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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29.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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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헤일이 내리기 시작한 지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벌써 블랙 헤일 때문에 이천 명 이상이 피해를 보았다. 블랙 헤일에 맞은 사람들은 새롭게 생긴 재난 기록소인 인터넷 홈페이지 ‘블랙 헤일 등록소’에 피해 상황을 적어 내야 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회색 바탕화면에 블랙 헤일 그림이 쏟아져 내리는 메인 화면이 나왔다. 붉은 글씨로 적힌 매뉴얼이 맨 위 중앙에 있었다. 그 아래 중앙에 빈칸처럼 되어 있는 네모 박스가 있었다. 블랙 헤일을 맞은 사람은 빈칸에 맞은 날짜, 시간, 장소, 부위, 통증의 정도까지 세세하게 기록해야 했다. 하나라도 빠지면 저장 버튼이 눌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른쪽 아래에는 ‘보기’ 버튼이 있었다. 그 버튼을 눌러 들어가면 그동안의 기록들이 나왔다. 피해 사례가 벌써 이천 건이 넘었다.      


  4월 1일, 오전 10시,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 오른쪽 팔, 권투 선수의 주먹에 맞은 정도의 통증. 

    

  4월 7일, 오후 4시,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왼쪽 머리, 조금만 더 정수리 쪽 가까이에 맞았으면 즉사했을 것. 

 

  4월 19일, 밤 9시, 제주도 비자림, 왼쪽 어깨, 나무도 블랙 헤일을 가려 주지 못해 꽤 아팠음.


  (…)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오는 기록들은 단 한 가지만 말해 주고 있었다. 블랙 헤일이 떨어지는 시간도, 장소도, 위치도 대중없다는 것. 글자들 사이사이로 블랙 헤일 그림들이 쏟아져 마치 기록들을 때리는 것 같았다. 

  만약 블랙 헤일에 맞았다는 사실을 적지 않았다가 발각되면 벌금을 오백만 원이나 내야 했다. 그 돈을 낼 바에야 솔직하게 피해 사실을 밝히고 아낀 돈으로 헬멧을 사는 게 나을 것이다. 피해 사례를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기록을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홈페이지는 수시로 먹통이 되었다.


  그곳에 민형의 사례는 등록되지 않았다. 민형 때문에 ‘블랙 헤일 등록소’에는 영원한 공백이 발생할 것이다. 민형은 없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배급자인 유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개의 거주지로 가는 길에 맞았기 때문에 그 어디에서도 맞았다는 말을 못 할 것이다. 아무개는 그곳에서도 구멍이 되었다.


  블랙 헤일에 맞아 죽은 아이의 뉴스가 나오자마자 헬멧도 불티나게 팔렸다. 시중에 있는 헬멧들은 이미 동이 나서 선주문만 몇만 건씩 들어가고 있었다. 정부에서도 헬멧들을 대량으로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그 헬멧들을 주요 요직에 있는 이들에게 배급할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헬멧 살 돈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배급한다’라고 발표되었다. 정말로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헬멧이 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기초생활수급도 기초적인 생활을 충분히 하는 이들에게 잘 돌아갔으니 말이다. 


  아기들은 헬멧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유아차의 천이 더 질겨지고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덮개가 천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가 답답해서 유아차 안에서 울 때마다 아이 엄마는 플라스틱 덮개를 약간만 열면서 불안에 떨었다. 점차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이가 있는 집은 그대로 굴이 될 판이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유행했던 생존 배낭이 다시 팔리기 시작했다. 마스크, 장갑, 손전등, 건전지, 라이터, 핫 팩, 보온 담요, 구급함, 휴대용 산소 캔, 미니 라디오, 휴대용 정수 물통, 비상식량, 물티슈, 고글 외에 안전모까지 포함한 생존 배낭도 있었다. 생수와 휴지, 물티슈와 컵라면도 대량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 대형 마트에서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제일 당황한 것은 기상청이었다. 대체 블랙 헤일이 언제 내릴지 예측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신뢰를 잃은 지 오래인데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검은 우박까지 내리자 기상청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직서를 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예보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일기예보에서 기상 캐스터가 헬멧을 쓰고 나와 되도록 블랙 헤일을 맞지 말고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분홍색 투피스에 분홍색 헬멧으로 색깔을 맞추어 멘트와 달리 분위기는 발랄해 보였다. 다른 기상 캐스터는 검은색 헬멧에 안경을 쓰고 편한 옷차림으로 나오기도 했다. 헬멧은 너무 무거워서 몇 달만 쓰고 다니면 목 디스크에 걸릴 것 같았다. 


  블랙 헤일의 원인을 찾지 못할수록 유언비어만 퍼지기 마련이었다. 벌써 인터넷에서는 자세한 스토리를 담은 지구 종말론이 나오고 있었다. 지구 밖의 행성에서 외계인이 지구 안에 있는 스파이와 교신하기 위해 블랙 헤일을 내리게 했으며, 가끔 정교하게 깎인 블랙 헤일이 나타나는 이유 역시 외계인들이 보낸 암호라는 거였다. 그 정도면 외계인이 아니라 장인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돌았지만 웃는 동안에도 웃음의 언저리에는 늘 불안이 묻어 있었다.


  이제 하늘을 쳐다보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도 헬멧 하나씩 사서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마른하늘에서 우박 떨어질까 봐 길거리 걸어 다니는 것도 무섭네.”


  후배 형사가 가벼운 목소리로 넉살을 떨었지만 박 형사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갑자기 늘어난 헬멧 매출량이 분석된 그래프를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뜬 기사에 있는 그래프였다. 기사의 내용은 재난 시대에 오히려 뜨는 인기 상품으로서 대박 매출을 올리고 있는 회사들을 제시한 거였다. 기사 속에 있는 사진에서 헬멧 회사 사장은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되는 헬멧을 쓰고 한 손에도 든 채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키운 농작물을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농부 같았다. “운전하는 이들에게도 헬멧을 권합니다. 지붕이 있다고 해서 차 안에서 안심하면 안 됩니다. 하늘에서 뭐가 떨어질지 모르니까요. 하늘이 무너질까 봐 미리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헬멧 회사의 사장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범죄와 연관되는 갑작스러운 현상은 일단 의심하고 보라.

  박 형사의 철칙이었다. 박 형사는 매출량이 가장 많은 헬멧 회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극단은 극단에서 만난다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신념이기도 했다. 


  “최근에 헬멧이 가장 많이 팔린 회사부터 조사해 봐.”

  “헬멧 회사를요? 왜요?”

  “하라면 그냥 해. 아무 이유 없이 시키는 건 아니니까.”

  “다들 우박에 맞는 걸 무서워하니까 헬멧 쓰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괜히 힘만 빼는 건 아닌지…….”

  “지금 그 우박을, 아니, 블랙 헤일을 누가 내리게 하는지 몰라서 이러는 거 아냐. 누구를 잡아서 재판받게 하고 감옥에 넣어야 하냐고. 답답하니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 보려는 거지. 하늘에서 내린 거니까 조물주를 잡아 와? 아니면 염라대왕? 이게 조물주의 재난인지, 인간의 음모인지 일단 알아봐야 한단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박 형사는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렸다. 박 형사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민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박 형사의 눈앞에 무릎을 세운 채 유치장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민형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애먼 희생자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언제부터 그렇게 휴머니스트가 되셨습니까?”


  후배 형사의 말에 박 형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휴머니스트? 그런 단어는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아. 다만 마음이 계속 쓰여서 그래. 아무개들도 인간으로는 대접해야 할 거 아냐. 설령 그게 굴에 사는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개가 아니잖아. 인간이잖아. 그게 휴머니즘이라면 그런 거고. 하지만 휴머니스트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냐. 이렇게 괴상한 현상의 원인을 확실하게 알지 않으면 두 다리 뻗고 못 잘 것 같아서 그런 거지.”


  박 형사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일어났다. 아침을 먹지 않아 속이 헛헛했지만 밥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문득 민형이 마지막으로 먹은 게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비닐봉지를 가득 채우고 있던 통조림들도 생각났다. 박 형사는 점심때 민형에게 국밥이라도 한 그릇 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근처에 돼지국밥을 끝내주게 잘하는 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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