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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Sep 03.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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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지면서 튄 창문의 파편이 양팔에 박혔지만 민형은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파편들을 빼냈다. 다행히 다리에는 파편이 박히지 않았다. 약간 다치는 건 상관없었다. 걸을 수만 있으면 되었다. 창문을 깬 헬멧을 주워 머리에 썼다. 헬멧을 쓴 채 운동장 한가운데에 있는 박 형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아무개들이 깨진 창문으로 민형의 모습을 보았다. 아무도 민형을 뒤따라 나오지 않았다. 몸을 조금만 더 내밀면 밖인데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박 형사의 앞으로 간 민형은 깍듯이 인사했다. 박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응은 여기까지인가 보지?”

  “저로서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

  “뭐, 말리지는 않겠어. 하지만 밖이 여기보다 더 좋다는 보장이 있나? 식사 잘 나오지, 비바람을 막아 주는 잠자리도 있지, 소일거리도 있지, 여러모로 여기가 좋을 것 같은데. 공기도 좋고 말이야. 미세먼지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걸.”

  “가족이 없고, 자유도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바다에 나갔을 때도 똑같은 이유로 답답하다고 느꼈는걸요.”

  “뭐, 말리지는 않겠어. 선택은 어디까지나 자유니까.”


  “헬멧…….”

  “음?”

  “저희가 만든 헬멧이 블랙 헤일을 얼마나 막아 줄 수 있을까요?”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불완전한 것에라도 기대는 게 도움이 될까요?”

  “지붕이 없으면 다들 불안해하니까.”

  “……사람들은 왜 저희를 그렇게 미워하죠?”


  민형의 마지막 질문에 박 형사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하나 물었다. 민형에게도 담배를 주었다. 민형은 담배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박 형사는 담배 연기를 하늘로 피워 올리며 말했다. 

  “아무개들을 미워하는 게 아냐. 무서워하는 거지.”

  “네? 저희를 무서워한다구요?”

  “자신들의 미래가 될까 봐.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현재를 좀먹으며 살지. 겉으로는 누가 아무개인지 알 수 없으니 더욱. 굴에 있으면 아무개인 줄 바로 아는데 밖으로 나오면 모르는 거야. 그래서 무서운 거지. 그 굴이라는 곳도 언제든 들어갈 수 있어. 막다른 곳에 몰리면.”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살아 보고 싶어서 들어간 겁니다.”

  “아무개들이 굴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아야 배급자들이 잘사는 거 아닌가? 결국엔 아무개들의 삶을 저당 잡혀서 사는 거 아닌가.”

  “……형사님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게 나을 뻔했네요. 이렇게 말씀을 잘하실 줄은 몰랐어요.”

  “뭐, 결국 세상일이 다 조작이고 허위인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박 형사는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민형에게 보여 주었다. 민형은 휴대폰을 받아서 화면을 보았다. 현대인의 필수품이라고도 하는 휴대폰이 민형에게는 낯설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기사가 하나 떠 있었다.        

   


  헬멧 회사 임직원, SNS에 아무개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해    

 

  A 헬멧 회사 임직원 임서준(45)이 부하 직원의 폭로로 블랙 헤일의 원인을 아무개라고 유포했음이 밝혀졌다. 임 씨는 허위 사실 유포죄로 기소되었다. 기자회견까지 열었던 임 씨는 공포심을 자극하면 헬멧의 필요성이 증가할 것 같아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을 선택했으며 일종의 감성 마케팅 전략이라 주장하고 있다…….


          

  “봤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무개들이 여기서 헬멧만 만들고 있는 거라니까.”

  “시작은 참으로 단순하네요.”

  “끝은 흐지부지해졌지. 아무개들의 굴을 수색하는 것도 중단되었고. 빌어먹을 놈의 블랙 헤일만 그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제자리……, 그런 게 과연 가능할까요?”

  “모두가 함께 앓았던 몸살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기껏 모아 놓은 아무개들을 갑자기 내보낼 수는 없어. 반발도 심할 테고. 당분간은 이대로 유지되겠지.”


  박 형사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서 껐다. 그다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 어차피 서울로 가야 하니 함께 가자고. 목적지까지는 못 데려다주겠지만.”

  “수색이 중단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보가 하나 들어온 게 있어. 수색은 중단되었지만 안 가기도 찝찝해서 일단 한번 가 보기나 해 보려고. 나 혼자서만 가 볼 거야.”

  “제보하기도 하나요?”

  “내부 고발자겠지. 왜 제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 형사가 앞장서고 민형이 그 뒤를 따랐다. 민형이 박 형사와 함께 가자 아무도 그들을 저지하지 않았다. 박 형사가 있으니 이곳을 빠져나오는 건 너무 쉬웠다. 민형은 말없이 박 형사의 차에 올라탔다. 


  “젊은 여자 두 명, 아기 한 명, 노인 한 명.”

  박 형사가 안전벨트를 매면서 중얼거렸다. 노래 가사처럼 멜로디를 붙이기도 했다. 민형의 귀에 젊은 여자와 아기라는 말이 들어왔다. 굴에 아기가 사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저, 그 제보 받았다는 굴에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왜?”

  “거기에 제 가족들이 있는 것 같아서요.”

  민형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희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번에도 창가 자리였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헬멧을 쓴 유희가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햄버거를 게걸스럽게 베어 먹고 콜라를 우악스럽게 빨아들이면서 자기들끼리 웃고 있었다. 벌린 입속에서 음식물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유희는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으면서 주머니 속에 있는 블랙 헤일을 만지작거렸다. 머리에 쓰고 있던 헬멧도 만져 보았다. 튼튼해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약해 보이지도 않았다. 애매한 헬멧이었다. 포기하기에는 아까웠다.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었다. 그들은 아직도 유희를 보지 못했다. 보고 있으면서도 안 보고 있을지 몰랐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패스트푸드점 앞에 섰다. 코앞에 그들이 있었다. 유희는 헬멧을 쓴 채 그대로 유리창을 향해 돌진했다.


  쿵!


  유리창과 부딪힐 때의 반동으로 유희는 뒤로 튕겨 나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패스트푸드점의 유리는 멀쩡했다. 생각보다는 튼튼한 유리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제야 안에 있던 그들이 유희를 쳐다보았다. 헬멧을 쓴 채 주저앉아 있는 유희를 본 그들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웃었다. 급기야 음식물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교실에서 자신을 침입했던 옥수수 알갱이들과 달리, 자신에게까지 닿지 않는 파편들이 반가웠다. 유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집게손가락만 까닥거렸다.


  그 모습을 본 그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유희를 향해 달려갔다. 분노한 그들은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헬멧을 쓰는 것도 잊었다. 

  “야, 그지가 헬멧도 그지 같은 걸 어디서 주워 왔냐?”
   “꼭 자기 같은 칙칙한 색으로 잘도 골라 썼네.”

  “저걸로 뭘 막을 수나 있겠냐?”


  유희는 씨익 웃었다. 주머니에서 블랙 헤일을 세 개 꺼냈다. 목표도 세 명, 공평하게 한 명당 한 개씩이었다.

  맨 앞에서 달려오는 아이의 눈을 향해 블랙 헤일을 던졌다. 


  “아악!”


  블랙 헤일은 아이의 눈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아이가 눈을 감싸 쥔 채 뒤로 쓰러졌다. 그다음 아이도 유희가 던진 블랙 헤일에 눈을 맞았다. 아이들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모서리가 날카로운 블랙 헤일은 아이들의 부드러운 눈에 상처를 내고도 남았다. 아이들이 바닥에 누워 뒹굴었다. 마지막으로 달려오던 아이는 반사 신경이 좋았는지 유희가 던진 블랙 헤일을 고개를 숙여 피했다. 블랙 헤일은 아이의 머리를 지나 패스트푸드점의 문을 때리고 바닥에 떨어졌다. 


  마지막 아이가 유희에게 달려들었다. 유희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팔을 내밀어 아이를 껴안았다. 유희에게 안긴 아이가 놀라서 발버둥을 쳤다. 유희의 품을 쉽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깍지 낀 유희의 손에 마지막 블랙 헤일이 들려 있었다. 중심을 잡아 주는 블랙 헤일 덕분에 더 강하게 끌어안을 수 있었다. 그 블랙 헤일이 아이의 등에 상처를 냈다. 유희는 깍지 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툭, 툭, 툭.


  하늘에서 새로운 블랙 헤일이 내리기 시작했다. 누워 있는 아이들의 배에 블랙 헤일이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들렸다. 비명을 듣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헬멧을 쓴 사람들이 아이들을 패스트푸드점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아이들은 아프다면서 죽어라 소리를 쳤다. 몇 명의 사람들이 유희 쪽으로 다가와 유희와 아이를 떼어 놓으려고 했다. 등으로 블랙 헤일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아이는 소리를 계속 질렀다. 아이의 머리에 블랙 헤일이 떨어졌다. 유희는 고개를 숙였다. 아이의 얼굴이 유희의 가슴으로 툭 떨어졌다. 누가 보면 두 사람이 포옹한 채 키스라도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따뜻하다.’ 

  아이를 껴안은 유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몸이, 심장이 차가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를 떼어 놓지 못하자 사람들이 유희와 아이를 한꺼번에 들어 올려 패스트푸드점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119에 신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무사해. 이곳에서 난 무사하다고.’

  유희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게 되면 선희에게 가리라 결심했다. 선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이제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떨어져 있는 채 잘사는 건 바라지 않았다. 잘사는 건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함께 있고 싶었다.


  ‘언니, 난 아직 겨우 중학생이잖아.’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것을 느끼면서 유희는 자신이 지금 구름 위에 누워 있다고 상상했다. 작은 블랙 헤일 하나가 가슴 언저리에 툭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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