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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작은 공간이 전하는 큰 행복

집 안에 숨은 공간

by 이숨

유치원생인 막내가 어느 날,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이제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할 나이가 된 것이다.
막내의 작은 장난감과 애착 인형, 그리고 책과 그림 도구들이 방 구석구석에 쌓여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 한켠에는 ‘이제는 아이에게 조금 더 넓은 공간을 만들어줘야겠구나’ 하는 부담과 책임감이 스며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집은 어느새 온갖 물건으로 가득 차 너저분해졌고,
벽 곳곳에는 아이들이 자라오며 남긴 낙서와 그림, 손도장 같은 흔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시간과 순간들이 오롯이 담겨 있어
한 장면, 한 장면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때로는 막내가 자기를 위해 조금만 정리해 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아, 이제 우리 아이도 스스로의 공간을 중요하게 느끼는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이 작은 소망 하나에도 마음이 뭉클해지고, 동시에 부족한 집을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는 고민이 마음을 누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 속에서도, 아이들의 웃음과 호기심이 가득한 방을 떠올리면
조금은 힘들어도, 조금은 지저분해도, 결국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 소중한 안식처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내 마음 한켠의 부담을 조금씩 덜어주었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가고 있었고, 그에 맞는 각자의 공간을 마련해주기에는 집이 너무 좁았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집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무엇을 정리하고 비울 수 있을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버려 이제는 작아진 옷들, 여기저기 긁히고 망가져버린 작은 옷장들…
하나씩 꺼내어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 한켠에서 오래된 추억들이 조용히 올라왔다.
‘아, 이 옷 입고 뛰어다니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훌쩍 커버렸구나.’
손때 묻은 장난감 하나, 색이 바랜 그림책 한 권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겹쳐 떠올랐다.

없는 살림에 아이들 옷 한 벌 사주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
여기저기서 “이거 아직 쓸 수 있으니 가져가세요” 하고 건네주던 옷들을 받으며
감사함과 미안함이 뒤섞였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책과 위로가 교차했다.

그렇게 받은 옷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집 한켠을 가득 채울 만큼 늘어나기도 했다.
정리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참으로 많은 감사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안방에서는 늘 다 같이 자느라 매트리스 두 개를 나란히 붙여 놓았었는데,
그중 하나를 치우고 작은 방 하나를 아들 방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안방에 생긴 빈 공간에는 결혼 후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했던 화장대 서랍을 꺼내
막내의 책상 겸 보관함으로 새롭게 꾸며주었다.

정리를 하다 보니, 집은 생각보다 좁지 않았다.
쓸 만한 공간이 곳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걸까?
정리를 이렇게 하지 않고 살아온 날들이 떠오르며,
내 집과 나 자신에게 잠시 미안함과 자책감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정리를 하면서 동시에, 마음 한켠도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이제는 조금 더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떠올랐다.

그렇게 집을 정리하면서,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정리하다 보니 놔둘 것보다는 버릴 것이 훨씬 많았고,
하나씩 버릴 때마다, 그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힘든 감정들도 함께 흘려보내는 듯했다.

그 과정 속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묵직하게 느껴지던 무언가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안의 공간이 조금씩 비워지듯, 내 마음도 여유와 평온을 찾아가는 순간이었다.

비록 크지 않고 새로운 가구를 들인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아이들에게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크게 돈을 들인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공간이 하나하나 갖춰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속에 묘한 뿌듯함이 번졌다.
작은 변화였지만, 아이들이 그곳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낄 생각을 하니
내 마음까지 덩달아 따뜻해지는 듯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사고 싶은 가구나 물건도 쉽게 해줄 수 있는 형편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위로 같은 것들이 마음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아이들에게 각자 방에 가보라고 했다.
새로운 가구나 물건을 사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기뻐하며 연신 고마워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 마음 한켠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해졌다.

아이들의 작은 기쁨과 감사를 보며,
‘잘 산다’는 것이 꼭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그저 내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엄마인 나는 늘 아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더 넓은 방, 더 예쁜 가구, 더 많은 장난감… 그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늘 마음 한켠에 있었다.

하지만 세 아이가 자기만의 공간을 얻게 되었을 때,
새로운 물건이나 화려한 장식이 없어도 그저 자기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기뻐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큰 것이거나 새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 그리고 함께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 자신도 그 과정을 통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자리,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음과 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 아이가 자기 공간에서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나의 존재가 존중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주는 작은 공간이, 곧 나에게도 마음 깊은 곳의 안식과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사랑과 보살핌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기적,
그리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가슴으로 느꼈다.

그 작은 마음 하나가 내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진정으로 잘 사는 하루란 거창한 성공이나 물질이 아니라,
내 곁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작은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하루라는 것을.

하루 반나절 동안 집안의 짐을 정리하고, 옮기느라 몸은 지쳐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각자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엄마라는 사실이
내 마음을 깊이 뿌듯하게 채워주었다.
그 공간 하나, 작은 서랍 하나에도 아이들의 웃음과 호기심이 담길 것을 생각하니,
모든 수고와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의 기쁨과 감사한 눈빛이 내게 전해질 때마다,
나는 비로소 하루의 따뜻함과 의미를 가슴 깊이 느꼈다.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다 해줄 수는 없지만,
이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웃고, 사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그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사랑과 보살핌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기적을 다시금 체감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며
가슴 한켠이 뜨겁게 벅차오르는 경험을 했다.
이 순간, 나는 분명하게 알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작지만 진실한 순간들이 쌓여가는 하루,
그 안에서 느끼는 마음의 온기야말로 진정으로 잘 사는 하루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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