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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자유

결혼과 결혼식에 대한 생각

by 해센스

자라면서 늘 원했던 것은 실패할 자유였다. 그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것을 격려해 주고 따뜻하게 품어줄 가족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없었다. 첫째인 나에게는 더 그랬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사회에서 딱 1인분해서 번 돈으로 본인들에게 쓸 것 아껴가면서 집도 사고 좋은 옷이나 신발도 가끔 사주시고 학원도 아쉬움 하나도 없이 보내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어떻게 봐도,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튀는 아이였는데 부모님의 그런 희생과 노력 끝에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취업준비생일 때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나 자신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의미의 딱 1인분을 못해낼까 봐 하루하루, 길게는 대학생활 1~2년 정도를 불안해하며 보냈다.


운 좋게 얻은 직업 덕분에 조금은 실패해도 될 자유를 얻었다. 글을 써보고 싶으면 써볼 수 있었다. 글을 써서 꼭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


직장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회사대출과 신용대출의 최대치를 받아 모은 돈과 빌린 돈 전부를 주식에 전부 투자해보기도 했다. 어느 순간 투자금이 딱 반토막 정도 났지만 그래도 월급으로 이자를 갚고 쓰고 남은 돈으로 주식을 좀 더 싼 가격에 더 살 수 있었다. 주식이라는 걸 해 본 지 겨우 1~2년 됐을 때였는데 공포에 질릴 때마다 주식을 더 샀더니 다시 원금을 복구하고 투자금보다 훨씬 더 불릴 수 있었다. 다행히 70% 이상을 미국주식에, 그것도 우량주 위주로 투자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빚이 있으면 떨어질 때 더 공포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물린 것들도 함께 정리해서 빚은 다 갚았다. 빚을 다 갚고도 남은 투자금이 최초 내 투자금 정도가 되었다.


우연찮게 돈 얘기를 하다가 아빠가 내게 주식해서 다 날렸냐고 했던 적이 있다.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주식이 반토막 정도 났을 때였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상처받기보다는 단념했다. 그에게 닫혀있던 마음을 한 번 더 걸어 잠그면 그만이었다. 그럴만한 여유도 있었다. 다 날렸더라도, 누구한테 손 벌리지 않을 수 있는 월급과 앞으로 일할 수많은 날들, 곧 젊음이 있었다.


취업 다음은 결혼이었다. 31살에서 32살쯤 결혼을 하고 싶었다. 나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바라던 모든 행복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안정이라는 모양의 행복은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 이전엔 연애가 있었다. 일단 주말에 같이 즐겁게 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때마침 만나게 된 사람에게 처음 만나자마자 그렇게 얘기했다. 결혼 생각은 아직 없고, 이제 취업해서 마음에 안정을 좀 찾았고 이 지역에서 함께 즐겁게 추억을 쌓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내 생애 가장 따뜻한 일 년을 보냈다. 만난 지 일 년이 넘어가자 이 사람의 성품이면 결혼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것에도 좀처럼 확신하지 않는 편인 내가, 그래서 플랜 b, c, d, e까지 만들어놓으려 하는 편인 내가 가져본 가장 강한 확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아니었고, 그만큼 철들지 못했다. 그런 종류의 확신은 평생 한 번 느낄까 말까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우리 엄마의 가장 큰 두려움은 첫 번째는 자식이 성인이 되어 번듯한 직장을 못 가져서 몸고생 하며 사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결혼해서 돈 걱정하며 사는 것이었던 것 같다.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힘든 일 해야 한다고 수없이 들으며 자랐고, 남자를 만나면 집안에 돈이 있는지, 돈은 안정적으로 잘 버는 직업인지가 중요했다.


그런 엄마의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만큼 내가 돈 걱정 없이 벌고 불려서 남자의 경제력은 우선순위에서 덜 두고 싶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엄마의 걱정을 똑같이 하고 있다.


투자로 돈을 이렇게 불릴 수 있을 줄 알았다면 성품 좋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던 그때 그 남자와 결혼했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아이도 두 명 낳고 자상한 그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땐 투자에 대해 무지했다. 그래서 그 사람과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도 결혼식이 하기 싫었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평가받기 싫었다. 떳떳하고 사회에서 예우받아야 하는 직업인데, 내 주변의 좁은 집단의 사람들이 볼 인식이 싫었다. 직업이든, 집안이든 평가받기 싫었다. 내세우는 것도 싫고, 평가절하 당하는 것도 둘 다 싫었다. 본질을 우선하여 생각하지 못했다. 누가 뭐라고 생각하고 말하든, 내가 만나는 사람이 결혼식이 하고 싶다면 그 마음을 더 우선시해 존중해 줄 수 있는 그릇이 안 됐다.


지금도 결혼식이 하기 싫다. 이제는 남들이 뭐라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나와 그, 우리 집과 상대방 집안의 재력과 인맥이 어떻게 드러나든 이제는 조금 덜 신경 쓸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집안에 내 주변의 남들만큼 돈 없는 게 콤플렉스였던 나는 결혼식을 통해 수면 아래에 있던 것이 수면 위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죽도록 싫었었다. 없는 데 있는 척하는 것, 과시하기 위한 소비나 노력은 더 싫었다. 최고가 아니면 아예 보여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땐 남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리고 한국의 그런 결혼식 문화 자체를 나는 무시하는 것으로, 내 신념을 드러내는 동시에 열등감을 감추고 싶었다.


지금은 다른 의미로 결혼식이 하기 싫다. 폭삭 속았수다에서 금명이 아빠가 금명이가 결혼하는 날, “아니다 싶으면 빠꾸. 냅다 집으로 뛰어와. “ 라고 한다. 펑펑 울었다. 그런 빠꾸 할 곳이 평생 없었고, 평생 딱 그런 곳을 바랐던 나는 너무 부럽고 서러워서 울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지고 싶었던 전부였다. 내가 선택한 남자가 별로일 때, 언제든 돌아가 품에 안길 수 있는 아빠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라면 아빠가 날 생각하던 마음에라도 푹 안기고 싶었다. 말이 아빠지만 엄마라도 상관이 없다. 아무튼 그런 가족이 있었으면 했다.


그랬다면, 빠꾸 할 마음의 안식처가 있다면 실패할 자유를 믿고 결혼식이라는 것을 해볼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인 형태의 결혼식은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사람들에게 결혼을 알리고 축하받고 싶을지 모르겠다.


빠꾸 할 곳이 없는 나는 불확실성에 나를 내던질 확신과 의지가 없다. 함께 지내기도 하고 아이도 생긴다면 가질 수 있겠지만, 사람들 앞에서 평생을 서약하기보다는 둘만의 존중과 행복을 먼저 약속하고 싶다.


서로 존중하는 한, 그래서 함께하는 생활을 통해 혼자일 때보다 불행하지 않는 한 결혼을 유지하고 싶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와 혼인 관계를 유지할 것을 서약하는 대신, 평생 좋은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주되, 서로로 인해 행복하지 않다면 가장 온화한 방식으로 놓아주기를 약속하고 싶다.


부모님이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혼인을 지금껏 유지하고, 최소한의 도리를 서로에게 다한 것에 대해 자식으로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감사함을 느낀다. 만약 부모님이 이혼했다면 관계에 대해, 그리고 결혼에 대해 지금보다 가볍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리고 인생의 롤모델로서는 두 분이 존중과 신뢰가 깨졌을 때 이혼을 택했다면 그 역시 존중하고 존경했을 것이다. 아마 난 더 스스로를 아낄 줄 아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인생의 단 하나의 정답은 스스로를 끝까지 최선의 방식으로 존중하고 아끼는 것이라고 믿는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덜 사랑하는 일이 되지 않을 때까지만 누군가를 사랑해야 된다고 믿는다. 우리 부모님이라면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랄까 보다 만약 내가 자식이 있다면 내 자식은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랄까를 묻는 것이 더 현명한 질문일 때가 있다.


‘내가 자식이 있다면, 혹은 내 자식이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을 바랄까?‘에 대한 질문이 “Yes.”인 삶을 살고 싶다. 내 (가상의) 자식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삶에 내 결혼, 결혼식과 그로 인해 실패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은 굳이 없다.


사람들에게 축하받는다면 “결혼합니다. ”보다는 “함께 10년간, 20년간, 30년간, 50년간 존중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를 축하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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