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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이의 삶 28화

28. 죽는 게 낫다는 너희에게

by 은수

요약 문장:

'죽는 게 낫다.' 아이들의 말에는 한 마리 사자의 삶에 대한 연민을 넘어, 자신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을 들고 있었다.


2002년 태어난 암사자 ‘사순이’는 2023년 8월 19일까지 20년 동안 철창 안에서 살았다. 사순이가 있던 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육장의 철창이었다. 사순이는 시속 80km로 달리고 하루에 20km 이상을 이동할 수 있는 암사자였다. 하지만 국가에선 개인 소유 야생동물 사육장 기준을 가로 14미터, 세로 2.5 미터면 충분하다고 봤다.


주로 초원에 사는 사자는 덩치가 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프라이드(Pride)라 불리는 무리 생활을 하는 야생동물이었다. 그러나 사순이의 지난 20년은 날마다 콘크리트 바닥 위를 홀로 서성이며 자신의 본성을 철저히 역행하는 삶이었다.

풀냄새를 맡을 수는 있었으나 밟아본 적 없었고, 숲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렇듯 단조로운 일상에서 사순이는 바닥을 뱅뱅 돌거나 배식구를 긁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사자의 평균 수명이 15~20년임을 고려하면, 사순이가 철창에 갇혀서 보낸 20년은 곧 사순이의 평생이었다.


사건은 2023년 8월 19일에 일어났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지만, 사육사의 실수로 철창문이 잠기지 않았고, 사순이는 우연히 열린 철창을 벗어났다. 그렇게 사순이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흙을 밟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본능을 역행해 살아왔기 때문인지 멀리 달아나지도 않았다. 그저 철창 근처 풀숲에 앉아 20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천천히 흙냄새를 맡으며 그늘에 앉아 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간들은 사자가 탈출했다며 한바탕 소동을 벌였고, 산탄총을 발사했다. 야생동물인 사순이는 인간에 의해 평생 좁은 철창에 살았고, 인간의 실수로 밖으로 나왔지만, 결국 인간의 총에 맞아 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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