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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16.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11)

9 (3)


9 (3)






  어두워진 사이에 굴이 답답하다면서 잠깐 밖에 다녀온 동민은 블랙 헤일을 주워 왔다. 얼핏 보면 다이아몬드처럼 보일 정도로 모서리가 날카로웠다. 누군가가 잘 깎아 놓은 것 같았다. 유우 2세가 동민의 손에 있는 블랙 헤일을 잡기 위해 깡충깡충 뛰었다. 점프 실력이 뛰어났다. 접힌 다리를 엉덩이 쪽으로 붙이는 법도 알았다. 바닥에 용수철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것 같았다. 날카로운 우박은 아이의 보드라운 손에 금세 흠집을 낼 것이다. 왈칵 겁이 난 유우가 유우 2세를 품에 안았다. 유우 2세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내 거야!”

  “안 돼. 저건 위험한 거야.”


  굴 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유우는 얼른 아이의 고개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 뒤 등을 토닥였다. 그러면서 어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민형을 생각했다. ‘최초의 블랙 헤일 현장에서 발견된 아무개 이민형 씨 체포’라는 자막도 생각났다. 아무개는 자신인데 왜 그를 아무개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민형도 아무개 생활을 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 아무개는 자신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아무개라는 게 어떻게 밝혀졌는지 알 수 없었다. 블랙 헤일과의 연관성도 몰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체포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당장이라도 굴을 뛰쳐나가 민형을 찾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진짜 아무개라는 것이 들통날 것이다. 지금 사는 곳에 대해 사실대로 말할 수 없으니. 이곳에서 꼼짝없이 민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유우는 억지로 마음을 달랬다. 민형은 죄를 지은 게 없을 테니 금방 풀려날 것이다. 남 노인은 기다림을 기다리라고 했지만 수양버들처럼 느긋해지지 않고 독가시처럼 날카로워졌다.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런 것 같았다.


  “……이게 하늘에서 떨어졌다니 진짜 이상하네요. 이건 작은 편이고, 핸드볼 공만 한 크기의 우박도 떨어졌다는데요. 맞으면 바로 저승길 갈 거예요.”

  “차라리 여기 있는 게 안전하려나?”


  동민의 말에 남 노인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남 노인의 말마따나 여기에 있으면 우박을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굴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헬멧과도 같았으니까. 지금 그 헬멧이 둥지라도 되는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깃든 셈이었다.


  “사람들이 우박 때문에 대피소를 찾다가 여기까지 오지는 않겠지요? 학교도 있고 대피소야 뭐 여기저기 많으니까…….”

  “아직 그 정도까지 상황이 심각한 건 아니잖아. 사서 걱정할 필요가 없지.”


  선희의 말에 남 노인이 선희를 달래는 말이 끝나자마자 블랙 헤일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하늘에서 내려 모습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만큼은 선명했다. 툭. 탁. 툭. 탁. 잠결에 들으면 대포 소리처럼 들릴 것 같았다. 정오를 알리는 대포인 오포처럼 자정을 알리는 대포 같았다.


  블랙 헤일이 내리기 시작하자 공기가 축축해졌다. 굴 안도 순식간에 물기로 가득 찼다. 젖은 빨래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보통 비나 우박이 오면 공기가 상쾌할 것 같은데 블랙 헤일은 달랐다. 미세먼지도 함께 많아지는지 코와 목이 매캐하고 답답했다. 선희는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마른기침을 했다. 말끔했던 볼과 턱에도 뾰루지들이 몇 개씩 나 있었다. 두피가 간지러운지 가끔 머리를 긁기도 했다.


  “이렇게 우박이 계속 오면 기성이는 어떻게 오려남. 헬멧은 쓰고 올 터이니 안전하긴 하겠지만…….”


  남 노인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기성은 남 노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자 배급자였다. 사십 대 중반인 그는 중국집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어 오토바이 헬멧이 있었다. 남 노인의 말대로 헬멧을 쓰면 우박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세먼지는 아쉬운 대로 마스크라도 썼는데 이건 뭐, 헬멧을 매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다 헬멧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헬멧 회사만 대박 나겠네요.”


  동민은 헬멧 회사가 부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선견지명이 있었다면 헬멧 사업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헬멧을 쓴 조강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울리지 않았다. 헬멧을 쓰면 애써 다듬은 머리가 망가진다고 짜증만 낼 게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조강다웠다. 짜증보다 투정에 가까운 그 모습이 어쩐지 그립기도 해서 동민은 픽, 하고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나 왔어.”


  그때, 앳된 얼굴의 여자아이가 굴 안에 들어왔다. 여자아이는 머리에 플라스틱 대야를 얹은 채 한 손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위험한데 왜 밖에 나온 거야? 뉴스 못 봤어? 무서운 우박 내리는 거 안 보여? 이런 날에는 집에 가만히 있어야지.”
   “내일부터 나 수학여행 가.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


  여자아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플라스틱 대야를 벗은 뒤 선희에게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선희의 동생 유희였다. 귀밑 아래로 가지런히 자른 단발머리가 플라스틱 대야 때문에 헝클어져 있었다. 웃는 표정의 선희와 달리 항상 화난 것처럼 보였다.


  남 노인은 유희를 흘겨보았다. 유희가 반 학생들에게 아무개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그 단어가 SNS에 퍼진 뒤로 남 노인은 유희를 좋게 보지 않았다. 다행히 굴의 위치까지 알릴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2학년이면 사리 분별 다 하는 나이인데 친언니를 궁지에 몰아넣을 뻔했다며 남 노인은 유희를 한참 나무랐었다.


  남 노인의 시선을 받은 유희도 지지 않고 남 노인을 쏘아보았다. 선희가 얼른 다른 말을 꺼냈다.

  “고마워, 잘 먹을게. 밖에 우박은 많이 오니?”

  “무슨 우박이 아니라 벽돌 떨어지는 수준이야. 무서워 죽겠어. 한 손으로 대야 붙잡고 왔는데 손에 떨어지는 바람에 긁혔다구. 목장갑이라도 낄걸.”

  유희가 손등을 내밀었다. 손등에는 긁힌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선희가 유희의 손등을 쓸어 주었다. 유희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양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저녁 안 먹었으면 저녁 먹고 가.”

  “여기서 먹는 건 오지게 맛없어요. 통조림 따위, 안 먹을래요. 집에 가서 계란 프라이 해서 먹을 거예요.”

  동민의 말에 유희가 톡 쏘았다가 금세 입을 다물었다. 동민의 손에 들려 있던 참치 통조림을 보았던 것이다.

  “다음엔 찬밥이랑 데운 햇반도 가지고 올게요. 마요네즈와 참치 통조림에 비벼서 김이랑 먹으면 참치 김밥이 돼요.”

  그 말만 남기고 유희는 다시 플라스틱 대야를 머리에 썼다.


  “우박이라도 그친 뒤에 가지 그러니?”
   유우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아직 수학여행 짐 하나도 안 싸서 가야 해요.”
   “입고 갈 옷은 다 정했어?”

  “몰라. 옷이 있어야 싸든가 말든가 하지. 옛날에 언니가 동대문에서 일할 때는 옷 걱정 안 해도 되어서 좋았는데…… 안 되면 그냥 교복 입고 갈 거야.”


  유희가 몸을 돌렸다. 유우 2세가 아장아장 걸어가 유희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유희의 손등에 난 상처를 만졌다. 유희는 유우 2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곧 볼을 어루만졌다. 유우 2세가 사르르 웃었다. 유희도 입가에 경련이 일어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엉니.”

  “그래, 그래. 너 되게 귀엽다. 그런데 너 이름이 뭐였지?”

  “이름 아직 없어. 아빠 오면 지을 거야.”

  “아직도요? 불쌍하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유우 2세. 내가 낳았으니까 유우 2세야.”

  “유우 2세…… 그럼 일단 줄여서 유이라고 부를게요.”

  “유이 좋다. 부르기도 쉽고.”

  남 노인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유이야, 안녕. 또 놀러 올게.”


  유희가 손을 흔들자 유우 2세도 손을 마주 흔들었다. 그 뒤에 머리를 흔들더니 급기야 온몸을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흔들기 시작했다. 오뚜기 같았다. 굴에서 태어난 뒤 한 번도 자르지 않은 긴 머리를 쫑쫑 따 양 갈래가 된 머리도 휘날렸다. 유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음에 나가면 문구점 가위라도 사서 유우 2세의 머리를 잘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그 생각을 지웠다. 굴 안에는 날카로운 도구를 두고 싶지 않았다. 괜히 딴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동민은 배가 고팠는지 유희가 굴을 나서기도 전에 참치 통조림을 땄다. 딱, 하는 경쾌한 소리를 배경음으로 한 채 유희는 양손으로 머리에 쓴 대야를 붙들었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밖은 더 어두워져 있었다. 블랙 헤일이 내려서 그런지 하늘이 평소보다 더 어두워 보였다. 으스스했다. 손전등이라도 켜면 좋겠지만 굴이 발각될 위험이 있어 큰길로 나갈 때까지는 어둠을 헤치고 가야 했다.


  선희도 다른 때 같으면 유희를 조금이라도 바래다주었겠지만 블랙 헤일을 막을 수 있는 도구가 아무것도 없어 지금은 유희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했다. 선희의 눈과 기침이 유희를 대신 배웅했다.


  유희는 들어올 때 씩씩하게 왔던 것과 달리 잠시 머뭇거렸다. 아까보다 더 굵은 우박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진짜 벽돌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툭. 툭. 툭. 툭. 유희도 걸음을 툭 내디뎠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사방을 블랙 헤일이 에워싸는 것 같았다.


  다섯 걸음쯤 걸었을 때, 야구공만 한 우박이 유희의 어깨를 때렸다.


  “으악!”

  유희가 소리를 질렀다.

  “꺄악!”

  굴 안에서 선희도 소리를 질렀다.

  “굴 안으로 들어와!”


  남 노인이 외쳤다. 우박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유희는 벌벌 떨면서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곧 축구공만 한 크기의 우박이 유희의 머리에 정면으로 떨어졌다. 콰직. 플라스틱 대야에 금이 가면서 대야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유희가 옆으로 쓰러졌다. 선희가 유희의 이름을 소리치며 굴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동민이 먹던 참치 캔을 던지고 선희의 팔을 잡았다. 유우도 선희의 다른 쪽 팔을 잡았다. 지금 맨몸으로 나갔다가 머리에 우박을 맞으면 즉사할 것이다. 블랙 헤일이 그치기를 기다려야 했다. 동민이 던진 참치 캔을 유우 2세가 잡으려고 했다. 유우가 재빨리 참치 캔을 집었다. 유우 2세가 울기 시작했다.


  블랙 헤일이 엎드려 있는 유희의 등과 허벅지를 계속 때렸다. 블랙 헤일을 맞을 때마다 유희의 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한 번씩 튀어 올랐다가 내려갔다. 온몸에 피멍이 들 것 같았다. 선희는 양쪽 손으로 입을 막았다. 유희라는 이름이 손바닥 안에 갇힌 채 맴돌았다. 선희의 입에서 발작 같은 기침이 터져 나왔다. 기침이 손바닥 사이로 새어 나왔다. 기침 소리가 굴 안을 크게 때렸다.


  그때, 선희의 팔을 잡고 있던 동민이 팔을 놓고 튀어 나갔다.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동민은 부적처럼 손에 쥐고 있던 블랙 헤일을 번쩍 든 채 뛰어나갔다. 머리 위에는 책 한 권을 받쳤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의 책이었다. 새처럼 가벼워 보였다. 유우는 입을 벌린 채 동민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손에 참치 캔을 들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사촌!”


  유우 2세가 바람이 빠진 듯한 발음으로 동민을 불렀다. 삼촌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사촌이 되어 버린 동민이 유희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동민의 책 위로 블랙 헤일이 우수수 떨어졌다. 동민의 손등에도 몇 개는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동민이 엎어져 있던 유희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통조림만 먹고 사는데도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했다.


  유희를 안은 동민이 고개를 최대한 숙인 채 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모습이 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장면 같아 선희는 손뼉을 쳤다. 어느새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유우 2세도 선희를 따라서 손뼉을 쳤다. 그제야 유우도 손에 든 참치 캔을 내려놓았다.


  유우는 벌어진 입을 다물고 동민에게서 유희를 받았다. 유희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동민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뒤를 돌아 굴 밖을 보았다. 반으로 쪼개진 플라스틱 바가지와 책이 무방비 상태로 블랙 헤일을 맞고 있었다. 남 노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 한마디 없어도, 아이를 칭찬하면서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한동안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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