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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군분투

고군분투 (孤軍奮鬥)

by 이숨

그렇게 나는 나를 조금씩 다시 세워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완벽하게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몸을 일으키는 정도였다.

무너진 마음 위에 희미한 희망을 하나씩 올려두는 일은 생각보다 느리고 섬세한 작업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어느 순간 아주 작은 온기가 내 안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겨우 나 자신을 ‘조금은 괜찮다’고 느끼기 시작한 무렵, 아이들 쪽에서 이상한 기척이 보였다.

첫째는 어느 날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는 학교가 너무 불편해.”

그 말 한마디가 나를 깊게 흔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면 이제 조금은 편안해질 거라 믿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상담을 권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숨을 고르고, 일을 하고, 밥을 차려주고, 아이들을 재우는 일조차 버겁던 시간.

그 속에서 나는 아이들의 표정과 말투에 귀 기울일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잘 지내겠지”라고 미뤄두며 지나쳤을 뿐이다.

세 아이를 돌보며 생계를 책임지는 삶은 현실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버거웠다.
하지만 더 고통스러웠던 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도와달라고 말할 곳도 없었고, 마음을 털어놓아도 괜찮을 사람도 없었다.

감정은 말하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아이들에게 흘러갔다.
외롭고 불안한 날에는 말이 날카로워졌고,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첫째는 나의 파동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내 말의 모서리가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힘들다는 것을.
울음을 삼키고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조용히 자랐고, 조용히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겨우 숨을 돌리는 틈 사이로, 묵혀두었던 마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무너진 시간만큼 아이들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나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 동안, 아이들도 돌봄 없이 어딘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그 이후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아이들도 편안해질 수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의 눈을 더 자주 들여다보았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 작은 떨림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감정을 꺼내 놓을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맡길 수 있도록,
나는 판단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품기 시작했다.

엄마로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는, 함께 회복해 나갈 수 있는 존재였다.

우리 모두는 그 시간 동안 조금씩 부서졌고, 어딘가 금이 갔지만,
그 금 위에 새로운 온기를 쌓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고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하루 한 걸음씩.
가끔 멈춰도 괜찮고, 돌아가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다시 걷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며, 서로가 버틸 수 있도록 곁에 서며 우리는 다시 살아났다.

우리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지만,
그 고군분투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이 싸움은 언젠가 우리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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