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픽셀은 어떻게 예술 사조가 되었을까?

Ep. 3 셀레스트(2018)

by 루모

해당 글은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Extremely Okay Games Ltd의 셀레스트(2018)에 대한 최소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픽셀 아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많은 독자들은 오락실의 추억, 투박하지만 정겨웠던 8비트 게임 캐릭터, 혹은 그저 오래된 그래픽을 떠올릴 것이다. 틀린 견해가 아니다. 픽셀 아트는 종종 단순한 향수, 즉 노스탤지어의 산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이 네모난 점들이 인간의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감정을 표현하는 섬세한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번 글에서는 픽셀 아트가 어떻게 기술적 제약에서 출발하여 의식적이고 정교한 예술적 언어로 진화했는지를 알아보자.


1. 픽셀의 여정
픽셀 아트의 탄생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최초의 컬러 비디오 게임인 Gotcha(1973)

1970년대 초,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여명기에 이미지를 화면에 표시하는 유일한 방법은 픽셀이라는 작은 사각형 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컴퓨터와 게임 콘솔은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의 수와 해상도가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디자이너들은 이 혹독한 제약 속에서 최대한의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다. 수십 개의 픽셀만으로 캐릭터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세계를 창조해야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상징적인 외계인, 팩맨의 노란 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콧수염 난 배관공과 같은 불멸의 아이콘들이 탄생했다.


흥미롭게도 이는 미술사의 한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19세기 후반, 조르주 쇠라와 같은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캔버스를 면으로 채우는 대신 무수히 많은 색점을 찍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점묘법을 시도했다. 빛과 색이 혼합되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한 결과로 등장한 이 기법은, 수많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픽셀 아트의 예술사적 원형으로 볼 수 있다.


풀 3D 액션 게임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한 슈퍼 마리오 64(1996)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픽셀 아트는 존폐의 위기를 맞는다. 3D 그래픽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게임 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너나 할 것 없이 현실과 흡사한 그래픽을 구현하는 데 몰두했다. 이 새로운 흐름 속에서 픽셀 아트는 갑자기 원시적인 것으로 취급받으며 설 자리를 잃어갔다.


하지만 픽셀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는 않고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그 명맥을 이어갔다. 1996년, 게임보이로 출시된 포켓몬스터의 첫 번째 작품인 적·녹은 제한된 하드웨어 성능 안에서 픽셀 아트가 도달할 수 있는 예술성의 정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는다. 흑백에 가까운 색상과 낮은 해상도에도 불구하고, 151마리 포켓몬의 개성과 매력을 완벽하게 담아내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마인크래프트의 초기 버전(2009). 이때의 이름은 Cave Game이었다.

2000년대 중반, 픽셀 아트는 인디 게임 개발 붐을 타고 화려하게 부활한다. 거대 자본 없이 소규모 팀이나 1인 개발자가 주축이 된 인디 씬에서 픽셀 아트는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선택지인 동시에, 그 자체로 독특한 미학을 가진 예술적 선택지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픽셀 아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이 일어났다. 1980년대 개발자들이 주어진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이 시대부터 개발자들은 무한에 가까운 그래픽 표현 방식 중에서 의도적으로 픽셀 아트를 선택했다. 포토리얼리즘의 현란함 대신,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 독창적인 분위기, 그리고 집중도 있는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겠다는 의미기도 했다.


스타듀 밸리(2016)

이러한 르네상스를 이끈 대표적인 작품들만 봐도 그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마인크래프트는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네모난 블록 세계를 통해 무한한 창의성의 장을 열었고, 스타듀 밸리는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픽셀 그래픽으로 각박한 현실을 떠나 평화로운 농장 생활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게임들에게 픽셀 아트는 게임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였다.


이처럼 픽셀 아트는 추억이라는 안전한 항구에서 출발했지만, 익숙한 미학을 통해 플레이어들을 새로운 게임플레이와 성숙한 이야기의 세계로 이끌며 발전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셀레스트가 불안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픽셀 아트가 주는 시각적 친숙함과 안정감이, 플레이어가 불편하고 힘든 감정적 여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마련해준 것이다.


2. 셀레스트 산을 오르며
픽셀로 마음의 풍경을 그려내다.
셀레스트(2018)의 인게임 이미지. 단순해 보이지만 높은 난이도가 특징이다.

2018년에 출시된 셀레스트는 수많은 평론가와 게이머로부터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더 게임 어워드에서 최고의 인디 게임을 수상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이 게임은 매들린이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 험준한 셀레스트 산을 오르는 과정을 그린 고난도 플랫포머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 셀레스트 산은 매들린이 겪고 있는 우울, 불안, 자기혐오와 같은 내면의 고통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공간임을 알게 된다. 산을 오르는 행위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개발자는 왜 이토록 섬세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로 픽셀 아트를 선택했을까?


셀레스트(2018)의 또 다른 인게임 이미지. 주인공 매들린의 모습이 보인다.

셀레스트가 극사실적인 그래픽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보자. 플레이어는 아마도 정교하게 묘사된 주인공의 외모와 자신을 비교하며 감정적 거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픽셀 아트로 단순하게 표현된 매들린의 모습은 특정 개인을 넘어, 불안과 싸우는 모든 이를 위한 상징이 된다. 플레이어는 네모난 점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캐릭터에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쉽게 투영할 수 있다.


더하여 픽셀 아트 스타일은 자연스럽게 1980-90년대의 고난도 게임들을 연상시킨다. 수없이 실패하고 패턴을 외워가며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야 했던 그 시절의 경험은 많은 게이머에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셀레스트는 이 집단적 기억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게임 속에서 수백, 수천 번씩 죽음을 맞이하며 느끼는 좌절감과 피로감은, 끝없이 반복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불안과의 싸움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장치이다. 픽셀 아트라는 시각적 언어는 플레이어가 이러한 고난도 도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고, 게임의 난이도와 서사적 주제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강력한 다리 역할을 한다.


셀레스트(2018)의 또 다른 인게임 이미지. 주인공인 매들린이 뛰어오르고 있다.

사실 디테일하게 셀레스트의 속을 들여다보면, 레트로 미학의 아래에서 헤엄치는 정교하고 현대적인 기술들을 확인할 수 있다. 매들린의 머리카락은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흩날리는데, 이 움직임들은 절차적 애니메이션이라는 현대적 기법으로 구현되었다. 또 매들린이 점프하거나 착지할 때 몸이 살짝 찌그러졌다 펴지는 효과도 주목할 만하다. 이 효과는 고전 애니메이션의 기본 원리 중 하나로, 단순한 픽셀 덩어리에 불과한 캐릭터에게 무게감과 탄력, 그리고 플레이어의 조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듯한 쾌감을 부여한다. 이러한 디테일들 덕에 우리는 셀레스트가 과거의 기술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레트로 게임에 대한 명료함과 매력은 가져오되, 실제 기술적 한계가 낳았던 불편함을 현대 기술로 완벽하게 제거했음을 알 수 있다.


기술적 필연성에서 태어나, 3D 그래픽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고, 인디 게임의 부흥과 함께 의식적인 예술적 선택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픽셀 아트의 여정에서 셀레스트는 픽셀 아트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를 보여주었다. 그 덕에 거장 스토리텔러의 손에서, 보잘것없어 보이는 네모난 점들이 인간 마음의 가장 복잡하고 감동적인 풍경을 그려내는 섬세한 붓 터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아트의 역사에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새겨 넣은 오늘의 게임, 셀레스트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게임은  왜 '영화'가 되려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