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힘
오랫동안 절대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은 어떻게 오는 걸까.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단언했던 장소에 스스로 발을 옮기거나, 끊겨 버린 인연의 길을 따라 나서, 마침내 오래 그리웠노라 고백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지난 5월부터 나는 반년 가까이 두문불출했다. 워낙 집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제주에 일찍 찾아온 폭염 탓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생활 반경을 최소화하고 내 에너지를 아껴야 했다. 그 결심 덕분에 교실로 오는 어린이, 청소년을 만나는 일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읽고 쓰며 지낼 수 있었다.
1인 가구의 단출해진 살림살이는 그동안 요리나 청소에 들던시간을 한결 합리적으로 변화시켰고, 그만큼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은 깊어질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브런치에 [아들 방에 들어가는 방법]과 [아이의 삶], 두 개의 연재를 했고, 그 외엔 그동안 썼던 글을 덜어내는 작업에 더 공을 들였다.
지난 2년 반 동안 브런치에서 발행과 취소를 반복하던 500여 편의 글 중, 상당 부분이 이번 작업을 통해 새 옷을 갈아입거나 영구 삭제됐다. 부침이 심했던 지난 시간은 그렇게 두 권의 브런치북으로 묶였다.
글쓰기는 두 권의 결과물 이전에, 그곳에 당도하기까지의 여정에 방점을 찍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고백을 넘어, 세상을 향해 객관적인 눈을 갖게 하는 훈련이었다. 그 과정은 글의 성장 이전에 마음의 진동을 더욱 섬세히 느끼고 들여다볼 기회를 만들며 한 존재의 성장을 도왔다.
마치, 도를 닦는 것 같던 그 두문불출의 과정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나는 이제 그만 묵언의 시간을 해제하고, 오래된 마음의 짐도 벗고 싶었다. 아니, 그럴 힘이 생겨있었다.
나는 묵언을 해제함과 동시에 김포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도시는 일 년 만에 더 높아졌다. 이국의 언어들이 많이 들린 탓에 나는, 가끔 주위를 환기하며 내가 있는 곳을 돌아봐야 했다.
도시는 여전했다. 건너야 할 횡단보도는 아득히 멀었고, 그 길을 무사히 건넌 뒤엔 언제나 새로 목숨을 얻은 것 같았다. 그뿐 아니라, 경적 소리와 잦은 정체, 다급한 엠블런스 소리는 내가 살아있음은 물론, 늘 기약 없이 떠났던 도시로 돌아왔음을 실감하게 했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 줄 유일한 사람, 고모를 만났다. 그는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친구처럼 함께하며 문화적 감수성의 뿌리를 함께 나눈 존재였다. 눈에 뵈지도 않으며 내게 건너온 그 감각들은 사는 내내 삶에 피를 돌게 했었다.
30년이나 멈췄던 우리의 시간은 놀랍게도 만남과 동시에 아무 일도 없던 듯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꺼졌던 내 안의 빛이 스스로 살아났다.
돌아오는 날엔 브런치 작가님을 만났다. 우리는 마치 어제 헤어졌던 사람들처럼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 글을 매개로 만난 인연의 힘은 대단했다. 우린 마치 한동안 볼 수 없던 자매같았다. 여섯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대화와 웃음, 맛있는 식사, 공항까지의 따뜻한 배웅. 그 모든 순간이 내 침묵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도시를 벗어나 내가 사는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귀에서 얕은 이명이 울렸다.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져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제야 나는 또 한 챕터가 완전히 끝났으며, 이제 새로운 챕터가 열릴 준비가 됐음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절대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되는 순간은 절대 우연이나 기적의 방법으로 오지 않았다. 그것은 부단히 나를 돌아보며 기다린 시간이 마침내 힘을 낸 바로 그 순간에 꿈처럼 왔다.
다들 잘 지내시지요?
가을이 성큼 다가오기도 전에 겨울이 되려 하네요. 오늘은 따뜻한 제주도 바람도 드센 날이었어요.
저는 10월 말 즈음 긴 묵언의 시간을 끝내고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미술관도 가고, 보고 싶던 사람들도 만나 내면에 힘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비장하게 썼던 글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면 못 견디게 부끄러워집니다. 많이 비워낸 만큼, 11월은 더 많이 읽고, 늘 그렇듯 사소한 일상에서 마음을 건드린 이야기들로 소통할게요. 그동안 자주 못 가뵌 작가님들 글방도 열심히 찾아뵐게요. 모두 건강하시길요~ -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