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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un 08. 2022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추천 TOP 11

是枝裕和|Hirokazu Kore-eda

"우리(일본인)가 4개월 전에 경험한 것(3.11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어느 곳에 사는지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우리가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잊은 척하며 내달려온 문명을 근본부터 되묻는 사건이었다.

그 풍경을 앞에 두고, '미래'나 '안전'보다도 '경제'를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경멸스럽다.


사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댐과 도로가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그것이 쓸데없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돈이 움직인다는 식의 구도가, 원전을 둘러싸고도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눈을 흐리는 큰 원인 중 하나는,

신문과 방송이라는 미디어가 벌써 망각 쪽으로 방향키를 돌렸다는 사실이다.

그들 대부분도 역시 기득권층의 이익 안에서 눈이 흐려져버린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문화로 성숙된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동물이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정치와 언론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가장 치졸한 폭력이다." 


-고레에다 감독의 에세이<걷는 듯 천천히>에서 


소설을 쓰고 싶었던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뜻밖에도 청년은 ‘이미지‘에 매료되고 ’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필름에 담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이들의 이야기를 ’서사‘가 있는 영화로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33세의 늦은 나이에 영화계에 투신하게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는 데뷔작부터 베니스 영화제 촬영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경력을 출발했으며 칸 영화제 최고상인 ’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나 나루세 미키오의 후예로 불리지만, 본인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그는 형식주의적 시각 스타일, 배우 경력이 없는 일반인 연기자에게서 매력적인 연기를 뽑아내는 솜씨, 풍경을 담담하게 잡아내는 영상미가 돋보인다. 허우샤오셴의 정적인 사색에 오즈의 부드러운 감성, 그리고 본인만의 냉철하지만 따뜻한 온기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 그러면서도 일본인들이 마주하기 껄끄러워하는 자국의 사회적 문제를 과감하게 다룬다. <괴물> 개봉을 앞두고 그의 대표작을 한번 정리해봤다.






#11 : 세 번째 살인 (三度目の殺人·2017)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 드라마로 정평이 나있지만, 언제나 부조리를 파고드는 냉철한 현실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30년 전 첫 번째 살인, 현재 혐의가 기소된 두 번째 살인,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세 번째 살인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개인의 정의와 법 집행의 한계 사이에서 위치시킨다. 그 모순의 곡률(곡선 또는 곡면이 휜 정도를 표시하는 변화율)에서 진실에 다가가려 할수록 진실에 멀어지는 역설이 성립한다.




#10 : 바닷마을 다이어리 (海街diary·2015)

일본에서 만든 일본 만화 원작 실사 영화 중에서는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이복자매들이 하나의 ‘가족’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자매의 일원인 된 ‘스즈‘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이겨내고 아버지가 남긴 업보를 받아들이는 감정의 물줄기를 특유의 섬세함으로 포착한다. 사치와 스즈의 데생은 선명하지만 요시노와 치카는 옅은 수채화처럼 인물 간의 불균형마저 잊게 만들 만큼 더없이 아름다운 화면에 속 깊은 자매들의 마음 씀씀이가 치유의 손길로 다가온다.




#9 : 환상의 빛 (幻の光·1995)

베니스 영화제 황금 오젤라(촬영)상

데뷔작은 모든 작가를 읽는 나침반이 된다. 수년간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일해 온 경험 덕분에 이미 카메라 뒤에 시각적 단순함과 감정적 복잡성을 객관적으로 담아낸다. 할머니의 실종도, 남편의 자살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주인공의 슬픔도 시종일관 덤덤하게 지켜본다.


상실, 그 이후의 삶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그녀의 헛된 노력에 해방구는 없다. 고독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한 인간이 적응해 나가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8 : 태풍이 지나가고 (海よりもまだ深く·2016)

<걸어도 걸어도>의 정신적 후속편, 일견 평온해 보이는 가족 간의 대화 사이로 그들 각자가 지닌 아픔과 상실의 감정이 드러난다. 그 분열 속에서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실패한 주인공을 통해 고레에다는 마법 같은 해피엔딩을 선물하지 않는다. 지금 당신은 당신이 꿈꾸던 어른이 되었냐고 묻는 동시에 설령 실패했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현실적인 위로로 우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7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奇跡·2011)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형제가 예전처럼 모여 살기를 바라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실제 형제인 고키와 마에다 오시로를 캐스팅하여 진솔함을 더한다. 그렇게 평화롭고 정적인 화면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담는 기적을 일으킨다.


카메라는 철저하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있다. 그 다다미 숏은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게 한다. 간혹 현실의 인서트가 끼어들어 사건을 중단시킨다. 그 빈칸을 채워나가는 ‘내면의 흐름’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6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2013)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아이를 출산한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의 의미와 부모가 된다는 것에 회의하게 이끈다. <어느 가족>과 같이 이러한 문제들을 발생시킨 사회적 구조를 탐구할 때 번뜩인다. 일본의 의료 시스템, 계급구조 모두 고레에다의 렌즈에 의해 낱낱이 검토된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제일이라 믿는 료타의 보수적인 아버지상보다 아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생물학적 아버지인 유다이와는 대조적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고 뼈아프게 성찰하게 한다.




#5 : 괴물 (怪物·2023)

칸 영화제 극본상

학교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 아이들과 투명한 관점과 어른들의 엇갈린 시선을 다룬 가족드라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뭉쳐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다.


유발 하라리가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협동’이라고 했다. 생전부지의 사이에도 혈연, 종교나 이념, 지연, 학연 등으로 인해 서로 협조하고 조직을 이룬다. 〈괴물〉은 학교에서 벌어진 아이들 간의 갈등이 어떻게 은폐되고 음지화되는지를 관찰한다. 어른들의 잣대, 학교 측의 규칙, 일본 사회의 제도 속에서 외면받은 약자들은 ‘괴물’이라고 엉뚱하게 오해를 받는다. 어른들이 별 생각 없이 뱉은 말에 소수자(혹은 약자)들은 조금 다르다고 해서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당한다. 어른, 학교뿐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일어 초등학생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는 일반적인 ‘보통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친다. 사회적 압박에 아이들은 자학하고 위악에 동참한다. 즉 어른, 학교로 대표되는 ‘일본 사회’라는 거대한 패거리에서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다수의 논리에 순응하고 개인의 인격은 언제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논리로 합리화되는 것을 빗대고 있다.




#4 : 어느 가족 (万引き家族·2018)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영화의 집대성, 영화가 제시하는 ‘가족’의 개념은 단순히 혈연이나 유전적 구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각본은 그 대신에 가족의 사회적 개념, 그 의미, 그것의 영향, 그것의 감정적 파장과 관련이 있으며 유사가족으로의 공유된 추억과 유대감으로 정의 내린다.


감독은 부모의 연금을 부정하게 수급받던 가족의 체포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복지 사각지대, 육아 및 부양의 방치, 호혜를 가장한 일자리 나눔, 국가가 부담해야 할 사회안전망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형태를 가족애의 따스한 빛과 복지의 스산한 그림자가 선명하게 함께 담았다.




#3 : 아무도 모른다 (誰も知らない·2004)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다시 돌아오겠다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간다. 12살의 나이로 엄마의 가출로 졸지에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야기라 유야의 부양의무는 눈물겹다.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났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의 전모는 대략 이렇다. 아버지가 다 달랐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법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아이들은, 이웃의 눈에도 띄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다. 막내딸이 장남의 친구들이 때려서 사망하고, 뉴스를 본 엄마가 경찰서에 찾아오면서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관계로 영화는 상당 부분 순화되었다.


<어느 가족>이 가족제도의 의미와 취약한 사회복지제도에 원숙하고도 섬세하게 접근한 반면에 <아무도 모른다>는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을 계속 유지한다. 떠나간 엄마를 가해자로, 남겨진 아이들을 피해자로 굳이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의 방치로 말미암아 아이들의 삶이 파괴되어 가는 초상화를 풋풋한 온기로 채색해나간다.




#2 : 원더풀 라이프 (ワンダフルライフ·1998)

고레에다 감독의 두 번째 영화는 그의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표이자 영화에 대한 생각을 고백한다. <원더풀 라이프>는 천국에 가기 전에 림보에서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선택해 주면 림보의 직원들이 그 기억을 단편영화로 재연해 준다. 스크린에 우리 삶의 기억과 감정을 상기시키는 것이 영화 제작에 종사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향수에 대한 개념을 임상학적으로 해체하고 동시에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 무형의 기억을 논평하고 예술과의 동질성을 발견한다.


그 전제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영화 자체는 사실주의와 실용주의를 풍긴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대부분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연기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를 따라다니면서 취재하고 기록한다. 진짜로 존재하는 이웃의 모습 같았다.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지난 인생으로 모험을 떠나도록 하는 놀라우면서도 지적인 작품이다.




#1 :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 歩いても·2008)

고레에다 감독은 결과와 원인을 뒤바꾸는 식으로 신(Scene)과 신 사이에 질의를 생성하도록 연출한다. 먼저 요리를 하는 장면을 보여줘서,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데, 나중에서야 ‘준페이의 기일’이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인물관계나 사연의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하면서 그에 대한 대답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깨닫도록 해준다.


<원더풀 라이프>, <디스턴스>, <아무도 모른다>에서 연기 경험이 없는 일반인을 써서 영화가 아닌 진짜 우리 주변의 일상 같았다. 그렇기에 한 가족의 사연에서 일본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었다. 반면에 <걸어도 걸어도>는 직업 배우들이 철저하게 시나리오대로 대사하도록 연출했다. 그동안 일반 연기자들을 방임함으로써 얻는 자유로움을 버리고 인공적인 축조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객관적인 정보나 유쾌한 어조가 결여되어 있다.


냉담한 그 공란에 정답을 기술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들의 추측이다. 당연히 자신이 겪었던 가족과의 트러블부터 떠올리기 때문에 1차원적인 답변을 회피한다. 보다 보편적이고 감정적인 여운을 스스로의 내면에서 발견하게 되는 실로 경이로운 영화적 체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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