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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May 29. 2024

일곱 돌고래의 섬

2023말. 회사를 그만두고나서.

#첫날


 제주의 현무암이 잘게 깔린 정원을 둔 투박한 나무 책상. 그 너머로 서있는 책장에 색깔별로 모여 있는 책들. 홀로 앉은 공간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젊은 객들의 즐거운 대화에도 불구하고 고요함을 품는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시간을 갈무리고 기념하고자 도달한 제주도. 굳이 이곳이어야 했던 이유는 새로운 첫해에 마주한 돌고래 가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날아오름의 느낌이 그리워서였을까?


 습관처럼, 올해는 변화수가 있을 것이다, 창조적 파괴 운운해왔는데, 결국에는 한 해의 막바지로 접어들며, 거대한 변화를 선택하여 맞닥뜨리고, 창조적 파괴를 해버렸다. 언령의 지엄함이 사뭇 실감이 나 앞으로는 더 좋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선택의 대가를 감당하는 첫 여정이 이 곳인 것은 아무래도 돌고래 가족들 때문일 것이다. 일곱 돌고래를 보고 일곱가지의 좋은 일이 올 해에 있을 것이라 제멋대로 믿었는데, 그것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고도 싶었고, 혹은 남은 두 달간 중간 독촉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지만 막상 이 땅에 서서 그들의 터전이 들려주는 밤 파도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돌고래는 그냥 그들의 길을 가던 것이다. 그 일상에 어떠한 신묘한 힘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어쩌면 신묘한 것은 그 우연한 조우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 자신과 삶을 돌아보며 더 나은 변화를 추동 할 힘을 얻어내는 인간의 의지일 것이다. 어쩌면 이 일곱 돌고래의 섬이 이 시기에 나를 부르고, 혹은 나의 마음이 이 섬을 부른 것은 그 의지를 단단히 하여 새 시간을 열어내고자 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튿날 아침


 겨울 절기의 시작과 더불어서, 갑작스럽게 냉기가 실감나는 아침이다. 고요함 속에서 아침을 일찍 시작한 이들의 소리들이 간간히 들려오는 가운데, 어제 밤 활기가 가득하던 부엌에는 고요함과 갖 덥힌 따뜻한 물의 온기들만 부유한다. 이 자애로운 여유 안에 무언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끊어진 이 시간은 직장 적령기의 성인에게 귀중한 것일 터, 어젯밤 일상에 치인 이들 간의 대화속에서 발견하였듯 선망하고 또 쉽게 선택할 수 있으나, 선뜻 결단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인간의 모순은 여기에서도 등장한다. 일을 하는 것에 매어 괴로워하나 그것을 끊어 내기는 어려운, 이 고의 순환 속에서 인간은 번뇌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듯하다. 긍정과 부정의 끝없는 손익계산서가 누적된 개개별의 존재들은 자체로 세상의 대차대조표일터, 이렇게 회복을 갈구하는 것은 어쩌면 무한한 모순의 순환 속에서 무언가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갈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소중한 휴식의 순간을 누리면서도, 다시금 끊어내었던 노동의 현장으로 복귀를 갈구하는 곳에서 나의 모순 역시 큰 틀에서 삶의 쳇바퀴를 돌려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깨어난 여행객들의 분주한 준비 소리로 고요하던 공간은 다시금 활기를 얻어간다. 만남과 헤어짐의 교차야 말로, 이런 여행객들이 모이는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젊은 이들은 이런 사람 간의 교차 속에서 유쾌함과 아쉬움을 느끼겠지만, 이러한 관계의 공허를 오래 겪어온 이들은 그냥 홀로 편안한 숙소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 과도기 어딘가에서 서서 사람에 대한 갈구와 환멸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는 것 역시 지금만의 특권일지 모른다. 사람은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면서 해결책이기도 하다. 어젯밤의 대화들에서도 많은 이들이 사람이 만든 문제를 털어놓으며, 그 위로와 해결을 사람들로부터 얻어가려고 애를 썼다. 그 시도들의 끝에 과연 원하던 답을 얻었을까? 혹은 더 깊은 고민들을 가져갔을까 궁금해진다.


#이튿날 점심 즈음


 코발트 빛 바다. 인간이 감히 극복하기 어려울 스케일의 자연은 경외와 더불어 치유를 준다. 거대한 산, 큰 나무, 그리고 끝없는 수평선으로부터 이 앞의 파도까지 연결된 바다. 이 바다는 자체로 생명의 어머니면서, 지구의 주인일 것이다. 바다를 보며 느끼는 해방감과 청량함은 귀향에 대한 근본적인 본능일지도 모른다. 바다는 나의 고민이 태동한 지역을 물리적으로 단절하면서 고민들을 더 명료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유구한 삶의 연속성 위에서 지금의 고민은 현무암에 부딪혀 사그라드는 개개별의 파도와 같을 것이다.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을만큼 이 파도는 순간에서 수없이 쳐대며, 바다소리라는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나의 고민은 세상에서 하잘 것 없을지라도 이 모든 고민의 집합체는 위대하거나 아름다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결국 소소할지라도 파도가 그러하듯 최선을 다하여 부딪혀야 할 것이다.



#이튿날 오후


 한가로운 어촌의 항구 근처 카페. 성수기에는 붐비는 곳일테지만, 한 두 명 정도 밖에 없는 공간은 고요함을 간직하고, 오래된 발라드가 흐를 뿐이다. 바닷가를 향해 난 창을 두고, 일상과 관조가 교차한다. 어부들은 그들의 생업을 위해 지저분한 옷과 신발을 이끌고 용을 쓴다. 이 모습은 창문 틀 속에 박제되어, 구경할만한 풍경이 된다. 창을 통해 상영되는 광경은 평화롭다. 분주한 파도는 거시적으로 잔잔한 물결이 되고, 어부의 고됨은 오며 가는 관광객, 우물가에서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 낮게 날아 지나치는 갈메기, 창문에 붙어 빌어대는 파리와 어우러져 평화로운 어촌 풍경이 되어 스마트폰에 박제된다. 거친 군복 무늬 옷에 깊은 주름이 박힌 어부의 인상과 말끔한 옷을 입고 푹신한 의자에 기댄 카페 안 여행객은 불과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다. 그리고 그 사이의 창문. 일상과 비일상. 그 사이의 시한부 경계.


 일상은 비일상을 필요로 한다. 영원히 반복되는 일상은 그 사이 박힌 비일상으로 인해 의미를 완성한다. 비일상은 일상의 격조를 높일 재료를 제공한다. 비일상을 통해 인간은 더 확장되고, 일상을 통해 공고화된다. 노동과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서로를 요하듯, 일상과 비일상은 서로를 탐닉한다. 여행은 비일상의 극치이다. 일상이 벌어지는 공간적 배경마저도 버리고, 새로움 속에 던져 넣는다. 여행이 바꾸어 놓은 시퀀스에서 인간은 자유롭다. 평소에는 고민했을 예산도 흔쾌히 지출하고, 특별한 기행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증폭된 감정을 즐기기도 한다. 그 안에서 우린 일상을 살아내며 되새길 추억을 확보한다. 그리고 일상을 버티며 모아 비일상을 끌어온다. 이 순환 속에서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는 것이 삶일 것이다.



#이튿날 저녁 직전


 한 해의 시작에 일곱 돌고래를 마주했던 해변, 다시 조우한 그 곳은 그때보다 사람이 없고 덜 추웠으며, 태양이 더 높은 곳에서 내리쬐고 있었다. 바다를 향해 살짝 솟아나온 검은 현무암 위에 서서 포근히 둘러싼 바다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돌고래 가족이 지나치던 먼 바다는 고요했다. 어쩌면 또 한 번의 요행을 바라는 나를 먼 혹은 깊은 곳에서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곳에서 다시 그들을 맞이한다던가 혹은 뜬금없이 좋은 소식이 전해진다던가 하는 드라마 같은 일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평화롭고 고요한 바다에 울리는 파도 소리 그 자체로 되었다. 인과의 원리는 정직하여 꼭 돌고래가 아니더라도 나의 마음과 준비가 닿는다면 좋은 소식은 얼마든지 만들어질 것이다. 돌고래는 그냥 나의 의지와 희망을 더 밝히는 재미있는 사건일 뿐이다.


 건조하게 이 바다까지 오는 여정을 요약하면 왕복 3시간을 운전하여 20분 남짓 빈 바다를 보고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오는 게 다였다. 그렇지만 그 모든 과정은 즐거운 여행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인간이 낼 수 없는 속도를 즐겼고, 중산간의 고즈넉한 숲길을 통과할 때는 창을 열어 상쾌한 나무향과 공기를 맛보았다. 구불구불한 길은 코너링 연습에 제격이었고, 뜬금없이 펼쳐진 백록담을 향한 관목의 숲은 찰나에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바다. 평화로운 바다. 파도가 성실히 부서지는 바다와, 그 파도를 수 백 년간 받아낸 검은 현무암. 그 안에 새겨진 마그마의 흔적들. 그 위에 서서 태양을 받고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의 사진을 찍으며 이 순간을 각인하는 나. 이 모든 여정을 건조하게 요약하기엔 풍부한 행복이었다. 일곱 돌고래를 다시 보고 싶어 떠난 무리수 여정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이 행복은 일곱 돌고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이 마음으로 되었다. 요행이나 행운은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님을 되새긴 것으로 내 안의 돌고래에게 감사하기 충분하다. 제주도의 돌고래 가족에겐 안전과 행복을 응원할 뿐이다. 그들이 성실하게 삶에의 의지를 수행하듯, 성실하게 더 나아짐을 향해 걸어가자. 그리고 그 소결에는 걸맞는 잔잔한 행복이 있을 것이다. 이 무모한 여정의 끝에는 마감 직전 맛집에서 홀로 먹는 제주 당근 가득한 김밥과 같이 영양 듬뿍하고 맛있는 저녁이 있었던 것처럼.


#이튿날 밤


 어느덧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이 도래했다. 나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든 상관없이 태양은 가야 할 길을 담담히 갔고, 약속된 밤은 필연적으로 덮여왔다. 다시 돌아온 숙소의 온기 넘치는 조명은 마지막 밤의 감성을 만끽하기에 적절한 색감이다. 뒤늦게 도착한 새로운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어제의 사람들이 채우던 자리를 새로운 사람들이 채우고, 숙소는 익숙하게 그들을 받아들인다. 이들 중에선 또 새로운 관계를 맺기도 할 것이고 대부분이 그러하듯 한 순간의 추억을 새기고 서로 잊혀질 것이다. 관계는 강렬하면서 또 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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