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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29.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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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는 기성이 일하고 있는 중국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효도장. 기성이 굴에 왔을 때 그가 일하는 곳에 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삼십 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공원 옆에 있는 중국집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부모님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동민이 웃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던진 썰렁한 개그에 유희 혼자서만 배꼽을 잡고 웃었다. 유우도 웃지 않았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유우의 머릿속에는 고려장이 먼저 떠올랐다. 당신의 험한 꼴을 안 보이시게 하는 게 혹시 진정한 효도는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곤 했다.


  기성은 그럴 때마다 씨익 웃으면서 말없이 탕수육을 하나 집어 남 노인의 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큰 얼굴에 비해 입이 작았는데 웃을 때면 신기하게도 작은 입이 귀밑까지 닿을 정도로 벌어졌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성실한 청년. 뻔하지만 이런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 기성조차 남 노인을 아무개로 만든 것이다. 


  지하철역 근처에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유희는 여자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서 두 손에 찬물을 받아 치마와 종아리를 씻었다. 끈적거리는 국물은 물을 끼얹어도 치마에 들러붙어 있었다. 치마가 흠씬 젖었지만 같은 자리에 계속 물을 뿌렸다. 화장실 바닥이 흥건해졌다. 누군가가 발을 잘못 디디면 미끄러질 정도로 위험했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기성의 가게, 달리 말하면 남의 영업장에 들어가는 거니 최대한 단정해 보여야 했다. 마지막에는 세수도 했다.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리 유희는 화장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지도 몰랐다. 화장품 가격은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효도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옷은 마를 것이다. 볕이 따뜻했다. 긴장이 풀려서 졸음이 밀려왔다. 학교에서 뛰쳐나오는 바람에 플라스틱 대야도 없었다. 가는 동안 블랙 헤일이 떨어진다면 건물 안으로 피신해야 했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헬멧을 쓰고 있었다. 헬멧이 없는 사람들은 아쉬운 대로 두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진짜로 블랙 헤일이 떨어진다면 두 손은 절대 머리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헬멧 공장이 내내 돌아가고 있었지만 헬멧은 늘 모자랐다. 처음에는 생존 가방에 옵션으로 딸려 있던 헬멧은 이제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늘 그렇듯 돈 있는 사람들이 헬멧을 먼저 차지했다. 유희는 기성이 부러웠다. 오토바이를 타는 기성은 크고 튼튼한 헬멧을 가지고 있었다. 그 헬멧 하나만 있어도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덩치가 큰 기성은 헬멧을 함부로 뺏기지도 않을 것이다. 블랙 헤일이 언제 떨어지든 겁먹지 않을 수 있었다.


  유희는 과감하게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하늘은 아직 맑았다.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와 슈퍼와 세탁소와 편의점과 빵집을 지나쳤다. 공원의 입구를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저 멀리 효도장 간판이 보였다. 붉은색 바탕에 금박으로 적힌 간판을 지닌 효도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효도의 그릇이 크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나. 유희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가게에서 먹는 사람들보다는 배달해서 먹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테이크 아웃 중국집 같았다. 가게 앞에는 오토바이가 한 대도 없었다. 기성은 배달을 나갔을지도 몰랐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주인이 고개를 돌렸다. 남 노인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할머니였다. 가게 안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유희는 기성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 입을 뗐다. 그 순간 기성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렸다. 친한 사이는 아니니 기성 오빠도 아니고 기성 삼촌도 아니고 기성 씨……는 무례해 보이고 기성 님은 쓸데없이 높이는 것 같고……. 그렇게 해서 결국 찾은 것은 기성 아저씨였다. 유희는 가게 주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유우는 전당포 입구에서 한참 동안 서성거렸다. 안으로 당차게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손목에 있는 시계를 몇 번이나 어루만졌다. 민형과의 추억이 마지막으로 담겨 있는 물건이었다. 유우의 생일날 민형이 사 준 시계였다. 결혼 예물도 없었고 커플링 한번 한 적 없었으니 이 시계는 유우가 민형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고가의 선물인 셈이었다. 그들의 살림살이가 유일하게 괜찮았던 때, 유우 2세가 태어나기 훨씬 전이었다. 알이 작고 네모난 시계는 처음에는 몇 시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단순한 장식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지만 보다 보니 익숙해졌다. 굴에 들어오기 전에 다른 것들은 다 팔아서 빚을 조금이라도 갚았지만 이 시계만큼은 항상 차고 있었다. 굴에서는 시간을 모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유우는 시계를 벗지 않았다. 민형과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리듬으로 살고 싶었다. 같은 한국에서라면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을 터였다. 


  그것도 어제까지의 일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시계와 함께할 수 없었다. 남은 통조림이 없었다. 기성이 오지 않아 남 노인의 식량도 떨어진 지 오래였다. 기성과 연락이 닿을 때까지만이라도 유우가 남 노인을 책임져야 했다. 사실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남 노인과 핏줄로 연결된 것도 아니었고 원래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해 준 사람이었다. 남 노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굴 안에 식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만약 혼자서 유우 2세를 낳고 굴에서 혼자 계속 키웠더라면 통조림을 사러 나갔을 때 충동적으로 한강에 뛰어들지도 몰랐다. 남 노인에게 심리적으로 기댔으니 시계를 팔아서 통조림 몇 개 사는 것쯤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유우는 눈을 감은 채 손목에서 시계를 끌렀다. 민형을 다시 만날 때까지 버텨야 했다. 이왕이면 끝까지. 전당포 안으로 들어갔다. 유우가 몇 번 물건을 맡긴 적이 있어서 얼굴을 알고 있는 전당포 주인이 유우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오십 대가 넘어 보이는 남자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여러 개 그어져 있었다. 염색하지 않은 반곱슬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길이도 단발에 가까워 유명한 과학자를 연상하게 했다. 남자가 눈썹을 추켜세우자 이마의 주름이 웃는 모양처럼 옆으로 늘어졌다. 


  “이번엔 뭘 맡기시려구?”

  “이 시계 맡기려구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전당포 주인은 유우에게서 시계를 받아 들었다. 돋보기안경을 끼고 시계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 제일 긴장되었다. 진품을 평가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가보로 내려왔던 골동품을 가져가서 평가받는 것 같았다. 시계를 꽤 오랫동안 살펴보던 남자의 입에서 픽, 하고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이거 뭐, 어떻게 말해야 할지……, 헐값도 안 나오는 시계인데?”
   “네?”

  “가짜라고, 가짜. 뭐, 길거리에서 몇만 원 주고 파는 그런 데서 산 시계인가 본데. 이거 여기에 맡겨 봤자 돈 한 푼도 안 나와. 그동안 사정이 불쌍해서 조금이라도 쳐주려고 했는데 이것만큼은 도저히 안 되겠네. 나도 먹고살아야지. 가져가.”


  남자가 창구 밖으로 시계를 밀었다. 계산하려고 신용 카드를 내밀었는데 한도 초과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시계를 잡아채자마자 전당포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 시계가 가짜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민형은 분명 이 시계를 인터넷에서 주문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인터넷에서 가짜를 팔았던 것이고, 그것도 싼 가격에 팔았을 것이다. 이 시계를 얼마에 샀을까. 민형은 그 시계가 가짜인 것을 알았을지 몰랐을지 궁금했다.


  아니, 궁금해하고 싶지 않았다. 시곗값이 사랑값은 아니었다. 다만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에 눈앞이 어지러웠다. 유우는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흔들리는 걸음으로 십 미터 정도 갔을 때였다. 앞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조강이었다. 조강은 갈색 재킷을 입은 채 작은 백팩을 메고 있었다. 얼굴이 지나치게 창백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유우는 조강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강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동민 씨, 굴에 있죠?”

  “네, 당연히 있죠.”

  “같이 가요. 같이 가야겠어요.”

  “얼굴이 창백해요.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래요.”

  “저도 볼일 다 봤으니 같이 가요.”

  “가는 길에 블랙 헤일이 내리지는 않겠죠? 그렇겠죠?”

  “모르겠어요.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럼 우리, 헬멧 사요.”

  “네? 전 돈이…….”

  “제가 살게요. 가다가 블랙 헤일 오면 큰일이잖아요.”


  조강의 눈이 빛났다. 유우는 조강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고, 귀신을 본 얼굴 같기도 했다. 조강은 유우의 팔목을 잡고 끌었다.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이제 편의점에서도 편의상 헬멧을 팔았다. 물건을 들이는 족족 팔리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잡아야 헬멧을 살 수 있었다. 다행히 헬멧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새로 들인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조강은 붉은색 헬멧 두 개를 꺼내 카운터에 놓았다. 통조림과 김과 라면과 시리얼 바와 과자와 음료수와 캔 커피와 과일까지 잔뜩 샀다. 장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조강은 오른쪽 주먹을 펴서 손에 쥐었던 것을 내밀었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더니 내밀었던 것을 다시 재킷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조강의 뒤에 있던 유우는 조강이 집어넣은 것이 무엇인지 보았다. 복권이었다. 동전으로 긁는 복권 같았다. 긁힌 흔적이 복권에 남아 있었다. 복권에 있는 그림들을 전부 보지는 못했다. 버리지 않고 다시 집어넣는 거로 봐서 꽝은 아닌 듯했다. 얼마가 당첨되었을지 궁금했다. 


  “자, 선물이에요. 이거 같이 쓰고 가요.”

  계산을 마친 조강이 뒤돌았다. 눈과 입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하회탈 가면을 쓴 것 같았다. 조강이 유우에게 헬멧을 하나 내밀었다. 유우는 헬멧을 받아서 머리에 썼다. 헬멧을 써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거웠지만 안정감이 있었다. 붉은 헬멧을 쓴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보고 싶었다. 편의점 문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헬멧이 잘 어울렸다.


  사실은, 조강의 백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가장 먼저 묻고 싶었다. 유우는 조강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붉은 헬멧을 쓴 두 사람은 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늘은 아직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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