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과 마흔, 서로를 마주하다
하루는 평소와 조금 다른 날이었다. 다른 부서로 배치를 받게 되었고, 예전에 한두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라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특성상 사람이 자주 바뀌다 보니 늘 새로운 공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익숙함과 낯섦이 함께 섞여 있는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조용히 일을 시작했다.
그날 함께 근무하게 된 사람은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워낙 일이 빠르게 돌아가고 바빠서, 서로에게 말을 건넬 시간조차 없이 손이 먼저 움직이는 곳이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일만 하기엔 조금 따분하고, 어쩐지 그 청년이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그냥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름이 뭐예요?”
첫 인사는 늘 그렇듯 간단했다.
이름, 나이, 아주 기본적인 정보들만 오갔는데 이상하게도 그 짧은 대화가 마음에 작은 틈을 만들어줬다. 나는 이어서 자연스럽게 “사는 곳은 어디예요?”라고 물었고, 뜻밖에도 그가 사는 곳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서로에게서 아주 작은, 그러나 반가운 온기가 흘렀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렇게 사는 곳 하나만으로도 대화가 확 열리고, 잠시지만 서로를 더 알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어떻게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는 조금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그냥… 다른 공부하고 있었는데, 돈이 필요해서요.”
나는 그 말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늘 균형을 찾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결국 현실이 먼저 손을 잡는 순간이 더 많지 않은가.
그래, 돈이 필요해서 왔다고.
나도 그랬다.
나 역시 삶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오던 어느 시기에 이 회사에 발을 들였다.
회사가 나쁜 곳은 아니다. 일은 힘들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따뜻하고, 하루하루 부지런히 살아가는 이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다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래 머물 곳은 아니겠지’ 하는 작은 목소리가 자주 올라온다.
어쩌면 우리 둘 다 잠시 머물다 가는 같은 정류장에 앉아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왔다가, 각자의 꿈과 계획을 향해 다시 걸어가려는 사람들.
그날 그 청년과의 짧은 대화는 그런 생각을 내 마음속에 잔잔하게 흘러들게 했다.
무슨 공부를 하고 있냐고 묻자 그는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그 말이 그 청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정말 잘 맞을 것 같네요” 하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주었다. 스물여덟이라는 나이를 듣고는, 그 나이대의 고민이 얼마나 무겁고 복잡한지 알기에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게 되었다.
대화는 어느새 그의 학창시절 이야기로 흘러갔다.
어린 시절부터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지나왔는지 조심스레 꺼내놓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문득 아들 키우는 엄마로서의 내 고민들을 함께 터놓게 되었다. 서로의 삶이 다르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과 성장의 무게만큼은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는 아들을 키울 때 도움이 될 만한 조언도 빠지지 않고 해주었다.
특히 내가 “게임을 좋아하는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말하자, 그는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도 25살까지는 게임 많이 했어요.” 그 말에 괜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어 그는 학창시절에 공부보다는 놀기에 더 마음을 쏟았던 시기를 회상하며, 인문계 대신 기술계로 진학했던 선택을 살짝 아쉬워하는 듯한 말투로 흘렸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후회도 있고, 아쉬움도 있고, 그래도 그 시절의 자신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함께 담겨 있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릴 때 꿈이 공무원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려고요.”
그 말에는 희망과 불안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다시 잡아보려는 청년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그저 조용히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혼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스물여덟 살 청년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문득 내 스물여덟 살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 역시 방황했고, 방향을 잡지 못해 마음이 늘 흔들렸던 시기였다. 지금 마흔이 된 내가 돌아보니, 스물여덟은 충분히 고민해도 되고, 얼마든지 흔들려도 되고, 무엇이든 새롭게 도전해도 괜찮은 나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말 대신 조용히 이렇게 전하고 싶었다.
“잘하고 있어요. 마흔인 나도 여전히 고민하고, 가끔은 길을 잃은 것처럼 느끼며 살아가요.”
그 한마디가 과하지 않게, 그러나 진심이 닿기를 바라며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작은 응원의 존재가 되었다.
마흔이 된 지금의 나도 사실 아무것도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배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나에게도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할 때가 있듯, 그 청년 역시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내 삶이 완벽하지 않기에, 그의 삶을 더욱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응원하기에는 내 삶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청년에게는 지금, 누군가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꼭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하루만큼은 그의 작은 응원자가 되어보았다. 돌아오는 길, 괜히 마음 한 구석이 따뜻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더 진하게, 더 확신을 담아 전해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그 말이 그에게 오래도록 남아 작은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