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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키아벨리 Oct 13. 2024

Z세대 교사가 부담스러운 M세대 교사

미리 보는 결론: 세대가 문제가 아니라 세태가 문제이다

  몇 해전부터 MZ니 뭐니 세대를 나누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사용한다. 맥락적으로 보았을 때, MZ는 일종의 혐오표현으로 사용된다. 대체로 사회나 조직에 부적응하거나 공동체성에 금이 가게 만드는 행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인데, 대체로 사람들이 젊다면 으레 그런 이기주의적 태도를 가졌다고 일반화하니 특정 세대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내 경험을 다 털어 보더라도 MZ세대라는 말을 칭찬하기 위해 끄집어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그 세대에 속한 후배들조차 연배가 비슷한 후배들의 한참 떨어지는 사회성을 비꼴 때 "걘 MZ라 그래요."라고 한다. 그러니, MZ는 특정 세대를 구분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성이 부족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듯하다.


출처: https://www.pewresearch.org


  실제로 세대를 구분하는 표현으로 M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나눠 사용한다. M세대는 1981년생부터 1996년생까지를, Z세대는 1997년생부터 2012년생까지를 포함한다. M세대 끝자락부터 Z세대 끝자락까지는 30년이 넘는 차이를 보이고, 직장생활을 하는 성인을 기준으로 범위를 줄여도 Z세대 막내와 M세대 선임은 20년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둘을 한 데 묶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대학교 입학으로 보면 현역인 경우 00학번부터 15학번까지가 M세대, 16학번부터가 Z세대인데, 2024년을 기준으로 17학번부터 20학번까지 교사를 하고 있으니 대략 Z세대가 공직에 입직한 지는 4년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세대라는 것의 구분이 칼로 무 자르듯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 15학번 언저리의 몇 학번 정도는 두 세대의 특징이 모두 나타날 듯싶다.


   Z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종합하면 '자기밖에 모르고 당장 이익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열정과 끈기가 모자라다'는 것이다. 나는 교대에서 강의를 하고 현장에서 저경력교사를 지원하는데, 내가 대학교 교직원들이나 학교의 경력교사들에게 듣는 Z세대 교대생과 신규교사에 대한 불평이 실제로 그러하다. 권리는 쫓으면서 의무는 피하고, 자신은 존중받길 바라면서 상대에게 무례하다는 것이 그들의 평가이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은 '젊은 세대를 상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견에 부정하지 않는다. 나 역시 교대생들이나 저경력 교사들을 상대하는 것이 점점 어렵고 피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Z세대 예비교사와 저경력교사를 대하는 것보다 경력 10년 안팎의 '상대적 저경력' 후배들이 훨씬 대하기 편하다. 이들은 선배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존중하며, 일상적으로 예의를 갖추며 도움을 받았을 때 확실히 고마워할 줄 안다. M세대, 사실은 거의 끝에 있는 수석교사로서 나는 같은 M세대 후배에게 더 끌리고 더 많은 것을 주고 싶다(그 후배들은 나를 까마득한 꼰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데, 내가 겪은 교대생들이나 저경력교사들이 무례하고 인내심이 적고 도움에 고마운 줄 모른다고 해서 이러한 특징이 이들 세대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돌아보면 학부생들 중에서도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도움을 청하고 그 도움에 감사하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저경력교사 중에서도 여러 선배교사들에게 모범이 될 만큼 열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자기 일을 해내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를 N잡러를 칭하고 본업이 학교일(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보살피는 것)보다는 유튜브나 에듀테크 따위의 강사로 얻는 부수입을 얻는데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꽤 드물다.


  그렇다면 왜 많은 이가 그렇게 Z세대 교사(혹은 예비교사)를 싸잡아 부정적으로 보는 걸까? 그것은 부정성 편향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Z세대 저경력 교사와 예비교사도 있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더 쉽게 발견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사실, 무례하거나 인내심이 적거나, 도움에 대해 고마움을 모르는 교사는 M세대에서나 X세대에서나 동시에 발견된다. 내가 그간 살아온 경험을 돌아볼 때, M세대 후배들이나 X세대 선배들이 모두 열정적이고 인격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아마 내가 이렇게 냉소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속한 조직에 대한 내 실망은 M세대와 X세대(사실은 X세대 선배들로부터 더 큰-) 교사들로부터 온 것이다. Z세대와 지낸 시간보다 M/X세대와 지낸 시간이 더 길고, 나쁜 기억으로 남은 수많은 사건도 M/X세대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수석교사는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돕는데, 내가 돕는 사람들은 Z세대와 M세대, X세대 모두를 포함한다. 그런 경험으로부터 느끼기에, Z세대를 규정하는 혐오적 특성은 모든 세대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이 모두 나타난다고 해서 각 세대를 모두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사회적이거나 개인적 경향성은 확실히 최근의 세대일수록 더 흔하게 발견한다는 점에서, 전체 중 비율에 차이가 있고 할 수 있다. (호황기를 나타내는 경제적 지표가 아닌) 절대적인 풍요의 측면에서 더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지낸 세대일수록, 높은 자존감을 갖도록 권익을 보장받은 세대일수록 공동체를 과소평가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나 역시도 가끔 Z세대에 대해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수석교사로서 만나는 어린 후배교사들 중에 일부는 도움을 줘도 꿈쩍 안 하고, 도움 받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도움을 받는 것은 그쪽인데, 멘토인 내가 더 마음이 급해질 정도로 무책임하거나 대충 하자는 생각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 다행인데, 그러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대학에서 강사로서 만나는 예비교사 후배들은 더욱 가관이다. 강의시간 외에 가르침을 주어도 고마운 줄 모르고(그 가르침이라는 것이 단순 질의응답이 아니라 컨설팅의 수준인 것이 문제인데, 보통 나는 컨설팅을 할 때 시간당 10~20만 원 정도를 받는다), 나를 챗GPT 정도로 생각하는지 아무렇게나 물어본다. 그리고 잘못을 해도 죄송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 이런 친구들은 간혹 평소 강의시간에도 무례함과 건방짐을 겸비하는 경우가 있다. 바쁜 내가 오로지 선의로 돕는데, 참 마음 같지 않다. 이런 나쁜 케이스는 내가 겪는 Z세대의 1/4도 안 되지만(사실, 이 정도면 많긴 하다), 나 역시 부정성 편향의 덫에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나는 M세대의 거의 시작에 속하고, 적어도 경기도에서는 가장 어린 수석교사이다(전국적으로도 나보다 젊은 수석은 다섯 명도 안될 것이다). 젊은 축에 속함에도 Z세대들이 어렵다. 특히 팬데믹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성인들이 어렵다. 여전히 많은 Z세대 교대생과 저경력교사가 훌륭하지만, 예전보다 많아진 이상한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강의도, 컨설팅도 어렵다. 소수에 속하는 그들이 그룹을 만들어 무례와 태만, 무책임을 전염시키기 때문에 어렵다. 낮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크게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기성세대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이 사회적 풍토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젊은 세대의 교사들이 이에 편승해 삐뚤어져도 상관없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우려스럽다. 이들을 최대한 이해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하는 것이 내 일인데, 참 어렵다. 상대적으로 세대차이가 덜 나는 M세대 수석교사도 이럴진대, X 세대 수석님들은 얼마나 어려우실까 싶다. 그리고 수업이라는 공통분모 없이 Z세대 교사들과 씨름하는 교감교장선생님들 역시 안타깝고 대단하다는 마음이 든다.


  수석교사를 계속하는 한, 나는 수많은 Z세대 교사들을 만날 것이며, 언제고 알파세대의 교사도 만날 것이다. 누구를 만나건 간에, 내가 걱정하는 것은 세대가 아니라 세태이다. 우리 사회에 비상식이 상식으로 자리 잡는다면 내가 만나는 그가 어떤 세대이건 간에 그 관계가 힘겨우리라. 정년까지 누군가의 멘토로 살아가는 것이 수석교사의 삶임을 떠올려 보았을 때, 나는 세대보다 세태에 적응해야 할 성싶다. 나도 행복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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