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모여봐요 동물의 숲(2020)
많은 이들에게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모동숲)은 힐링 게임의 대명사로 통한다. 복잡한 현실을 떠나 귀여운 동물 주민들과 함께 평화로운 무인도에서 유유자적하는 삶. 게임은 우리에게 바로 그런 자유와 평온을 약속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각박한 도시의 삶, 끝없는 경쟁과 의무에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꿈꾸며··· 우리는 닌텐도 스위치의 전원을 켰다.
하지만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낚싯대를 드리우고, 곤충채를 휘두르고, 나무를 베면서 문득 익숙한 감각을 느낀 적은 없는가? 벌어야 한다는, 넓혀야 한다는, 더 나은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조용한 압박감 말이다. 이 섬에서의 생활이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한 너구리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너굴이다. 너굴은 단순한 동물 주민이 아니라, 이 섬의 보이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상징하는 존재다. 인터넷에서 너굴을 악덕 건물주나 사채업자에 비유하며 갚아봐요 대출의 숲이라 부르는 밈이 유행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모동숲의 핵심 시스템이 어떻게 현실의 자본주의 구조를 반영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반복되는 노동의 고리를 그토록 매력적이고 힐링되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는지, 나아가 이 현상이 우리 자신과 노동, 그리고 보상의 관계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아보자.
1. 너굴 주식회사의 '상술'
놀러 왔는데 돈까지 갚아야 해?
게임은 플레이어가 무인도 이주 패키지에 참여하며 시작된다. 하지만 섬에 발을 내딛자마자, 우리는 현실의 논리와 마주한다. 비행기 요금과 초기 정착 비용으로 49,800벨이라는 빚이 생긴다. 물론 이 빚은 5,000 너굴 마일이라는 대체 수단으로 갚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결정적 단계다. 플레이어가 본격적으로 놀이를 시작하기도 전에, 게임은 우리를 빚과 상환이라는 시스템 안에 위치시킨다. 교묘한 점은 게임이 이를 부담이 아닌 기회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너굴 마일리지 프로그램은 천재적인 게임화 장치로 작동한다. 낚시, 주민과의 대화, 잡초 뽑기 등 섬에서 하는 모든 행동이 수치화되어 마일리지로 적립된다. 이 시스템은 플레이어에게 섬에서의 모든 활동이 잠재적인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은연중에 학습시킨다. 이는 존재 자체를 게임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플레이어가 텐트를 벗어나 번듯한 집을 짓기 위해 대출을 받는 순간, 섬에서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바뀐다. 대출 이전, 새로운 물고기를 낚는 것은 발견의 기쁨이자 순수한 즐거움에 의한 놀이였다. 하지만 대출 이후, 그 물고기는 너굴 상점에서 얼마에 팔리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한때 즐거웠던 탐험은 빚을 갚기 위한 노동이 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섬 개발 과정에서 무급 노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굴은 상점, 다리, 비탈길 건설을 위해 플레이어에게 목재나 철광석 같은 자재를 모아오라고 요구한다. 너굴은 설계도(DIY 레시피)를 제공할 뿐, 자재를 모으고 제작하는 모든 노동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현실 세계라면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동숲에서 이 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은 없다. 플레이어가 얻는 것은 그저 새로운 기반 시설의 존재뿐이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 이론에서 말하는 잉여 가치 개념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자본가(너굴)가 초기 자본(섬, 레시피)을 제공하면, 노동자(플레이어)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너굴 주식회사는 더 매력적인 섬이 되어 주민이 늘고 상점의 매출이 오르는 등, 이 가치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고스란히 가져간다. 반면, 플레이어는 그 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를 받지 못한다. 우리는 너굴의 사업을 위해 무료로 일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너굴을 악당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 모동숲 디자인의 백미가 있다. 너굴의 대출은 현실과 달리 무이자, 무기한이며, 빚을 갚지 않아도 어떤 불이익도 없다. 게임은 자본주의의 구조인 대출-상환 시스템은 그대로 가져오되, 그 시스템이 유발하는 가장 큰 불안 요소인 연체, 이자, 압류의 공포를 제거했다. 즉, 모동숲은 우리에게 불안이 소독된, 스트레스 없는 자본주의를 제공한다.
이 온화한 접근 방식 덕분에 플레이어는 이 시스템을 억압이 아닌, 스스로의 속도에 맞춰 달성할 수 있는 일련의 목표로 인식하게 된다. 안전망이 완벽하게 갖춰진 자본주의,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노동의 굴레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유다.
2. 그런데 왜 힐링이 될까···?
우리는 결국 게임을 즐기고 있다.
만약 우리가 보상 없는 노동을 하고 있다면, 왜 그것이 즐겁게 느껴지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동기 부여의 심리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동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바로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다. 내재적 동기는 그냥 예쁘게 집을 꾸미는 것처럼 행위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고, 외재적 동기는 팔아서 돈을 벌기 위해 낚시하는 것처럼 돈이나 칭찬 같은 외부적 보상을 위해 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심리학 연구들은 순수하게 재미로 하던 활동에 돈과 같은 외부적 보상을 제공하면 오히려 내재적 동기가 감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동의 이유가 재미에서 보상을 받기 때문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모동숲은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절묘하게 해낸다. 그 비결은 바로 자기결정성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자기결정성 이론은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모동숲의 중독적인 매력은 바로 이 세 가지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게임 설계에 있다.
모동숲에서 플레이어는 무엇을 할지 거의 완벽하게 스스로 결정한다. 오늘은 낚시를 할까? 집을 꾸밀까? 아니면 대출금을 갚기 위해 과일을 딸까? 모든 선택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특히 대출 상환에 마감 기한이 없다는 점은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스케줄을 온전히 통제하는 주인이 되고, 여기서 자율성이 충족된다.
또 게임은 유능감을 느낄 수 있는 피드백으로 가득하다. 희귀 곤충을 잡는 요령이 늘고, 박물관 도감은 채워져 간다. 텐트에서 시작한 집은 점점 커져 대저택이 되고, DIY 레시피를 마스터한다. 모든 작은 노력이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로 이어지며, 플레이어는 스스로가 유능하고 효과적인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능성이 충족된다.
마지막으로 모동숲은 매력적이고 개성 넘치는 동물 주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성의 욕구를 채워준다. 그들은 플레이어를 기억하고, 선물을 주며, 사소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온라인 플레이를 통해 친구의 섬을 방문하고, 자신의 섬을 자랑하며 이 욕구는 더욱 강력하게 충족된다.
결국 모동숲이 주는 힐링의 정체는 자본주의의 구조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현실 자본주의의 실패로부터의 탈출이다. 현실의 많은 직업은 상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여 자율성이 떨어지고, 성장이 정체된 느낌을 주어 유능감이 떨어지며, 의미 있는 관계를 맺기 어렵게 만들어 관계성이 부족해진다. 모동숲은 자본주의적 활동(재산 증식, 자산 축적)이 언제나 심리적 만족감으로 직결되는 이상적인 판타지를 제공한다. 나의 노동이 언제나 나의 선택이고, 언제나 나를 성장시키며, 언제나 나의 사회적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세계. 이것이야말로 완벽하게 게임화된 유토피아다.
정리해보자. 모동숲은 현실 자본주의의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자기결정성 이론의 세 가지 핵심 심리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경제 시스템을 설계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핵심 구조를 힐링이라는 매력적 외피로 감싼다.
그렇기에 모동숲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시스템을 안전하게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게임 속에서 더 큰 집을 욕망하고, 높은 무 값에 환호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동기를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 논리로부터 무작정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를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의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