다시 나아가기 위한 재정비를 한다. 벤트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임포스터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연기의 긴장을 잠시나마 해소하는 심리적 대기실인 셈이다.


tutorialredraw.png 즐거운 회의 시간! 이미 죽은 크루원들도 회의 내용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연극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시체가 발견된 후 열리는 회의 시간이다. 이 회의장은 모든 배우와 관객이 한자리에 모여 진실을 논하는 거대한 법정이자, 임포스터의 인상 관리 능력이 최종 시험대에 오르는 무대다. 여기서 임포스터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교묘한 거짓말로 알리바이를 만들어내며, 심지어 무고한 다른 크루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대담한 연기를 펼쳐야 한다. 타이핑(혹은 말하게)되는 모든 단어, 모든 주장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정교하게 계산된 대사다. 성공적으로 다른 플레이어를 속여 무고한 크루원을 우주 밖으로 추방시키는 순간, 임포스터는 자신의 연기가 관객에게 완벽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서 최고의 희열을 느낀다. 이는 단순히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 이상의, 한 명의 배우로서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데서 오는 예술적 성취감에 가깝다.


현실 세계에서 인상 관리는 종종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행위다. 중요한 면접, 첫 데이트, 낯선 사람들 앞에서의 발표 등, 우리는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살아간다. 실패의 대가는 현실적이다. 거절, 실망, 사회적 고립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나거나, 연기가 서툴다는 것이 발각될까 봐 두려워한다.


어몽 어스는 바로 이 보편적인 사회적 불안을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가져와, 그 본질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게임은 인상 관리라는 행위가 가진 핵심적인 긴장감, 즉 타인을 성공적으로 속여야 한다는 목표와 발각될지 모른다는 위험은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행위가 초래할 수 있는 모든 현실적인 결과를 제거해버린다. 임포스터로서의 연기가 실패하여 정체가 탄로 나더라도, 플레이어가 잃는 것은 게임 한 판의 패배뿐이다. 사회적 평판이 깎이거나 실질적인 손해를 입는 일은 없다.


JkWAzFxk9sK7UGL5MaN2X3.png 현실에서 임포스터가 된다면 끔찍한 범죄자가 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안전한 실패의 보장은 플레이어에게 전례 없는 심리적 자유를 부여한다. 현실에서는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과감한 거짓말, 대담한 연기, 교묘한 이간질을 아무런 부담 없이 실험해 볼 수 있는 무대가 열리는 것이다. 게임의 명확한 규칙(임무, 벤트, 투표)은 이 연기를 위한 구체적인 도구와 각본을 제공하며, 성공적인 기만(들키지 않고 승리)은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즉각적이고 짜릿한 피드백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임포스터 역할이 주는 즐거움의 본질은 단순한 속임수의 쾌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근원적인 사회적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적 체험이다. 어몽 어스는 가장 스트레스받는 사회적 기술을 가장 즐거운 놀이로 변환시킨다. 플레이어는 이 안전한 무대 위에서 마음껏 배신자를 연기하며, 현실의 압박감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해방감과 성취감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2. 정보의 안개 속 지배자
게임 이론
게임 이론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그림.

게임 이론은 경쟁적인 상황에서 각 참여자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 이론의 수많은 개념 중, 어몽 어스의 핵심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정보 비대칭성이다. 정보 비대칭성이란 게임이나 거래에 참여하는 당사자 중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많거나 우월한 정보를 보유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불균등한 정보의 분배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불균형을 낳는다. 정보가 부족한 쪽은 불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고, 정보를 독점한 쪽은 그 우위를 이용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어몽 어스에서 임포스터가 느끼는 매력의 두 번째 근원은, 바로 이 정보 비대칭성이 부여하는 압도적인 지적 권력과 통제감에 있다.


어몽 어스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인 정보의 전쟁터다.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 임포스터는 크루원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절대적인 정보 우위를 손에 쥔다. 그들은 누가 자신의 동료 임포스터인지, 그리고 누가 제거해야 할 적인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반면, 크루원들은 그야말로 정보의 안개 속에 던져진다. 그들에게 모든 동료는 잠재적인 아군이자 동시에 잠재적인 적이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심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양측의 게임플레이는 정보 비대칭성을 둘러싼 공방전으로 전개된다. 게임 이론에서는 정보를 가진 쪽이 자신의 정보를 드러내거나 위장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을 신호보내기, 정보가 없는 쪽이 상대의 숨겨진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을 선별하기라고 부른다. 임포스터의 모든 행동은 나는 크루원이다라는 거짓된 신호를 보내는 행위, 즉 거짓 신호보내기의 연속이다. 임무를 수행하는 척하고, 다른 사람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주고, 심지어 자신이 죽인 시체를 직접 신고하여 의심을 피하는 행동 모두가 크루원들을 속이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신호다.


introcutscene-1920x1080-309ec138e6e6.png 크루원이 되었을 때 볼 수 있는 인게임 화면.

반대로 크루원들의 모든 행동은 임포스터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선별하기 과정이다. 누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동선을 추적하고, CCTV를 통해 플레이어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회의 시간에 각자의 행적을 교차 검증하는 것은 모두 정보의 안개를 걷어내고 진실을 가려내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이 과정에서 임포스터는 절대적인 정보 우위를 바탕으로 크루원들의 선별 과정을 역이용하여 그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임포스터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사보타주는 단순한 방해 공작을 넘어, 정보 비대칭성을 유지하고 심화시키는 핵심적인 전략 도구다. 예를 들어, 정전 사보타주는 크루원들의 시야를 극단적으로 제한하여 말 그대로 물리적인 정보의 안개를 만들어낸다. 이 어둠 속에서 임포스터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자유롭게 움직이며 암살을 감행할 수 있다. 이로서 크루원들을 더욱 깊은 정보의 고립 상태로 몰아넣어 임포스터의 활동을 용이하게 만든다.


특히 원자로나 산소 고갈과 같은 위급 사보타주는 정보 전쟁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 사보타주는 제한 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크루원 전체의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에, 모든 크루원의 주의를 강제로 특정 장소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임포스터는 이 혼란을 틈타 크루원들을 분산시키거나, 수리를 위해 모여든 무리 속에서 추가적인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이처럼 사보타주는 크루원들의 정보 수집을 방해하고,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며, 행동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고도로 계산된 정보 심리전의 무기인 것이다.


1200.jpg?width=1200&height=900&quality=85&auto=format&fit=crop&s=927201f7b86658bad3b464ed17ef6edd 이 그림을 보자. 뒤에서는 임포스터가 공격을 시도하지만, 붉은 크루원은 이를 모르고 있다.

우리는 현실 세계의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종종 정보 비대칭성의 약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거대 기업의 불투명한 정책, 정부의 복잡한 행정 절차, 전문가 집단의 전문 용어 앞에서 개인은 정보가 부족한 쪽이 되어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 내가 모르는 정보에 의해 나의 삶이 결정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익숙한 감정이다.


어몽 어스의 임포스터 역할은 이러한 일상적인 무력감을 일시적으로, 그러나 완벽하게 역전시키는 환상을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갑자기 시스템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내부자가 되어,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다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크루원들이 자신의 거짓 정보에 속아 서로를 의심하고, 자신이 설계한 함정에 빠져 무고한 동료를 추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단순한 게임의 승리를 넘어선 지적인 희열을 선사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우월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정신적인 지배의 판타지다. 임포스터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다른 플레이어들의 인식과 현실을 조작하는 꼭두각시 조종사가 된다. 모든 성공적인 거짓말, 모든 교묘한 암살, 모든 조작된 투표는 자신의 지적 능력이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감각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임포스터 역할의 매력은, 현실에서 느끼는 정보 격차의 좌절감을 게임 속에서 압도적인 정보 권력의 쾌감으로 치환하는 강력한 심리적 해방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타인의 현실을 창조하는 설계자가 되는 드물고도 중독적인 경험이다.


3. 나는 거짓말을 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지부조화 이론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592443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d%2BN7gl5H%2FmXAk6374BchLIY5thI%3D 인지부조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

인간은 스스로를 일관되고 합리적인 존재로 인식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의 생각, 믿음, 가치는 우리의 실제 행동과 충돌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다.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이러한 모순 상태에서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을 인지부조화라고 명명했다. 페스팅거에 따르면, 인간은 이 불편한 부조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를 바꾸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된다. 어몽 어스의 임포스터는 게임 내내 극심한 인지부조화의 한복판에 서 있으며, 이 부조화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정교한 지적 유희이자 쾌감의 원천이 된다.


임포스터로 플레이하는 것은 지속적인 인지부조화 상태를 견디는 것과 같다. 그의 내면에는 두 개의 모순된 인지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하나는 나는 동료들을 속이고 제거해야 하는 배신자다라는 명백한 진실이다. 다른 하나는 나는 임무를 수행하며 진짜 범인을 찾으려는 성실한 크루원이다라는, 외부에 보여주어야만 하는 거짓된 역할이다. 이 두 개의 인지는 결코 양립할 수 없으며, 이 간극은 플레이어에게 상당한 심리적 긴장감을 유발한다. 만약 이 긴장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플레이어는 죄책감이나 혼란 속에서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이 부조화를 해소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즉, 거짓말과 살인을 멈추는 것인데, 이는 게임의 승리 조건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선택할 수 없다. 둘째, 모순되는 인지 자체를 바꾸어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셋째,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인지를 추가하여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임포스터는 살아남기 위해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among-us-matchmaking-rework-key-art.jpg?w=1600&h=900&fit=crop 각자가 태블릿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회의 시간은 바로 이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거대한 연극 무대다. 임포스터가 무고한 크루원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행위는 단순한 전략적 거짓말을 넘어선다. 이는 내가 저 사람을 지목하는 것은 비열한 거짓말이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합리적인 행동이다라고 스스로의 모순된 인지를 바꾸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저 플레이어는 아까부터 행동이 의심스러웠어. 어쩌면 진짜 임포스터는 아니더라도, 팀에 도움이 안 되니 추방하는 게 맞아와 같이 새로운 인지를 추가함으로써, 자신의 기만적인 행위는 단순한 거짓이 아닌, 나름의 논리와 명분을 가진 정당한 행위로 탈바꿈한다.


이 자기합리화의 과정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은, 자신의 거짓말에 다른 크루원들이 동조하여 무고한 플레이어를 만장일치로 추방할 때다. 이 순간, 임포스터가 만들어낸 거짓된 현실이 집단 전체의 공식적인 현실로 인정받게 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충돌하던 부조화가 외부 세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일시적으로 완벽하게 해소되는 것이다. 이 때 느끼는 안도감과 만족감은 임포스터 역할이 주는 독특한 지적 쾌감의 핵심을 이룬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인간이 자신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솝 우화에서 포도를 따먹지 못한 여우가 저 포도는 분명 실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자신의 실패(행동)와 포도를 원했던 마음(인지) 사이의 부조화를 줄이려는 자기방어기제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592443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9%2FnodwzHtRrnw5hAfc9ACpt4ojk%3D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보다도 편안한 거짓말에 빠져든다.

어몽 어스의 임포스터는 이 자기합리화의 과정을 수동적인 방어기제가 아닌,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행위로 승화시킨다. 임포스터의 역할은 플레이어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불편한 정체성을 강요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직하고 선한 사람으로 여기고 싶어 하므로, 이 역할은 그 자체로 내면의 자기상과 충돌을 일으킨다. 이 심리적 부담을 극복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마치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처럼 실시간으로 자신만의 서사를 창조해야만 한다.


그는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구축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설득력 있는 동기를 부여하며, 심지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의심스러운 악역의 캐릭터를 부여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거대한 즉흥 연기이자 서사 구축 작업이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결백하다는 주제를 가진 한 편의 짧은 이야기를 쓰고, 연기하고, 관객(다른 크루원)을 설득시키는 창작자가 된다.


따라서 임포스터가 느끼는 즐거움은 기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만의 완성도에 있다. 허술한 거짓말이 간파당했을 때는 좌절감을 느끼지만, 치밀하게 설계된 거짓 서사가 모두를 감쪽같이 속였을 때는 지적인 창작 활동에서 오는 것과 유사한 성취감을 느낀다. 심리적 부담인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가장 매력적이고 보상적인 창의적 도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임포스터는 자신의 현실을 스스로 저술하는 작가가 되어, 그 서사의 완결성에서 오는 깊은 만족감을 경험한다.


4. 안전하게 즐기는 스릴
양성적 마조히즘
Screenshot_%28376%29.png 임포스터가 되었을 떄 볼 수 있는 게임 화면.

마조히즘이라는 단어는 흔히 성적인 맥락에서 고통을 통해 쾌락을 얻는 성향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폴 로진은 이 개념을 확장하여, 일상에서 널리 발견되는 흥미로운 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양성적 마조히즘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경험(고통, 공포, 슬픔 등)을 즐기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전제 조건이 붙는다. 바로 그 부정적인 경험이 실제로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안전한 상황이라는 것을 뇌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몽 어스의 임포스터 역할이 주는 짜릿한 스릴의 마지막 비밀은 바로 이 양성적 마조히즘의 기제 속에 숨어있다.


양성적 마조히즘의 대표적인 예는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공포 영화를 보거나, 아주 매운 음식을 먹는 행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롤러코스터가 급강하할 때 우리의 몸은 실제로 추락하고 있다는 위협 신호로 받아들여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고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적인 뇌는 이것이 안전하게 설계된 놀이기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다. 폴 로진은 이 순간 발생하는 몸과 마음의 불일치가 쾌감의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즉, 내 몸은 지금 위험에 처했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내 마음은 이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정신이 육체를 이기는 상황을 즐긴다는 것이다. 몸이 보내는 거짓 위협 신호를 이성으로 통제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우월감과 통제감이 바로 스릴의 정체다.


어몽 어스의 임포스터 역할은 플레이어를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적 위협 시뮬레이션 속으로 밀어 넣는다. 임포스터가 느끼는 핵심적인 부정적 감정은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지속적인 공포, 거짓말이 탄로 날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 그리고 동료들을 속여야 한다는 심리적 스트레스다. 크루원을 죽이고 벤트를 통해 도망치는 순간, 회의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자신을 변호하는 순간, 플레이어의 몸은 실제로 사회적 위협에 직면했을 때와 유사한 생리적 반응을 보인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손에 땀이 나며,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몸은 지금 사회적 생존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고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의 이성적인 뇌는 이것이 단지 게임일 뿐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발각되었을 때의 대가는 게임 한 판의 패배가 전부이며, 현실의 사회적 관계나 평판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협은 무해한 것이 된다. 플레이어는 현실의 위험 부담 없이, 배신과 기만이 주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생리적 각성 상태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다. 매번의 아슬아슬한 위기 모면, 의심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을 때의 안도감은 롤러코스터가 정점에 도달했다가 안전하게 플랫폼으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쾌감과 정확히 같은 종류의 것이다.


ec01b552-0c8f-48dc-8b83-996597630772-among-us-1.jpg 어몽 어스는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어몽 어스에서 임포스터가 되는 경험이 왜 그토록 매력적인지에 대한 탐구는, 결국 인간 심리의 가장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단면들을 들여다보는 여정이었다. 네 가지 이론적 렌즈는 각각의 조각을 제공하며, 이 조각들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배신자가 주는 쾌감의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된다. 성공적인 연기를 통해 관객을 속이는 데서 오는 창조적 희열, 정보의 우위를 점하고 보이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지적 쾌감, 내면의 모순과 갈등을 자기합리화라는 서사로 완결시키는 정신적 만족감,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깔린 발각의 공포가 안전하게 통제된 스릴로 전환되는 감각적 즐거움의 총체다.


이러한 복합적인 매력은 인류의 이야기 속에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트릭스터라는 원형적 인물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북유럽 신화의 로키, 서아프리카 설화의 아난시, 북미 원주민 신화의 코요테처럼, 트릭스터는 기존의 질서를 교란하고, 규칙을 어기며, 교활함과 속임수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존재다. 그들은 종종 혼돈을 야기하지만, 동시에 경직된 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는 창조적 파괴자이기도 하다. 임포스터 역할은 플레이어에게 바로 이 강력하고 매혹적이며, 때로는 금기시되는 트릭스터의 가면을 안전하게 써볼 기회를 제공한다.


결국 어몽 어스는 단순한 파티 게임을 넘어, 인간 정신의 근본적이고도 양가적인 측면을 탐험하는 현대적인 디지털 무대라 할 수 있다. 이 작은 우주선 안에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허락된 악당, 거짓말쟁이, 그리고 트릭스터가 되어본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잠재된 바로 그 충동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게임, 어몽 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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