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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29.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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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강은 대전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새벽 여섯 시 삼십 분이었다. 센트럴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두 시간도 안 되어 유성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거기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도착지는 대전에 있는 화상경마장이었다. 얼마 전에 정기적으로 다녔던 서울의 화상경마장이 폐쇄되는 바람에 활동지를 바꿔야 했다. 화상경마장 근처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어 주민들이 5년 동안이나 화상경마장을 폐쇄하라고 시위했다. 그 앞을 지나가 화상경마장으로 들어갈 때마다 조강은 고개를 숙인 채 긴 머리로 얼굴을 가렸다. 등에 따가운 시선들이 화살처럼 꽂혔다. 경마장이 유지만 된다면 잠깐의 가시는 참을 수 있었는데. 끈기가 욕망을 이겼다. 화상경마장이 폐쇄된 날이 단골들에게는 초상 날이나 다름없었다. 조강은 자신의 아지트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루 일과가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인생 전체가 사라진 것 같았다.


  아지트를 새로 찾아야 했다. 서울에서는 과천 경마공원이 가장 가까웠으나 그곳은 화상경마장만큼 안락하지 않았다. 화상경마장에서는 입장권만 사면 끼니때 도시락을 챙겨 주었다. 사이다, 환타, 콜라 같은 음료를 무제한으로 고르는 재미도 있었다. 평소에는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았지만 공짜라는 이유로 사이다나 콜라도 약수처럼 달게 마셨다. 가끔 주인이 조강 같은 단골에게 박카스나 비타민 음료를 건네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사람들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재미가 있었다. 찜질방이나 사우나 대신 가는 셈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중요했다. 돈을 잃으면 책임은 스스로 짊어지겠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느낌이 중요했다. 지정 좌석에 앉아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공직에서 은퇴한 뒤 마음 편하게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았다. 돈을 따겠다는 목표 의식이 있었으니 은퇴한 사람들처럼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화상경마장은 조강의 존재 그 자체였다.


  화상경마장이 폐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강은 매일 함께 화상경마장에 출입하며 도시락과 음료를 먹었던 민자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제 과천에서 보는 건가?”

  “거긴 뭔가 너무 광활하고…… 불안해. 안락한 맛이 없어. 거기까지 가면 모니터로 안 보고 직접 봐야 할 것 같은데 직접 보면 판단력이 더 흐려지는 느낌이고. 도떼기시장 같아서 집중도 잘 안 돼. 조용한 곳에서 모니터로 봐야 내가 진짜 게임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들어. 말을 실물 영접하려고 가는 건 아니니까. 사이에 막 하나가 있어야 편하다고 해야 할까?”

  “맞아, 아기자기한 맛이 없지.”

  “시간 되면 대전 한번 놀러 와. 난 대전으로 내려가려고.”

  “대전 가서 사는 거야?”

  “산다고 말하기에는 뭐하고…… 거기에도 화상경마장이 있거든. 거기도 몇 년 안 되어서 폐쇄될 것 같기는 한데 그때까지만이라도 그 근처 찜질방에서 자면서 다녀야지. 이 재미있는 것을 못 하고 산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좀이 쑤셔서 말이야. 사는 재미가 없지. 새로운 친구들도 찾아봐야겠어.”


  민자는 흰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었다. 조강도 따라서 웃었다.

  민자는 다음 날 바로 고속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그 뒤 민자에게서는 하루에 한 번씩, 저녁 여섯 시 이후에 숫자가 찍힌 메시지만 왔다. 그날 잃은 돈이나 딴 돈의 액수였다. 그 숫자는 -160일 때도 있었고 +23일 때도 있었고 -74나 +7일 때도 있었다. 그 숫자를 다 합해도 플러스가 마이너스보다 큰 적은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조강은 민자에게 대전에 내려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민자는 기뻐했다. 매일 그곳에 출근하고 있지만 아직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못 만났다고 했다.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예상대로 노인들도 많아서 또래를 찾기 힘들어 조강이 그리웠다고 했다. 화상경마장 콤비 재결합! 민자의 메시지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조강은 픽,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버스 좌석에 몸을 기대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전날에 일찍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 한참 뒤척였다. 오랜만에 동민 생각이 났다. 굴에 음식을 잔뜩 배급하고 왔으니 한동안 안 가도 될 것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통조림이나 과자만 준 게 아니라 바나나와 사과와 귤 같은 과일도 넣고 보온병에 물을 끓여 가서 컵라면까지 주었다. 음식들을 본 동민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먹고 싶은 게 많을까. 그때만큼은 동민이 잠깐 불쌍했다. 동민이 전날에 굴을 몰래 나가서 치킨과 맥주를 사 먹고 왔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늘 치맥 타령을 하더니, 돈을 준 적도 없는데 무슨 돈으로 사 먹었는지 알 수 없었다. 통풍이 걱정될 정도로 아무개가 되기 전에는 창작의 고통을 핑계로 치킨과 맥주를 사흘에 한 번꼴로 먹었던 동민이었기에 ‘최애’ 음식이 그립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그런 건, 그러니까 너무 맛있어서 자극적인 건 한번 먹으면 멈출 수 없다. 계속 먹고 싶어지고 그러다 보면 밖에 나가고 싶어지고 굴에 있기 싫어진다. 그러니 반응하지 않도록 자극을 주지 말아야 했다.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버텼던 곰처럼 맛없는 통조림을 먹으면서 수행한다고 생각하고 버텨야 하는 것이다. 치킨 다리나 맥주가 글을 대신 써 주는 것도 아닌데 치맥 집착이 유난이었다. 


  결국 며칠 전의 방문은 동민과 말다툼한 것으로 끝났다. 당분간 조강은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즐기기로 했다. 화상경마장에 있을 때는 동민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껏 자유로웠다. 동민의 잔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함께 카페 사업을 하는 내내 동민은 조강에게 놀지 말고 매일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잔소리했다. 테이블을 덜 닦는다고, 기계 소독을 덜 한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동민은 늘 위생에 지나치게 신경 썼다. 조강이 너무 무신경하다고, 손님들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조강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자고, 하루라도 쉬는 날이 있으면 하고 바랐다. 하루쯤 쉰다고 큰돈 버는 것도 아닌데 하고 싶으면 혼자 하지. 이 말을 하면 동민은 꼭 내가 혼자 잘살려고 이러냐면서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더. 대체 언제까지? 죽기 전에야 끝날 것 같았다. 지겨웠다.

  커피 몇 잔 더 판다고 금방 부자 되나? 카페 일이 성미에 안 맞는다는 것은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장사는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었는데 항상 잘되어야 한다고 동민이 다그칠 때마다 카페를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쩌면 동민은 사업하느라 소설을 못 쓰는 분풀이를 조강에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소설을 대신 써 줄 수도 없고. 조강도 그저 답답했다. 


  사업이 망하고 동민이 아무개가 되기로 선택했을 때, 조강은 눈물을 흘렸지만 그 눈물 속에는 자유의 기쁨이 삼십 프로 정도는 섞여 있었다. 동민이 굴에 들어가자마자 조강은 화상경마장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동민 몰래 가게 근처에 있던 화상경마장에 갔을 때 경마의 재미에 눈뜬 것이다. 경마는 단 몇 분 만에 승패가 갈렸다. 어느 말에 배팅할지 고민하는 것은 괴로웠지만 그만큼의 쾌감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직관과 판단에만 의존했다.


  카페에서는 시간이 잘 안 갔는데 경마장에서는 하루가 금방 갔다. 지겹지 않았다. 가지고 간 돈을 매번 잃었다. 카페가 잘되어 가고 있을 때 몰래 마련해 두었던 비자금 통장을 허물었다. 통장에는 대학생들이 한 학기 등록금을 낼 만한 돈이 들어 있었다. 잔고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에는 신기하게도 조금씩 따기도 했다. 내내 튕기다가 마침내 떠나려고 하자 떠나지 말라고 붙잡는 것처럼. 그러다 결국 잔고가 바닥나면 식당에서 몇 개월 동안 일하면서 돈을 벌고 다시 그 돈으로 경마장에 갔다. 삼겹살집에서 설거지하고 서빙하면서, 고기를 굽고 불판을 닦으면서 머릿속으로 달리는 말을 생각했다.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동민이 성공적으로 세상에서 사라지면 구제금을 받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고생한 동민의 여생을 책임지는 건 자신의 몫이었다. 지금 잠깐 인생의 재미를 당겨쓰고, 나중에는 동민이 인생을 즐기도록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럼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새 대전에 도착해 있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십오 분 정도 걷자 화상경마장이 보였다. 처음 가 본 곳이지만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었다. 잃어버린 고향집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안에 들어가니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평일 오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버스를 두 시간 가까이 타고 왔는데도 서울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민자가 조강에게 손을 흔들었다. 조강은 익숙하고도 빠른 손놀림으로 입장권을 구매했다. 통장에서 뽑아 온 돈 중 십만 원으로 먼저 구매권을 샀다. OMR 카드처럼 생긴 구매표에 말 번호와 경마 방식, 금액을 표시했다. 학창 시절에 시험 볼 때도 이렇게 고민한 적이 없었는데 경마 구매표에 체크를 할 때는 깊이 생각했다. 그때는 인생을 걸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조강은 주로 1등에서 3등 사이에 들어오는 말을 맞히는 연승식을 선택했다. 한 번에 만 원씩 배팅했고 총 열 번만 할 수 있었다.

  구매표를 적은 뒤 다시 은행의 ATM기처럼 생긴 자동발매기에서 마권을 샀다. 마권을 손에 쥐니 뿌듯했다. 결과는 순식간에 나겠지만 그 전까지의 기대감을 최대한 늘여서 즐기고 싶었다. 지정 좌석에 앉아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런데 자기, 그거 알아?”
   조강이 배팅할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민자가 조강의 귀에 대고 말했다. 민자의 입에서 단내가 훅 끼쳤다. 굴에서 동민이 맛있게 먹었을 컵라면 냄새가 났다. 조강은 다시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끼며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뭘?”
   “헤일 복권.”

  “그게 뭐야? 처음 듣는데?”

  “요새 하늘에서 내리는 거, 그 검은 우박 있잖아. 그것 때문에 만들어진 복권이라는데 당첨 확률이 꽤 높은가 봐.”

  “그래?”


   조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로또는 한동안 사다가 재미없어서 끊었었는데 새로운 오락거리가 생겼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민자는 주머니에서 헤일 복권을 꺼내 보여 주었다. 동전으로 긁는 간단한 복권이었다. 총 세 번 긁을 수 있었다. 울퉁불퉁한 블랙 헤일 모양이 세 개 나오면 가장 큰 당첨금인 6억을 가져갈 수 있었다. 구제금 1등 금액보다도 여섯 배나 많았다. 태양 모양이 세 개 나오면 3천만 원, 달 모양이 세 개 나오면 500만 원, 별 모양이 세 개 나오면 5천 원, 구름 모양이 세 개 나오면 천 원이었다. 민자는 지금까지 오십 번 넘게 했는데 별 모양만 다섯 번 봐서 2만 5천 원을 탔다고 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5천 원을 투자해서 다섯 배 넘는 돈을 벌었으니 괜찮은 수확이었다.


  “벌써 블랙 헤일 세 개 터진 사람도 있나 봐. 세상에, 6억이면 그게 얼마야? 그 돈 좀 내 눈으로 직접 봤으면 좋겠다.”

  “거기가 어디래? 그 명당자리 한번 가 보고 싶네.”

  “터미널 쪽인데, 미신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블랙 헤일을 실제로 어깨에 맞은 뒤 그 기념으로 샀는데 6억 걸렸나 봐.”

  “어머, 말도 안 된다. 그거 따라 할 거 생각하니까 무섭네. 복권 당첨되려고 일부러 블랙 헤일 내릴 때 돌아다니는 사람들 있는 거 아냐? 복권 1등 되려다가 1등으로 저세상 가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강은 언젠가 자기도 한번 헬멧을 쓰고 돌아다니다가 블랙 헤일을 맞으면 복권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와서 화상 경마 하는 마당에 블랙 헤일 맞고 동전으로 복권을 긁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여튼 심심풀이로 해 봐. 소일거리로 좋지 않니?”

  “일종의 부업인가?”

  “그렇지. 화상 경마가 본업, 헤일 복권은 부업. 끝내준다. 아, 시작한다!”


  민자의 말에 조강은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했다. 늘씬하게 잘빠진 말들이 앞만 바라보며 맹렬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걸 볼 때만큼은 자신도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었다. 자신도 말들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과거도 하나도 없다는 듯 그렇게 앞만 바라보면서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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