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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Sep 03.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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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사회복지사가 유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혼자 사는 유희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곤 했다. 평소에는 과일이나 과자가 든 투명한 비닐봉지를 들었는데 오늘은 손에 종이상자를 들고 있었다. 유희는 상자를 보자마자 긴장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것들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았다. 불투명한 것들은 불안했다. 


  “그게 뭐예요?”
   “선물. 요즘 같은 시기에는 꼭 필요한 거야.”

  유희는 상자를 받았다. 받자마자 상자를 열어 보았다. 노끈이 달린 검은색의 둥근 물체가 들어 있었다.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둥그런 물체를 꺼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헬멧이었다. 가볍다는 건 그만큼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뜻했다. 임시 주거 같은 임시 헬멧이었다.


  “요새 블랙 헤일 때문에 위험해서 1인 1 헬멧을 착용할 수 있도록 보급하는 거야. 파는 것보다 덜 튼튼할 수는 있지만 임시방편으로는 사용하기 괜찮을 거야. 없는 것보다는 낫고…….”

  “저는 보급 대상인가요?”

  “응? 그럼. 제일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가는 거지.”

  “제일 가난한 사람 아니구요?”

  “응?”

  “헬멧 하나 살 여유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요. 살인 우박이 내려도 나날이 오르는 헬멧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벌거벗은 것처럼 그냥 다니는 사람들…….”


  이런,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그 말을 하면서 유희는 선희를 생각했다. 헬멧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단한 지붕이 있는 굴 안에 살고 있지만 늘 불행한 언니. 한 번쯤 제대로 살고 싶다고 하면서 불행을 자처한 언니.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얻은 건 고작 종이 헬멧뿐이다. 그렇게 계속 참고 또 참았지만 생각한 날짜는 아직도 많이 남았고 자신은 지금 저주와 복수라는 단어를 실행하려는 참이다. 원한과 분노를 해결하려는 참이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선희는 자신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눈물을 참았을 터였다. 유희는 헬멧을 머리에 썼다. 노끈도 야무지게 묶었다. 유희의 모습을 본 사회복지사가 칭찬했다.


  “잘 어울리네. 앞으로는 위험하니까 항상 헬멧 쓰고 다녀. 음, 그러니까…… 안전벨트 매는 거랑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귀찮아도 쓰고 다녀. 알았지?”

  “네, 그럴게요.”

  유희는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신문지 헬멧이 어울린다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지막이니 좋은 말만 하려고 노력했다. 유희는 헬멧을 쓴 채 말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저희 집에 오시지 않아도 돼요.”

  “뭐? 왜?”

  “친척 집 가서 살기로 했어요. 학교도 전학 갈 거예요.”

  “친척이 있었어?”
   사회복지사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서류를 본다고 해도 그 안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을 것이다. 종이 친척이니까.


  “먼 친척이에요. 저도 몰랐을 정도로. 그런데 얼마 전에 집에 찾아왔었어요. 저를 오랫동안 찾고 있었대요. 그 친척 따라서 갈 거예요. 혼자 사는 것보다 낫죠.”

  유희는 고개를 약간 숙였다. 헬멧이 얼굴을 가려 주니 거짓말이 더 잘 나왔다. 

  “그래, 정말 잘됐다. 언니도 멀리서 일한다고 해서 혼자 지내는 거 보기 안타까웠는데 친척이랑 같이 산다고 하니 안심이네. 이게 마지막 선물이 되었구나.”


  사회복지사는 선한 웃음을 지으면서 헬멧을 가리켰다. 유희도 사회복지사를 보며 웃었다. 어딘가에 있을 가짜 친척도 왠지 같이 웃고 있을 것 같았다. 그 뒤로 모두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모두의 복지는 향상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구가 슬로건에 적혀 등장할 것 같았다.

  “건강하렴. 혹시 이 근처에 올 일 있으면 복지관에 언제든지 놀러 와도 돼.”

  “네, 그럴게요.”


  유희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유희가 보여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의였다. 사회복지사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오래오래 흔들어 주기도 했다. 혹시 유희가 계속 이 집에서 살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사회복지사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의무가 사라지면 이 집도 없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유희는 헬멧을 벗었다. 곧바로 다시 썼다. 헬멧을 쓰고 가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주머니에 블랙 헤일들을 잔뜩 집어넣었다. 목적지는 분명했다. 그들은 주말에 학원이 끝나면 언제나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잔뜩 사 먹곤 했다. 그들이 햄버거를 양 볼에 욱여넣을 때 웃는 얼굴을 창문으로 보면서, 창문이 그들을 방패처럼 막지 않았으면 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오늘은 직접 그 방패를 깨러 갈 것이다. 유희는 주머니에 양손을 넣어 블랙 헤일을 움켜쥔 채 집을 나섰다.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처럼.     



  동민은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마자 굴 밖을 보았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것 같았다. 와인을 마셨는데도 생각보다 깊이 잠들지 않았다. 옆에서는 선희와 유우와 남 노인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동민이 와인에 탄 수면제를 먹고 깊이 잠든 것 같았다. 굴 안에 아직도 와인 향이 은은하게 떠돌고 있었다.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다른 사람들이 깊이 잠들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게 되었다. 바닥에 손을 짚으면서 일어난 동민은 허리를 숙인 자세에서 입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사촌.”

  그때, 갑자기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동민은 너무 놀라 숙인 허리를 폈다. 


  쿵!


  동민의 머리가 굴의 천장에 부딪히면서 큰 소리가 났다. 동민은 자신의 입을 막았다. 소리를 질렀다가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면 난감했다.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유우 2세가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인데 이상했다. 어둠 속에서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유우 2세가 또다시 입을 벌리려고 했다.


  “쉿!”

  동민은 집게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유우 2세가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기울였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심지어 동민 쪽으로 뒤뚱거리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신과 장난을 치거나, 놀아 주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이쪽으로 오지 마.”

  동민은 손을 내저었다. 유우 2세는 걷는 것을 멈췄다. 차분해진 눈빛으로 동민을 쳐다보았다. 어른의 눈빛 같았다. 동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가 자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리는 없다. 그런데도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어둠의 힘을 빌려 밖으로 무사히 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아이를 외면해야 했다.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유우 2세는 더 이상 동민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말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화석처럼 제자리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 줘, 유이야. 일부러 떠나는 건 아냐.”

  동민은 잠시 틈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부활할 기회가 있다면 잡아야지. 한 번 죽는 것도 어렵지만, 두 번 죽는 건 더 어려워. 여기에 있다가 두 번 죽을 수는 없어. 미안해. 이런 말로 죄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 말을 남기고 동민은 몸을 돌렸다. 굴 밖을 향해 달려 나갔다. 유우 2세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했던 아이였다. 굴에서 태어나자마자 아무개가 된 아이. 태어나자마자 불행을 대물림받은 아이. 유이에게는 죄가 없었다. 하지만 태어났다는 이유로 죄가 생겼다. 더 이상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소설을 써 봤자 원한을 담은 글만 쓰게 될 것이다. 그럴 바에야 단 한 번의 죄를 짓고 바깥에서 새롭게 사는 게 나았다. 사는 게 중요했다.     


  동민은 고개를 계속 끄덕이면서 걸었다. 누가 말을 걸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강한 긍정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계속 끄덕이는 일본의 고양이 인형처럼 기계적으로 그 행위를 반복했다. 걸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은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한번 굴 밖으로 나오면 아무개라는 건 어느 곳에서도 티가 나지 않았다. 동민은 한 시간 넘게 걸어 대학가 근처에 있는 한 원룸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밖에 나갔을 때 구한 거였다. 동민은 사르르 감기는 눈을 막지 않고 햇볕 아래에 잠시 서 있었다. 오랜만에 햇볕을 오래 받은 정수리가 뜨끈했다.


  원룸에 들어간 동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책상, 침대, 에어컨까지 갖추어진 풀 옵션 원룸이었다. 사람다운 집에 사는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제대로 된 가구도 오랜만에 보았다. 이제부터 매일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고, 하고 싶은 것을 실컷 할 것이다. 해외여행도 하고 호화스러운 호텔 음식도 먹을 것이다. 가진 돈으로 투자를 해서 돈을 불릴 것이다. 그 돈으로 지방에 건물을 사서 세를 준 뒤 건물세로 평생 놀고먹을 것이다. 조물주보다 위에 있다는, 초등학생들도 장래 희망으로 꿈꾼다고 하는 건물주가 될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무엇보다 이름부터 먼저 바꿔야 할 것이다.


  동민은 침대에 누웠다. 호주머니에서 복권을 꺼냈다. 울퉁불퉁한 블랙 헤일 모양이 세 개 그려져 있었다. 1등에 당첨된 복권이었다. 굴에 쌓아 놓았던 책 중 가장 위에 있던 책 사이에 이 복권이 있었다. 조강이 두고 간 게 분명했다. 조강이 왜 자신에게 이런 선물을 남기고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조강을 보았을 때 자신을 떠날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렇게 놀라운 선물을 남겨 놓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잘못 놓고 간 것일지도 몰랐다. 


  이유야 어떻든 이 복권은 부활의 기회를 주었다. 6억 원의 당첨금을 수령하자마자 빚을 갚았다. 빚을 갚았는데도 거의 대부분의 돈이 수중에 남았다. 갑자기 온 행운이 두려웠다. 누구나 바라지만 누구에게도 잘 가지 않는 행운이라 무서웠다. 조강이 굴에 찾아와서 자신의 복권이라며 다시 달라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보물처럼 여겼던 책도 다 버렸다. 책이야 언제든 다시 사면 그만이었다. 조강과 돈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굴에서 아무개로 생활하는 동안 조강은 밖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자유를 누렸다. 이제는 자신이 누릴 차례였다. 이 행운은 혼자만의 것이다.


  더 이상 소설을 쓸 필요도 없었다. 지금의 삶이 곧 소설이었다. 다른 아무개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밖에 나갔을 때 공중전화로 경찰서에 굴의 위치와 거주인들에 대해 알려 주었다. 어느 경찰서에서 수색하는지 몰라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공중전화가 보일 때마다, 휴대폰을 빌릴 수 있을 때마다 전화하느라 애먹었다. 결국 찾았으니 되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수색대가 찾게 될 굴이니 시기가 조금 앞당겨진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오히려 유우는 민형을 더 일찍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 좋은 일일 수도 있었다. 그래, 유우에게는 좋은 일이다.


  갑자기 유우 2세의 눈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꿰뚫을 것 같은 눈이었다. 어둠 속에서만 살다 보니 세상 대신 다른 것을 더 잘 보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눈을 감았다. 유우 2세의 눈이 더 잘 보였다. 다시 눈을 떴다. 책상에 놓아둔 서류 봉투를 침대로 가져왔다. 서류 봉투 안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이혼 합의서였다. 조강이 자신을 찾아온다면 조강의 앞에 들이밀 서류였다.


  판사 앞에서 할 말을 입안으로 중얼거리며 연습했다. 이 사람이 나를 동굴에 가두었습니다. 제가 탈출하지 않았으면 오 년 동안이나 저를 버려두었겠지요. 이런 일에 대해 우리는 전혀 합의한 적이 없습니다. 독단적인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조강과 동민은 한 번도 우리라는 말이나 함께, 혹은 같이, 라는 말을 쓴 적이 없었다.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사는 건 무덤 속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무덤을 생각하자 카미긴의 다른 이름이 ‘불의 섬’이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1800년대에 있던 화산 폭발로 물에 잠긴 공동묘지를 표시하는 십자가 사진도 기억났다.


  동민은 물기 없는 목소리로 되뇌었다. 나의 실종은 완벽하게 처리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새롭게 부활할 것이다. 동민은 굴 안에서 날것으로 버려졌던 시간을 생각했다. 그 시간이 아담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사라졌던 시간이 서서히 익어 갔다. 이혼 합의서를 배 위에 올려놓은 채 눈을 감았다. 수면제 없이도 잠이 잘 왔다.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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