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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16.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1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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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박 몇 개 떨어진 것 가지고 왜 이렇게 난리야.”


  경찰서에서 민형을 앞에 앉혀 놓고 박 형사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사실 박 형사는 민형을 왜 잡아 와야 하는지도 납득할 수 없었다. 뭘 물어봐서 조서에 뭘 써야 할지도 몰랐다. 서에 처음 발령받아 온 날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박 형사는 일단 민형의 이름과 나이만 적어 놓고 다시 한숨을 쉬었다. 민형이 조물주도 아니고 그 이상한 우박을 내리게 했을 리 없었다. 괜히 생사람 잡는 것 같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 고치지 말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엄밀히 따지자면 우박을 가해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든 사람이 보이지 않는 흉기였다. 그 흉기 때문에 벌써 피해자가 나타났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어제 블랙 헤일을 맞은 최초의 사망자가 하필이면 이 동네에서 나왔다. 다섯 살짜리 아이였다. 지름 칠 센티미터의 우박이 정수리를 강타했다. 가속도가 붙어 떨어진 블랙 헤일은 아이의 목숨을 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사망자만 나오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연재해 정도로 분류되어도 될 일인데 어제 박 형사가 우연히 민형을 마주쳤다는 것은 민형에게는 불운이었다. 가장 먼저 블랙 헤일이 떨어진 장소에 있던 정체불명의 남자. 수상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잡아야 하는 시대라면 공포를 가해자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상당히 비과학적이었다.


  박 형사는 국립과학수사대에 블랙 헤일의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20년 차 베테랑 형사였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20년 전 풋내기 형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 형사는 직관과 인내로 하는 직업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범죄는 자신의 능력보다도 훨씬 빨리 진화해 직관으로도 알 수 없고, 인내로도 해결할 수 없었다. 이번에 걸린 블랙 헤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박만 맞아도 무덤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비 무덤, 아니 우박 무덤이라고 해야 하나. 꽃이 피어야 할 춘삼월에 우박이라니. 겨울이 지나면 담배를 줄이기로 결심했는데도 벌써 열두 번째의 담배가 고파졌다.


  박 형사의 한숨에 민형이 다급히 말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형사님. 제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그 이상한 우박을 내리게 할 수 있겠어요? 저도 그런 게 왜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무서워 죽을 지경이에요. 저 좀 빨리 내보내 주세요.”
   “알아, 알아. 형식적으로 몇 가지 조사만 하고 끝낼 거야.”

  “정말이죠?”
   “그렇다니까. 형사 입으로 거짓말하겠어?”

  “형사님만 믿을게요.”

  “그런데 말이야…….”

  “네?”


  박 형사는 결국 참지 못하고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 한 개를 입에 물었다.


  “당신 아무개라며? 사는 굴은 어디냐?”

  “네?”

  “굴 말이야, 굴. 돌아가려고 했던 곳 말이야.”

  “그런 곳 없는데요.”

  “없는 말 지어내면 위증이야. 가중 처벌된다고.”

  “…….”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비밀이 없어. SNS인지 뭔지 거기에 당신 사진이 뜬 뒤로 다 까발려졌어, 당신이 아무개라는 거. 뉴스에도 다 나갔고.”


  민형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자신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유우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김밥 가게의 종업원과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 유우를 보고 첫눈에 반한 민형이 참치 김밥, 쫄면, 돈가스, 제육볶음, 치즈 김밥, 오므라이스, 떡라면, 뚝배기 불고기, 고추 김밥, 라볶이, 우동…… 이런 식으로 매일 메뉴를 바꿔 가면서 그 가게에서 매일 끼니를 해결했던 게 인연이 되었다.


  민형이 주문할 때마다 유우는 민형의 눈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먼저 말하지 않았는데도 단무지나 김치를 더 가져다주기도 했다. 민형이 유우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먹느라 밥을 빨리 먹고 있으면 물을 떠 주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말해 주기도 했다. 반찬과 물은 모두 셀프인 가게였다. 다른 음식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매일 어떤 일을 하는지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다.


  유우의 행동을 보고 용기를 낸 민형은 어느 날 주문서에 오징어덮밥을 체크하면서 그 아래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것을 본 유우의 눈이 약간 커졌다. 그다음에는 연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유우는 민형에게 전화했다. 그 뒤로 민형은 김밥 가게 대신 다른 가게에서 유우와 저녁을 먹었다. 쌀국수, 햄버거, 순댓국, 피자처럼 김밥 가게에서 팔지 않는 음식을 하나씩만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루에 두 끼를 같이 먹고 싶었다. 월급이 떨어지면 편의점에 가서 삼각 김밥과 컵라면을 먹었다. 같이 먹는 삼각 김밥은 김밥 가게에서 혼자 먹은 것보다 맛있었다.


  졸업하자마자 몇 년 동안은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지만 안 따라가는 머리로 하는 공부는 끈덕지게 이어지지 않아 돈은 없어도 시간은 많았다. 그때 민형의 직업은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고시원 총무부터 시작해서 편의점,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호프까지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모이는 것은 돈 대신 빚뿐이었다. 


  인생에서 접점이 없으니 그들의 관계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혼인 신고도 하지 않았다. 신혼여행도 가지 않았다. 아니, 못 갔다. 두 사람이 부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유우의 어머니도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유우의 존재는 영원히, 아무도 몰라야 했다. 특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 집 없어요.”

  “또, 또. 조사하면 다 나온다니까.”

  “조사해 보세요.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민형은 무조건 버티기로 했다. 그 의지를 온몸으로 보여 주려는 듯 몸을 살짝 뒤로 뺐다. 가슴을 앞으로 조금 내밀고 턱은 안쪽으로 당겼다. 입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이 박 형사에게는 무언가를 숨기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박 형사는 팔짱을 낀 채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그리고 형사님, 생각해 보세요. 제가 아무개라면 굴 안에서만 있느라 햇빛을 못 보니 피부가 새하얗지 않겠어요? 그런데 제 얼굴 보세요. 바다에서 죽도록 일하느라 새카맣게 탔다구요. 저 바닷사람입니다. 힘들게 배까지 타고 왔더니만…….”


  민형의 말에 박 형사가 민형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민형의 말대로 얼굴과 목, 팔 등 드러난 부분은 모두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박 형사는 수염이 까슬하게 돋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뭐,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한데 햇볕에 잘 안 타는 사람도 있으니까. 원래 피부가 까만 사람도 있고. 피부색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지.”

  “아, 진짜, 아니라니까요! 저 배에서 일했다는 증거도 있어요. 그거 가져오면 되죠?”

  “좋아, 좋아. 더 조사해 보면 되지. 뭐,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가야 하는데…….”

  “돌아갈 집도 없다면서 뭐가 그렇게 급해?”


   박 형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꼴이었다. 민형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야 했다. 머리를 쓴 지 오래되기는 했지만 빠져나갈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아무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아무개가 맞는다는 증거를 흘리지 말아야 했다. 자신은 여기에서 얼마나 있든 상관없었다. 원양 어선을 탔다는 것도 금방 밝혀질 터였다. 다만 자신을 오래 조사하다가 혹시 유우에 대해 알려질까 봐 초조해졌다.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떨렸다. 초조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두 손을 각각 양쪽 무릎 위에 얌전히 놓았다. 


  그때 박 형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박 형사는 민형이 앞에 있다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전화를 바로 받았다.


  “어, 김 형사. 무슨 일이야? 뭐? 공문? 그런 거 안 내려왔는데? 제길, 같은 서울인데 여기만 무슨 변두리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느려?”
   공문이라는 말에 민형이 귀를 쫑긋 세웠다. 

  “……뭐? 그게 정말이야? 아니,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나라에서까지 난리야?”


  정부라는 말에 민형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굴 안에서는 가장 절실했지만, 경찰서에서 듣는 나라라는 단어는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다. 박 형사는 민형을 한 번 흘끗 보더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박 형사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져 있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박 형사가 아까보다도 훨씬 더 낮은 목소리로 민형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에서 쉽게 나가기는 힘들겠는데?”


  민형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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