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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무 살, 카메라를 놓고 컨트롤러를 잡았다.

by 루모

중학교 때, 텅 빈 교실을 촬영장으로 삼아 친구들과 UCC를 만들곤 했다. 어설픈 조명을 맞추고, 작은 동선 하나하나를 조율하며 우리가 원했던 웃음이 터져 나올 그 순간을 집요하게 설계하던 시간. 나는 카메라 너머로 세상을 재단하고 감정을 조립하며, 경험을 연출하는 희열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전혀 다른 세계에서 그 감각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손에 쥔 것이 카메라가 아닌 컨트롤러라는 점만 달랐을 뿐. 게임 폴아웃 4의 시작 화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시리즈의 상징인 파워 아머가 서서히 빛을 받는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건 누군가, 스크린 너머의 연출가가 플레이어의 몰입을 위해 모든 요소를 세심하게 조율해놓은 정교한 설계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내 꿈의 방향이 선명해졌다. 연출가의 꿈을 떠나는 게 아니라, 그 시선을 게임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가져오는 것. 플레이어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게임이 사용하는 복잡하고 보이지 않는 언어, 상호작용의 연출을 해독하고 번역해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게임을 기술이나 오락의 영역에 가두는 대신, 우리 삶과 감정을 비추는 하나의 교양으로, 누구나의 대화 주제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났다.


영화에 미장센과 몽타주가 있고 문학에 은유와 복선이 있듯, 게임에도 고유한 문법이 있다. 그 문법은 숏이나 문장이 아닌, 규칙과 시스템, 그리고 설계된 마찰이라는 독특한 개념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게임에 대한 글은 양극단에 치우쳐 있었다. 마니아를 위한 기술적 리뷰거나,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피상적인 트렌드 소개거나. 내가 가고 싶은 길은 그 사이의 세 번째 길이다.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을 판결하는 심판이 아니라, 이 매혹적인 세계를 함께 여행하며 길가의 흥미로운 풍경을 짚어주는 가이드가 되는 것이다.


조금 욕심을 부려보자면, 내 최종적인 목표는 독자들이 자신의 플레이 경험을 이야기할 새로운 언어를 갖도록 돕는 것이다. 부모님이 게임에 몰두하는 자녀를 보며, 그게 여러 감정을 마주하는 안전한 연습 과정임을 이해하게 되는 것. 친구들이 커피를 마시며 게임 속 연출과 메시지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 내 글이 바로 그 의미 있는 대화의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글을 쓰며 돌이켜 보면, 카메라와 컨트롤러. 내 손을 거쳐 간 두 도구는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의미 있는 인간의 경험을 만들고, 이해하고 싶다는 근본적인 욕망. 감독의 꿈을 가지던 때에서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매체는 바뀌었을지언정 그 열망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라는 무대 위에서 나의 꿈을 꼭 이뤄내고 싶다. 진지한 글을 쓰는 작가들과 그 글의 가치를 알아주는 독자들이 모인 곳. 바로 이곳이라면, 게임이라는 낯선 예술에 대한 내 이야기도 단순한 리뷰를 넘어 하나의 온전한 작품으로 가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이 무대 위에서 게임이 마땅히 받아야 할 깊이 있는 비평을, 누구보다 다정한 언어로 써 내려갈 수 있다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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