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이제 숨을 쉬어돼"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던 그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대단한 문장을 쓰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울릴 특별한 드라마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동안 가슴 한복판 깊이 묻어두고 살아왔던 ‘나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낸다는 사실이 낯설고 두려웠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현실을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았다.
무너지는 일상을 다잡고, 흔들리는 감정을 부여잡고,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조용히 침묵하며 버티는 날들이 이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속은 늘 위태로웠다.
한 장 한 장 쌓이는 카드 명세서, 그 앞에서 깊게 잠긴 한숨.
늘 일말의 여유도 없이 돌아가는 숨 막히는 매달의 삶.
나조차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마음을 매듭 짓고 버티며 살았다.
나는 오랫동안 ‘버티는 사람’이었다.
살아온 시간이 그렇게 만들었다.
가장 무겁게 짓눌렀던 건 매달 갚아야 하는 빚이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날짜는 숨통을 죄었고, 은행 문자 알림만 울려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아이들의 생계비는 남편의 카드로 간신히 충당될 때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늘 불안했다.
과거 다툼이 있을 때마다 그는 생활비를 끊어 자신을 과시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심스러워졌고, 늘 ‘다음 달’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생활비가 끊기면 나는 하루 만에 벼랑 끝에 서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법적으론 부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관계가 단절된 상태였다.
함께 살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기대지 않았다.
벽을 사이에 둔 삶, 감정이 닿지 않는 거리.
이제는 내 힘으로 버티고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쓰기 시작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누구에게 장황하게 하소연하듯 늘어놓자니 부끄러웠던 이야기들을
글이라는 형식 속에서야 조금씩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엔 정말 많이 고민했다.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까?”
“남들은 날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이런 걸 세상에 드러낸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그날만큼은 용기를 냈다.
적어도 지금의 나를 기록하고 싶었고,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는 동안 감정은 차올랐다.
아팠던 순간들이 자판 위로 하나씩 떠올랐다.
한 문장 쓰고는 눈물을 훔치고, 한 단락 쓰고는 깊게 숨을 내쉬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래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것처럼,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씩 환해졌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잘 쓰는 글이 아니었다.
그냥, 안 쓰면 견딜 수 없어서 쓴 글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는 내 마음을 다독였다.
손끝에서 아주 작지만 확실한 한숨, 그리고 숨결이 흘러나왔다.
살아 있다는 느낌,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글을 쓰며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참 많이 버티며 살아왔다는 것을.
내가 겪은 감정들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글쓰기는 내 삶의 숨구멍이 되었다.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억울함과 분노를 글로 흘려보내며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
“왜 나는 끝없이 고통을 겪어야 할까.”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나는 비로소 나를 이해했다.
때로는 쓰다 울기도 하고, 쓰다 멈춰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그렇게 매일 조용히 내 마음을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버티고 있었다.’
그 깨달음은 나를 위로했다.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위로해야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글을 계속 쓰다 보니 변한 것이 하나 있었다.
예전엔 미웠던 사람들에 대한 감정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도 나처럼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나를 상처 입힌 행동들이
그들의 불안, 두려움, 결핍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은 조금씩 더 부드러워졌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고생했어.’
눈물이 나도 참지 않았다.
울어도 괜찮다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이제는 숨 쉬어도 된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을 마주했다.
그간 쌓였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글로 엮어냈다.
그 글에는 화려한 수식이나 멋진 문장은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쓴 마음들이 담겨 있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 글은
내 삶을 바꾸기 시작한 첫 번째 ‘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했다.
크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한 변화들이 있었다.
예전의 나는 늘 불안과 초조에 눌려 있었다.
눈을 뜨면 첫 생각은 돈이었고
잠들기 전 마지막도 역시 불안이었다.
하지만 글은 그 무겁던 마음에 빈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숨이 조금 통하게 해주었다.
나의 하루에 나의 감정을 들여다볼 작은 틈을 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한 것은
‘나에 대한 태도’였다.
나는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았다.
‘왜 못하고 있냐’가 아니라
‘여기까지 온 나, 정말 잘 버텼다’고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말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 한마디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침묵이 있었는지.
지금도 삶이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다.
빚은 여전히 갚아야 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산처럼 쌓여 있다.
가정의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주저앉지 않는다는 것.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은 참 묘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닌
스스로 살아내기 위해 쓰는 글이 있다.
나는 그 글로 살고 있다.
큰 박수나 반응이 없어도 괜찮다.
읽히지 않아도 괜찮다.
그 글은 분명히 날 살리고 있으므로.
브런치에 첫 글을 쓴 그날,
나는 아주 조용히 내 마음에 속삭였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이제 숨 쉬어도 돼.”
그리고 그 말은 지금까지도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문장이 되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