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믿었나?
-지난 이야기-
양육자는,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며 그들은 모두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야말로 '명품'이며 너 또한 그렇다는 사실을 자녀에게 적극적으로 말해줘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은 물론, 타인을 외모로 판단해 단정 짓는 행위에 대해 좀 더 신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글을 쓴 지난주 어느 날이었다. 사춘기가 엄마, 그 기사 봤어요? 하면서, 최근 혼외자 출산 문제로 도마에 오른 배우 이야기를 꺼냈다. 나 역시 기사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사춘기에게 그 말을 듣자니, 사건의 진위를 떠나 어른으로서 무척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기사 댓글엔 찬반여론이 뜨거웠고 사춘기도 내게 자신 의견을 피력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한참 연예인에 관심 많은 사춘기 청소년에게 공인이라 할 그들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우려스러웠다. 생각을 정리한 뒤 사춘기와 다시 대화 하기로 했었는데, 내 교실에 온 또 다른 사춘기들도 똑같이 그 배우 얘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그 기사 보셨어요?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들 태도나 바라보는 시점은 우리 집 사춘기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른으로서 사춘기 아이들과 세세히 언급하기 민망한 이 화두를 나는 더 이상 피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처음 기사를 접하고 그 배우의 평소 이미지와 이번 일이 다소 의외라고 느꼈었다. 하지만 곧이어 생각했다.
내가 그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안다고? 내가 가졌던 호감이나 긍정적 감정은 모두 그의 선한 외모를 두고 추측해 온 것일 뿐, 정작 그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말한 걸 들은 적도 없었다.
이 과정이야 말로 외모지상주의에 현혹된 인간 심리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대중이 그의 내면이나 삶의 철학 따위에 대해선 전혀 모른 채, 외모만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한 심리적 착시 현상말이다. 이제 우린 더 멀리 시야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자극적인 스토리에만 집중된 여론 속에서, 나는 사춘기들에게 다른 시각을 권하고 싶었다. 이 같은 가십 기사들이 어린 청소년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바라볼 다른 시야를 보여 줄 대안이 필요했다.
나는 사춘기들에게 비판적 사고 하길 주문했다. 내가 갖고 싶은 물건, 좋아하는 아이돌, 내게 친절한 어떤 상황, 긍정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까지, 우선 멈추고 입체적으로 생각해 보길 제안했다.
의심이란 말은 부정적이지만, 내가 왜 좋아하는지. 나는 왜 그 물건이 갖고 싶은 건지. 저 사람은 왜 내게 이토록 친절한 건지,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그냥 믿어도 좋은 건지 의문을 갖고 생각해 보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더 넓은 의미에서 이런 대중적 실망이 어디서 온 건지 되짚는 사이, 사춘기들도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폐해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극적인 사건의 찬반여론은 부질없었다. 다만, 비판적 과정도 훈련이 필요했고, 그것만이 분별없이 쏟아지는 가십 속에서 아이들을 더 단단히 지킬 유일한 방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