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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게 하루를 버텼다.

오늘도 나는 하루를 살아냈다.

by 이숨

빚을 갚아가려면, 일을 멈출 수 없었다.
큰돈은 아니어도 좋았다.
다만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이 필요했다.

하지만 두 아이를 혼자 돌보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긴 시간을 붙들고 일할 수도 없었고,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순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흔들렸고, 그걸 아는 나는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래서 새벽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시간, 몸을 일으키고 문을 나섰다. 새벽 공기는 늘 차고 날카로웠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등원 준비를 하는 일상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예민해 새벽마다 자주 깼고, 등원 준비는 늘 전쟁처럼 흘러갔다. 나도, 아이들도 지쳐갔다. 그래도 버텨야 했다. 낮에는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 발품을 팔았다. 내 하루는 늘 모서리 없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매일 닳아갔다.

그러다 구내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식판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단순한 일이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어려웠다.

이미 그곳에서 오래 일해온 두 분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들어선 순간부터 묵직한 ‘텃새’를 보였다. 작은 실수에도 날카로운 시선이 꽂혔다. 말은 하지 않아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 공기처럼 흘렀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더 조심했고, 매일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움직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늘 시험대에 올라 있는 것처럼, 차갑고 불편한 긴장이 나를 둘러쌌다.

나보다 훨씬 위이신 분들이었기에 이해하려 애썼다. 서로 다른 세대, 다른 방식, 다른 리듬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딸뻘인 나에게 향한 날선 말투와 무시 섞인 태도는 쉽게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조용히 일을 그만두었다.
미련 없이 돌아설 수는 없었지만, 그곳에 남아 있으면 나도 아이들도 더 흔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즈음,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웬만해서는 힘들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걸 아는 친구는 내 목소리만 듣고도 바로 알아챘다.

“너 진짜 많이 힘든가 보다. 일은 많아. 네가 조건을 너무 꽉 잡고 있어서 그래. 아이들 보는 걸 잠깐만 내려놓고, 시간이 조금 더 긴 일자리 한번 생각해봐.”

친구의 말은 가볍게 던진 조언 같았지만, 내 마음에는 오래 남았다.
정말 내가 조건만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단단해서, 다른 가능성을 스스로 막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친구의 도움으로 여러 구직 사이트를 둘러봤다.
그러다 8시간 근무의 생산직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의 나로서는 도전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냥 지원 버튼을 눌렀다.

'되면 가는 거고, 안 되면 말지.’
그렇게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지원했다.

하지만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괜찮을까.
내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흔들리진 않을까.
좋은 변화일지, 또 다른 무게일지.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내려놓으려 한다.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때로는 비틀거리면서도, 때로는 고개를 들지 못한 날에도,
그래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냈다.

나도, 아이들도.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몫만큼 살아낸다.
버틴다는 것이 때로는 살아낸다는 말과 같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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