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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Sep 03.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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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야 했던 사람은 쉽게 죽지 않고,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은 허무하게 죽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블랙 헤일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공평했다. 죽고 싶은 사람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집 밖을 나오지 않으면 되었다.


  모든 것은 검은 우박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거나 미처 피하지 못해 죽은 이들을 위한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블랙 헤일 등록소’에 등록된 사망자의 이름들은 추모비에 새겨졌다. 추모비는 아파트촌 사이에 있는 공원에 놓였다. 검은 우박 모양을 본뜬 울퉁불퉁한 추모비는 기둥 위에 검은 우박이 올려져 있어 멀리서 보면 트로피 같았다. 사람들은 지나갈 때마다 추모비에 검은색으로 물들인 국화를 올려놓았다. 오징어먹물가루로 물들인 국화는 빈틈없이 물들였는데도 투명해 보이는 착시를 일으켰다. 어두울 때 봐야 비로소 불투명해질지도 몰랐다. 검은 국화도 블랙 헤일을 닮아 있었다.


  블랙 헤일은 아직도 그치지 않았다.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개들은 폐교에서 여전히, 열심히 헬멧을 만들었다. 그곳을 빠져나간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아무개들이 만든 헬멧들은 트럭에 실려 전국에 배급되었다. 신문지 헬멧을 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박 형사와 민형은 서울로 오는 길에 국밥집에 들러 순댓국을 한 그릇씩 먹었다. 박 형사는 지서에 들러서 강원도에 갔다 온 일을 보고한 뒤 제보를 받은 굴에 간다고 말했다. 민형은 묵묵히 국밥을 떠먹었다. 유우와 아이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가장 먼저 할지 생각했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고생했다고 유우의 손을 한 번 잡아 주고 싶었다. 박 형사도 그 이후로는 내내 말이 없었다. 


  국밥을 다 먹고 밖으로 나오니 블랙 헤일이 내리고 있었다. 박 형사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겹네, 악마의 공 같으니. 하늘에서 공 좀 그만 퍼부으라고.”

  “정말 저주 때문에 검은 우박이 내리는 걸까요?”

  국밥집에 온 뒤로 민형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한 말이었다. 박 형사는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함부로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럴 수도. 그런데 이제는 그냥 생활 같기도 하고 앞으로 잘 살아 보라는 경고 같기도 해. 머리에 무거운 거 하나씩 쓰고 다니니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신문지로 만든 헬멧은 그것보다는 가볍습니다.”

  민형의 말에 박 형사가 시원하게 웃었다. 

  “그럼, 누가 만들었는데.”

  두 사람은 나란히 헬멧을 쓴 채 다시 차에 탔다. 유우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민형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우는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굴 안의 공기가 따뜻했다. 아침은 아닌 것 같았다. 유우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가장 먼저 유우 2세부터 찾았다. 자신의 옆에서 항상 잠들었었는데 유우 2세가 보이지 않았다. 유우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유이야!”

  유우가 소리를 지르자 선희도 부스스 일어났다. 입가에 침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선희는 일어나자마자 밀린 기침을 했다. 기침 소리가 유난히 컸다.


  유우는 굴 입구까지 달려갔다. 굴 입구에 검은 형체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유우 2세는 그 옆에서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유우는 남 노인에게 달려가 남 노인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괜찮으세요?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이게 대체 무슨…….”


  남 노인의 머리를 만지던 유우의 손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 나왔다. 피에 젖은 손을 본 유우의 눈이 커졌다. 유우는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었다. 카디건을 길게 만 뒤 남 노인의 머리를 묶었다. 카디건은 머리를 꽉 죄어 주지 못했다. 남 노인의 숨이 희미했다. 빨리 119를 불러야 했다. 이곳에는 전화기도, 휴대폰도 없었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이대로 두면 남 노인은 죽을 것이다. 유우는 잠시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곳을 나가야 남 노인을 구할 수 있었다.


  유우는 뒤따라 나오던 선희에게 말했다.

  “남 할머니가 다치셨어. 내가 나가서 사람들에게 부탁해 119를 부를 테니 남 할머니 잘 보고 있어.”

  “네? 그럼 여기가 밝혀질 텐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남 노인에게서 흘러나온 피를 본 선희는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가렸다. 그 말을 한 자신을 책망하듯이. 유우는 유우 2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맑았다. 유우 2세의 눈빛을 기억해야 했다.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굴 밖을 나섰다. 조강이 사 주었던 붉은 헬멧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자신에게는 블랙 헤일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도 있었다. 유우 2세는 웬일로 유우가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기특했다. 굴 밖을 나선 유우는 잡초를 헤치며 걸어 나갔다. 그러다가 왼편에 쓰러져 있는 조강을 발견했다. 


  “조강 씨!”

  유우는 조강에게 달려갔다. 조강을 흔들어 보았다. 등에 블랙 헤일들이 스무 개는 넘게 쌓여 있었다. 조강도 왜 비싸게 주고 산 붉은 헬멧을 쓰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조강의 등에 있던 블랙 헤일들을 옆으로 치웠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손등을 긁었다. 긁힌 자리에 금세 피가 맺혔다.


  조강의 고개는 유우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있었다.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블랙 헤일이 치워진 조강의 몸은 싸늘했다. 유우의 가슴도 싸늘해졌다. 반대편으로 갔다. 조강은 하늘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제야 하늘을 제대로 쳐다보겠다는 것 같았다. 입도 약간 벌어져 있었다. 코 밑에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강의 눈을 감겨 주었다. 굴 안에 동민이 없었다는 게 떠올랐다. 자신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동민은 사라지고, 조강은 굴 근처에 죽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남 노인의 일이 급했다. 유우는 눈을 뜨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잡초를 헤치고 다시 나아갔다. 걸음이 빨라졌다. 언제 다시 블랙 헤일이 내릴지 알 수 없었다. 뛰다시피 걷기 시작했다.    



 

  굴에 유우 2세와 함께 남은 선희는 남 노인 옆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우 2세가 선희에게 다가와 선희의 팔을 잡았다. 선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을 뜰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남 노인을 보니 무서웠다. 남 노인이고 뭐고, 이대로 굴 밖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랑 같이 가.”


  선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굴 입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희는 고개를 들었다. 굴 입구에 유희가 서 있었다. 어디에서 났는지 머리에 검은색 헬멧까지 쓴 채였다. 튼튼해 보이는 헬멧은 아니었다. 얼굴이 약간 어두워 보이기는 했지만 유희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자신의 말에 유희가 대답한 것 같았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유희지만 굴 밖에서처럼 유희에게 기대고 싶었다. 유희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는데 이름 대신 입에서는 기침이 터져 나왔다. 선희는 기침하면서 밖으로 달려 나가 유희를 안았다. 유희의 품이 따뜻했다. 남 노인의 차가운 몸이 생각났다. 유희의 체온을 느끼자 뛰던 가슴이 점차 안정되었다.


  선희는 유희를 안은 채 물었다.

  “그 헬멧은 어디서 난 거니?”

  “배급받았어. 신문지 헬멧이야. 아무개들이 만든 것 같아.”

  아무개라는 단어에 유희를 껴안은 선희의 팔이 움찔거렸다. 유희는 그 팔 위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제 그 단어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어.”

  “…….”

  “이제 다 끝났어, 언니. 더 이상 아무개 생활 하지 마.”

  “…….”

  “집에 가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해. 나 이제 학교도 갈 필요 없어. 안 갈 거야. 뭐든 다 할 거야. 구걸이라도 할 수 있어.”

  “…….”

  “하늘에서 이상한 게 떨어져도 살아남았잖아. 다시 시작하면 돼. 집에 가자.”


  선희의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흘리면서 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은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있을 필요도 없었다. 유희의 얼굴을 다시 봤으니 그걸로 되었다. 선희는 유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얼굴과 손등에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 블랙 헤일에 긁힌 듯한 상처였다. 선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자신이 굴 안에 있는 동안 유희도 밖에서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다. 유희도 선희의 따뜻한 손이 얼굴에 닿자 눈물을 흘렸다. 평생 흘릴 것 같지 않은 눈물이었는데 지금은 잘만 나왔다. 


  선희는 유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유희는 선희의 허리를 붙잡았다. 다른 팔로 양옆에 있는 잡초들을 헤치면서 나아갔다. 앞만 보고 걸어가느라 왼편에 조강이 쓰러져 있는 것도 보지 못했다.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유우 2세는 선희와 유우의 뒷모습이 멀어져 점이 되고, 점마저 사라질 때까지 같은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유우 2세는 아직 선희의 이름을 몰랐다. 발음하기 쉬운 이모라는 호칭은 알고 있었다. 이모, 라고 조그맣게 불러 보았다. 엄마라는 말도 해 보았다. 사촌이라는 말도 해 보았다. 할미라는 말도 해 보았다. 이곳에서 함께 살았던 이들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민형도 불러 보았다. 


  “……아빠.”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아빠를 찾았을 때, 사라졌던 점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도 점이 두 개였다. 유우 2세는 그 점들이 사라질까 봐 앞을 똑바로 보았다. 눈도 감지 않았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양손은 주먹을 꼭 쥔 채 남 노인의 팔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점 두 개가 굴 쪽으로 오다가 잠시 멈춰 섰다. 잡초가 우거진 쪽으로 들어간 두 점은 한참을 나올 줄 몰랐다. 그러다가 점 하나가 다시 잡초 사이에서 나와 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역광이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유우 2세는 눈썹을 찡그렸다. 얼굴이 점점 더 다가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굴에 함께 살았던 아무개들의 얼굴만 알고 있던 유우 2세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바깥세상이었다.


  유우 2세는 울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대신 방긋방긋 웃었다. 그래야 그 점이 유희와 선희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드디어 점이 가까워졌다. 남자의 얼굴이 된 점이 쭈그려 앉아 유우 2세와 눈높이를 맞췄다. 유우 2세는 더 활짝 웃었다. 남자도 웃었다. 양쪽 눈가에 잡힌 주름이 부드러웠다. 주름이 없는 유우 2세의 눈웃음도 부드러웠다. 유우 2세는 남자의 눈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눈인 것처럼 기억하려고 했다. 남자에게 낯꽃이 피었다.


  “드디어 찾았네, 내내 부드러웠던 것을.”

  민형이 유우 2세에게 말했다. 유우 2세도 민형의 말에 답했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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